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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Nov 24. 2016

Ironic 아이슬란드 _ 도시와 건축

#교환 여행 #Iceland

  나의 아이슬란드 여행은 날씨와의 눈치싸움이었다. 첫 투어는 강풍과 함께였고, 둘째날은 해 떠 있을 때 맑더니 저녁에 구름이 드리웠고, 셋째날에는 비가 쏟아지더니 다섯째날까지 우박이 내리기도 하는 등 변덕스럽기 그지 없었다.

  처음에 좀 걱정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비나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이 썩 좋았다. 뭔가 '관광'에 좋은 날씨가 아닌 아이슬란드의 진짜 날씨를 경험한다는 느낌을 주니까. 되려 즐거웠다. 쫄쫄이를 안에 입고 겉에는 두꺼운 점퍼, 목도리과 장갑을 끼고 대자연 속을 비바람과 함께 걸어다니면 내가 탐험가가 된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느낌을 매우 즐기는 편.

  방수 신발과 두꺼운 점퍼로 물이 고인 질퍽한 땅이나 덤불 사이를 다니면 내가 보호받는 느낌이 들어 안정감이 생긴다. 한층 즐거워진 기분 덕에 더욱 더 깊은 곳까지 걸어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첫 날 있었던 골든서클 투어 때는 이색적인 아이슬란드의 경관에 심취했다면, 이번에는 도시의 모습,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빙하를 보며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고자 한다.

  아이슬란드 여행기 2편 시작.

숙소를 나서면서

소박한 도시

레이캬비크와 사람들


정갈하고 정성이 담긴 건축

  골든서클 투어 다음날은 레이캬비크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오로라 예보를 보니 저녁쯤 구름이 레이캬비크 상공에서 살짝 걷히고 깊은 밤에는 다시 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고 나온다. 행여나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저녁 7시쯤 진행되는 오로라 투어 상품을 걸어놓고 시내로 나섰다. 하 구름 너란 밀당 고수.

  숙소 바로 앞이 고맙게도 레이캬비크의 상징인 할그림스키르캬(Hallgrímskirkja - 발음하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  이하 할교회) 교회다. 독특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쳤던 교회를 속까지 제대로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유럽에서 보던 여느 교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딕이 아닌 모던함.

  첫 인상은 유럽의 여느 전통 교회들과는 달리 매우 모던한 느낌을 준다는 것. 그 어떤 음각도 채색도 없는 밋밋한 회색 콘크리트 외벽, 작은 창문, 직선으로 만들어낸 곡선. 레이캬비크에 버스를 타고 처음 도착했을 때 건물들을 보면서 느꼈던 도시의 느낌, 전날 골든서클을 돌면서 느꼈던 자연이 모두 드러난다. 화산섬의 대표적 지형인 주상절리 지형에서 모티프를 얻어 직선을 바탕으로 곡선을 구현하고 간결하고 소박한 아이슬란드 어촌의 느낌을 떠올리는 외관을 디자인한 것이 아이슬란드다.

  교회의 외관만으로 아이슬란드의 색, 자연, 문화, 도시를 모두 담을 수 있는 것이 놀랍다. 건축가가 교회 하나로 이 나라를 상징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성공했노라고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겠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본다.



  외관은 다소 우울할 수 있는 색이었다면, 교회의 내부는 간결함이라는 키워드를 간직한 채 깔끔한 흰색을 띄고 있었다. 대리석과 같은 광택을 띄는 화려한 암석 대신 할교회는 은은하게 빛을 반사시키는 무광택 내장재가 건물의 내부 벽면을 이루어 검소한 느낌을 유지했다. 노란색 조명은 천장을 비추며 무광택 재질 특유의 은은한 간접 조명 역할을 하여 차분하고 정갈한 느낌을 내고 있었다.

