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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Nov 21. 2016

Ironic 아이슬란드 _ 자연

#교환 여행 #Iceland

  보통 글을 시작하기 전에는 제목부터 고민하게 되기 마련이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은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래도 전체 내용을 잘 요약할 수 있겠다 싶은 단어나 구절을 정한 뒤, 제목을 수시로 봐가며 글을 써내려가곤 한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이야기는 유독 제목을 정하기가 참 어렵다. 아이슬란드란 어떤 곳인지, 한 마디로 정리도 잘 안되고, 그저 복잡하고 다양한 기억들이 엉켜 있고 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달까. 벅차고 두근거리는 기억으로 가득한 아이슬란드.

일단 다 쓰고 다시 돌아와서 글의 간판을 장식해보기로 한다.


막연함 그 자체

아이슬란드를 가자


  아이슬란드에 가보는 것이 꿈이었다지만, 남들의 시선에는 쟤가 정말 가고싶긴 한건지, 싶을 정도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행 책자도, 일정표도, 안에서는 어떻게 돌아다닐 지 계획도 없었으니까. 나도 내가 뭐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고.

  다만, 아이슬란드의 황량한 초원, 자갈밭, 그 위를 간간히 하얗게 칠하는 눈, 그 위에 서서 시큰할 정도로 차가운 공기를 들여마시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거기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일 오로라와 빙하를 마주한다면, 캬, 혼자 키득거릴 상상도 이 만한 것이 또 있을까.

  그냥 그 분위기만을 바라보고 무작정 가보고 싶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인지 어디를 가고, 그 다음 무얼 하고, 이런 구체적인 계획을 짜는 것에 대해 별다른 욕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구글맵에 들어가서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Reykjavik)를 눌러본다. 으흐흫.


당시 마인드: 교통수단이 잘 안되어있다고? 그럼 걷지 뭐.
준비도 안해놓고 지도만 보고 좋아했던 나


아이슬란드의 첫 인상

케플라비크(Keflavik) 공항


  아이슬란드의 수도는 수증기 마을이라는 뜻의 레이캬비크다. 재밌는 건 도시 안에 공항이 위치해있다는 점인데 이 공항이 레이캬비크 국제공항. 하지만 명색과는 달리 국제선보다는 국내선 위주의 항공기들이 다니며 실제로 아이슬란드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공항은 레이캬비크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이다.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 출발하는 아이슬란드 저가항공사 WOW air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1시 반 출발인데 아이슬란드에 1시 50분 도착, 아이슬란드는 1시간 느리므로, 3시간 반 정도 날아가야 한다. 교환학생 와서 여행하기 위해 비행한 거리 중에는 가장 멀기도 하고 비행기도 가장 크다. 먼 만큼, 긴장도, 기대도 쑥쑥.


  네덜란드의 날씨는 꽤 맑은 편이었다. 구름도 적고, 바람도 선선한데 시작이 좋은 듯 하다는 생각을 할 때 비행기는 이륙했다. 맑다.. 맑다..! 아이슬란드도 괜찮을거야. 3시간 반 거리지만, 뭐, 그래봐야 지도에서 한 뼘도 안되는데. 그렇게 3시간 정도 좁은 좌석에서 졸던 와중,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아이슬란드어인가보다. 네덜란드처럼 목을 괴롭히는 크-ㅎ 발음은 없지만 뭔가 yo-,-h 소리가 많이 들린다. 여튼, 뒤이어 나오는 영어 안내방송은 비행기가 곧 내릴 것임을 알려준다.

  밖을 보면 아이슬란드를 볼 수 있겠단 생각에 창가자리에 앉은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창을 바라본다. 맙소사. 플랩과 비행기 바퀴가 내려온 것을 보니 착륙 직전인데, 아직도 구름은 비행기 날개 밑이다. 저게 다 눈이 아니라 구름이라니. Aㅏ...

의외의 따뜻함, 구름 낀 날씨. 갈색 초원. 검정 흙. 평야.

  사다리차를 타고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이동한다. 브릿지 게이트도 두어개만 보일 뿐 나라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공항 치고는 비행기가 몇 기 없다. 주변은 황갈색의 평야만이 보이는 것이 흡사 몽골 울란바토르 공항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에서 3시간 반 비행기 타면 몽골인데, 여긴 유럽의 몽골인가. 잠시 딴 생각을 한다.

  짐을 찾고 유심칩을 산 뒤 터미널 밖으로 나서서 아이슬란드와 첫 대면식을 치룬다. 의외로 크게 춥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는다. 위도상 가장 춥다는 한대 기후대로 분류되는 데다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섬나라라 매우 추울 것으로 보이지만 11월의 아이슬란드는 의외로 따뜻한 편이다. 적도권의 멕시코만에서 출발하는 멕시코만류가 장장 7000km를 올라와 아이슬란드를 따뜻하게 해준다 하니, 오 마더 네이쳐. 같이 여행을 떠난 친구 왈, 아이슬란드가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지역 중 가장 따뜻하다고.

 

  그래도 엄연한 '한대' 기후 지역이다. '의외'로 따뜻하다는 말은 옷을 따뜻하게 잘 입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니 옷은 단단히 입으시길.


  잘 사는 나라이지만 아무래도 인구밀도가 워낙 작다 보니 아이슬란드는 도시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중교통이 별로 발달되어 있지 않다.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레이캬비크를 연결하는 비교적 단거리면서도 중요한 노선도 예외는 아닌데 이 교통난은 여행사들이 (돈을 좀 받아가며) 해결해주고 있다. 인당 21유로를 내고 공항에서 레이캬비크까지 가는 버스에 오른다. 짐도 다 실어주고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겠다 하니 고맙긴 하다.

  창 밖 풍경을 바라본다. 확연히 다른 풍경. 눈에 확 띄지 않는 낮은 채도에 내 뇌가 자극받는 데 시간이 걸린다. 검정색의 흙. 회색빛 하늘. 나무라곤 없는 넓은 평야. 드문드문 자란 갈색 풀.


  아 내가 아이슬란드에 왔구나.

레이캬비크 외곽. 유럽 여느 여행지와는 다른 밋밋한 건물 외관.


잠이나 잘까

짧은 해


  버스를 타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짐을 푸니 얼추 4시 반 정도가 되었다. 시내 구경이나 나가보겠다던 원래의 계획대로 방을 나섰으나, 가로등이 켜져있었고 매우 인상적인 형태의 교회가 탑 꼭대기에서 빛을 내며 반겨줄 뿐이었다. 일몰이 4시 반이었던 것. 네덜란드도 요새 해가 많이 짧아져 아쉬워하는 마당이었는데 겨울의 아이슬란드는 저녁 재료를 꺼내기도 전에 해가 달아나기 시작한다. 확실히 고위도 지방이긴 한가보다 하며 뭔가 아쉬운 마음을 삼킨다. 

  어둑어둑한 레이캬비크 시내에서 여행지에서 보내는 첫날 꼭 하는 일들을 한다. Travel information 센터에 들러 투어상품 바우처를 쓸어오기. 마트에 가서 일용할 양식 구해오기. 아이슬란드의 화폐단위는 아이슬란드 크로나(ISK)로 0하나를 더 붙이면 대충 원 단위로 환산된다. 마트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우리나라의 2배 정도되는데.. 가끔 관광지나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보면 원 단위어야 할 것 같은 물건들이 ISK를 떡하니 붙이고 나 사가라고 당당히 진열되어있다.

  잔뜩 졸아든 마음, 소심하게 식빵에 손이 간다.

아이슬란드는 카드리더기 보급이 정말 잘 되어있는 나라다. 카드만 있다면 딱히 환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데 시내에 은행들이 있으니 정 필요하다면 그때그때 환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 환전소 직원도 굳이 할 필요 없을텐데?라는 반응을 보이니 말 다했다.
레이캬비크 시내의 상징, 할그림스키르캬(Hallgrímskirkja) 교회

  방에 돌아와 아이슬란드는 어떤 나라인지 찾아본다. 위키피디아에 아이슬란드 민족, 언어,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써있는데.. 졸리다. 하지만, 이후 여행에서 느끼는 것들의 가치를 높여줄 자양분일터, 최대한 열심히 읽는 '척' 해보다 결국 잠이 들었다지.


아이슬란드인은 과거 영토 전쟁에서 밀려나 아이슬란드에 터전을 잡은 노르웨이인들의 후손이다. 따라서 언어도 고대 노르웨이어의 형태를 띄고 있고 요,캬,쿄 등의 발음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레이'캬'비크, 할그림스'키'르'캬', '요'쿨살론 등등). 발음하기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라고도.


아이슬란드의 민낯

골든서클


  사실 출국 5일 전 오른손을 크게 다쳤다. 상처를 꿰매야했는데 실밥을 푸는 날이 여행날짜와 곂쳐 아이슬란드 여행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인지 고민에 빠졌을 정도. 다행히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 실밥을 조금 일찍 제거할 수 있어 여행은 갈 수 있었지만, 상처가 언제 덧날지 모르니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있어야만 했다. 자연스레 운전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넘어져서 코나 깨지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

  여튼 그래서 결론은! 운전을 할 수 없으니 일일투어를 신청해 돌아다니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 렌트 비용, 기름값 등등 생각해보면 더 싼 방식이기도 하니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 더 맞는 것 같다. 첫 투어는 레이캬비크 근교면서 아이슬란드의 독특한 지형을 종합세트로 살필 수 있는 골든서클(Golden Circle) 투어를 신청했다.


  하지만, 기상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 아이슬란드에 머무르는 6일 내내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고, 그나마 가장 좋은 마지막 날 마저 구름이 껴 있다. 섬나라인 만큼 오히려 날씨가 변덕스럽기를 바랐으나, 하늘도 야속하시지, 골든서클 투어를 하는 여행 첫날부터 강풍 주의보가 발령, 20m/s이상의 바람이 부니 조심하란다. 오로라는 커녕 몸이나 건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골든서클은 싱벨리어(Þingvellir) 국립공원, 가이저(Geyser), 굴포스(Gullfoss)가 있는 지역을 부르는 명칭. 싱벨리어 국립공원에서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가이저에서 화산과 지하수의 콜라보레이션인 간헐천을, 굴포스에서 웅장한 폭포를 볼 수 있다.


아이슬란드의 땅, 싱벨리어 국립공원

  숙소 밖을 나서니 엄청난 바람에 몸이 떠밀려 헛걸음을 한다. 얼굴에 몰아치는 강한 바람에 순간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 'Don't go up the hill. It's too dangerous'. 마치 hill이 던전인 듯한 느낌을 풍기며 아주머니께서는 강한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셨다. 눈 앞에 서 있는 교회가 안 무너지는 것이 신기하다.

  조금 있으니 투어 차량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운전하시는 할아버지께서는 매우 평온한 표정이다. 이름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버스에서 만난 가이드는 바람이 거세지 않냐며 처음으로 여행자들이 느끼던 바람이 헛것이 아님을 증명해주며 이내 별 거 아니라며, 아이슬란드인들은 다 익숙하다며 안심을 시켜준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달려 도착한 싱벨리어 국립공원. 붉은 자갈땅, 노란색 풀로 뒤덮인 민둥산, 검정 모래. 싱벨리어 국립공원의 모습은 아이슬란드 지형의 민낯으로 아이슬란드의 웬만한 특징들은 모두 볼 수 있다.


화산이 만들어낸 얼음땅

  아이슬란드의 첫 번째 특징은 화산. 구멍이 송송 뚫린 붉은색, 검정색 자갈들이 아이슬란드가 화산에서 기인했음을 보여준다. 지하에 많이 포함된 철과 황은 용암 속에 섞여 나오면서 아이슬란드의 땅에 다양한 색을 입혔고 흘러나온 용암은 부글부글 끓다가 서서히 굳어가며 구멍이 많은 화산암 땅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우리나라의 황토지대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붉은 진흙이 아니라 붉은 자갈이라는 점.


원래 양쪽 바위는 붙어있었지만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고. 아이슬란드는 지금도 움직이고(커지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사실 꽤 핫한 곳에 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아이슬란드가 지질적으로 꽤나 시끌벅적한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의 경계 위에 있는 땅이라는 것인데 두 판이 밀당하며 땅이 부딪히고 쪼개지고 난리법석이니 화산 활동이 활발할 수 밖에...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아이슬란드가 위치한 두 대륙판의 경계는 판끼리 부딪히는 곳이 아닌 벌어지는 지대라는 점이다. 고3 지구과학 시절 들었던 용어를 가져와보자면 '발산형 경계'. 즉, 땅이 파고들어가며 사라지는 곳이 아니라, 용암이 흘러나와 땅이 만들어지며 두 판이 서로 멀어지는 경계라는 뜻! 이론상 국토가 넓어지고 있다.


  발산형 경계에서는 용암이 흘러나오는 해령이 발달하게 되고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 사이에도 예외 없이 북극에서 남극에 이르는 아주 거대한 해령인 '대서양 해령'이 있다. 대서양 해령부분 중 유일하게 땅 위로 솟은 부분이 있으니 그 땅이 바로 아이슬란드 되시겠다. 실제로 아이슬란드 서부는 북아메리카판에 속하며 동부는 유라시아판에 속하고 중앙에는 열곡대(해령이 땅 위로 올라오면 이름이 바뀐다)가 자리해 아이슬란드를 열심히 동서로 늘이고 있다.

  

용암이 흘러나오는 열곡대 위의 빙하로 덮인 툰드라 땅. 아이러니가 만들어내는 자연, 매력적이다. 


나를 압도할 거대한 것이 없어도, 차가운 초원은 정말이지, 웅장하고 경이롭다.

  

  국립공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두 번째 특징은 '추위'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툰드라 지대의 특성이다.

  툰드라(Tundra)기후는 극지방 기후 중 빙설 기후 다음으로 추운 기후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만을 갖춘 지역이다. 여름에는 눈이 녹아 질척한 땅이 펼쳐지고 겨울에는 눈에 덮이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여름의 질척한 땅 덕에 이끼류가 많이 있고 풀이나 가끔 작은 키의 관목 정도가 자란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북부 지방에서 툰드라 지대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내가 갔던 남부는 그보다 좀 더 따뜻해서 이끼보다는 풀이 더 많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노란색의 키작은 풀들이, 척박한 화산암 지대를 덮고 가슴을 울리는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


바람 부는 소리만이 들리는 넓은 땅을 보고 있으면 압도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하염없이 앉아있어도 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연을 느꼈다면 이런 느낌이었겠지.


행복한 마음에 삼각대를 세우고 사진을 남겼다. Icelandic Landscape_1

삼각대를 세우고, 흔들리는 초원을 담기 위해 노출을 길게 잡아보았다. Icelandic Landscape_1
으흐흫




Geyser 지대. 땅 속의 황은.. 아름다운 색과.. 흥미로운.. 냄새를 남긴다.


불과 얼음이 만날 때

  용암의 열기와 빙하의 한기 모두 생명을 허락하지 않는 극한의 특성이지만 아이슬란드는 자비롭게도 두 극한을 적절히 화해시켜 '따뜻함'을 마련해놓았다. 간헐천, 혹은 geyser.

  흔히 가스 등이 분출되는 분화구를 가리켜 가이저(geyser)라고 부르곤 하는데 사실 아이슬란드의 간헐천 이름이 원조라고 한다. 땅 위의 빙하가 녹아 아이슬란드의 성긴 자갈땅 밑으로 스며들어 땅 아래의 열기로 데워지면, 뜨거워진 물은 다시 차가운 땅 위로 솟구쳐 차가운 공기에 열기를 흩뿌린다. Geyser 지대에서는 여기저기서 부글부글 끓으며 수증기를 내뱉는 분화구들, 초록색과 노란색을 띄는 이색적인 물들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 갓 올라온 따뜻한 황 성분의 냄새를 가득 풍기는 피어오르는 수증기 속에 들어가볼 때면 따뜻하다 못해 약간은 텁텁한 느낌마저 든다.


Icelandic Landscape_2

  80~100도 되는 뜨거운 물이니 흐르는 물에 손대지 말라는 경고판이 드문드문 꽂혀 있는 길을 걸으며 간간히 얼굴에 느껴지는 따뜻한 습기를 즐겨본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생각했던 아이슬란드의 모든 자연이 다 보이는 듯 하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너도 아이슬란드 여행의 대표다'라고 중얼거리며 'icelandic landscape _2'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가이저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이 하늘 높이 솟구치는 물기둥이다. 나도 그 모습을 실제로 보면 어떨까 많이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꽤 높이 솟는다. 부글부글 끓는 물이 어떻게 솟구치는 것인지 궁금한게 나 뿐만은 아니었는지, 골든 서클 내 geyser 중 솟구치는 분화구 근처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가이저는 5~10분 간격으로 솟구친다. 분화구에 들어있는 물은 마치 금방으라도 솟을 듯 말 듯 밀당을 하며 출렁이는데, 이번에도 밀당이겠거니하며 쳐다보고 있으면 갑자기 물이 언덕처럼 봉긋해지다가 수증기와 함께 터져나온다. 펑-하며 폭발한 물은 고개를 최대한 꺾어도 꼭대기가 안 보일만큼 올라가는데,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 나름의 압도감이 있다. 떨어지는 물에 맞으면 뜨겁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되지만, 차가운 공기와 만난 수증기는 그 열기를 금방 잃어버린다.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맞으며 온기를 주섬주섬 챙긴다. 약간의 냄새와 함께.


  가이저 근처에 있던 식당에 앉아있으니 음식을 시킬 것이 아니면 나가라고 한다. 가격표를 보니 차마 음식을 살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건물 밖의 벤치에 앉아 식빵 사이에 햄을 끼워서 우적우적 먹는다. 처량해 보일 것 같으면서도 나름 재밌다고 느낀다. 건물 밖으로 나가라지! 나의 몸은 강인하다!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눈치 없는 배는 속을 좀 따뜻하게 하고 싶은 뭔가 마실 것을 요구한다. 하는 수 없이 식당에 들어가니 450isk짜리 자판기 핫초코가 보인다. 맙소사 자판기 핫초코가 4500원이다. 처음으로 학교 학식이 그리워진다.


Gullfoss. 황금 폭포라는 뜻.

섬나라의 숙명, 거센 바람

  오늘 투어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굴포스에 도착하니, 말도 안되게 강한 바람이 몰아친다. 주변에 풀 밖에 없어 망정이지, 도시였다면 행여나 뭐라도 날아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 하지만 난 뭐가 날아올 것이 있지 않는 한 강한 바람을 정말 좋아한다. 일행들 눈에 띄지 않게 팔을 쭉 펼치고 바람에 기대본다. 바람을 마주보고 약간은 앞으로 기울여도 강한 바람이 날 세워주는 것이 왠지 너무 즐겁다. 언젠가 정말 날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폭포를 향해 다리에 힘을 주고 나아간다.

  폭포에 다가갈 수록, 물인지 자갈인지 모를 알갱이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얼굴을 따갑게 때린다. 실로 엄청난 바람이로세, 얼굴이 너무 따가워 장갑으로 얼굴을 가리고 앞으로 간다.


나무가 자라지 않으니 바람을 막을 수가 없고
바람이 막힘 없으니 나무가 자랄 수 없다

*음성피드백?


  흐린 날씨와 노란색 풀들 때문인지, 폭포도 노란 빛을 띄는 것처럼 보인다. 물들은 중력을 따라 떨어지다가 바람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한다. 그 모습을 바람을 이겨내며 바라보고 있으니, 바람이라는 물 속에 마치 잠긴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마치 하나의.. 바람계(-界)에 들어온 것 같다. 바람이 거센 탓인지, 날씨 탓인지, 폭포가 아름답다기 보단 묵직하고 강해보인다. 곰과 같달까.


곰foss

  한 때는 넓은 강이었으나 지반이 양쪽으로 확장되면서 강이 흐르던 지반이 가라앉으며 폭포가 형성되었다고 안내판에 써있다. 역시 활발한 지각활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격한 지형환경이다. 

  안내판을 찍어 집에 가서 읽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안내판이 바람이 가장 거센 곳에 있다. 카메라를 꺼내기는 커녕 몸의 균형 잡기도 바빠 슬쩍 읽고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내 다리가 좀 더 튼실했으면 가능했었을까. 운동해야겠다.


  집에 돌아와보니 사진을 찍던 내 얼굴이 어땠을지 생각해보니 주변에 있던 내 동행들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좀 불쌍하게 보더라.


저는 베네딕트를 좋아합니다.


  친절하게도, 투어버스는 우리 숙소 앞까지 우리를 데려다준다. 방에 들어가니 4시 반이었지만 벌써 밖은 어둑어둑. 일행들과 산책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어두우니 만사가 귀찮아진 관계로 장만 봐서 돌아왔다. 파스타를 간단히 해먹고 오로라 예보와 영화를 보며 긴 밤을 보낸다. 내일은 시내를 돌아다닐 예정이니까, 편안하게 잠든다.




다음편에서는 레이캬비크 시내, 빙하 마을 요쿨살론, 블루라군 일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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