  창문은 전통적인 유럽 교회의 형태를 따른 듯 하지만 고딕양식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얇고 높다. 무엇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창으로 비치는 흐릿한 날의 회색빛이 감도는 푸르스름한 색이 건물 내부의 깔끔함과 잘 어울린다. 프랑스 생샤펠(saint chapel)에서 보았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상상해보니 왠지 정갈함이 멋인 할교회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할교회에서는 디자인의 통일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앞서 언급했 듯이 교회의 컨셉인 '정갈함'이 곳곳에 묻어있는데 이와 비슷하게 건축 디자인의 모티프였던 기암절벽의 주상절리의 형태도 건물 곳곳에서 고집스럽다 할 정도로 드러난다. 청각적으로 교회에 신성함을 부여해주는 오르간 역시 주상절리의 모티프와 정갈함이라는 컨셉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무광택 나무 재질의 파이프 받침으로 컨셉을, 뾰족한 직선으로 모티프를 지켜냈다. 파이프의 배치 또한 교회 외관의 탑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건물 내부의 기둥도 주상절리의 형태를 하고 있고 하물며 교회 내부의 의자도, 주제가 되는 형상과 질감을 유지하고 있다.

  과하지 않게 모든 것이 은은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정갈함, 통일성, 빛, 오르간 소리 모두 은은하게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교회에 들어갈 때 마침 오르간 연주를 하는 시간대였는데 눈과 귀가 즐거운 깔끔한 건축물 안에서의 편안한 시간이었다.


목재나 석재 특유의 무광택에서 느껴지는 은은함을 정말 좋아한다. 나중에 나만의 집을 짓게 된다면 할교회를 떠올리겠다고 다짐했다. 일단 돈부터 잘 벌어야겠지만.


레이캬비크의 번화(?)가

  할교회 주변의 길들은 모두 번화가로 그 중 한 길을 따라 다운타운으로 내려간다. 수도의 번화가라고 하기에는 참 소박하고 조용하기 그지없다. 가장 큰 길이 왕복 6차선, 대부분의 길은 갓길 주차가 가능한 도로다. 주변에 있는 건물들은 2~3층 높이의 삼각형 지붕을 얹어놓은 아기자기한 모양. 무늬 없는 단색의 집들이 모여있으니 귀엽고 가끔 눈에 띄는 노란색과 빨간색이 따뜻한 느낌을 간간히 던져준다. 1층에는 모두 이러저러한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다. 디자인샵, 옷가게들이 많이 보인다.


  다운타운에 도달하면 큰 길이 하나 보인다. 그 길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유리로 된 특이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Harpa(와 발음이 된다!)라는 이름의 공연당.


발음하기 쉬워서 고마운 Harpa

  기울어진 직사각형 형태를 큰 틀로 삼고 있는 Harpa 역시 아이슬란드의 지형을 컨셉으로 하고 있다. 할교회에 이어 음악당까지 화산암 지대를 연상하게 하니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주상절리의 형태를 꽤 상징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나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전체적인 틀도 인상적이지만 창문 하나하나가 일그러진 직육면체 형태다. 이동하며 건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빛이 반사되어 건물이 반짝인다. 가까이서 보면 다 짙은 녹색 계열의 창문들이지만 어떻게 한 것인지 빛을 반사할 때만큼은 제각기 다른 색을 반사시킨다. 주황색 자주색 녹색 파란색. 가이저에서 보았던 이색적이지만 아이슬란드에서만큼은 '자연의 색'으로 불리는 것들이 빙하와 암석을 상징하는 듯한 짙은 녹색계열과 회색의 외장재를 바탕으로 역동적으로 빛난다.

  볼 때는 '오 뜬금 없이 멋진 건물인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집에 와서 글을 쓰며 회상해보니 참..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고 지어냈을 지 대단하단 생각 뿐이다.


내부에서는 창이 특별한 색 없이 일반 투명한 유리로 보인다. 외부에서만 청색으로 보이는 창을 사용한 모양.

  돌아다닐 당시, 내부로 들어서니 뭔가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와-. 바닥은 차분한 목재에 벽면은 검정색을 사용해 꽤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면서 다소 어둡다. 눈길을 위로 올리니 벽면을 따라 사선으로 배치된 계단이자 로비의 역할을 하는 다리(?)들이 보인다. 얽히고 설킨 계단들을 보니 높다 생각하면서도 그 구조가 좋아 괜히 걸어보고 싶어진다. 일행 중 한 명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기숙사 계단을 떠올렸다 한다. 직선을 사용해 규칙적이고 정형적일 듯 하면서도 막상 보면 비정형의 극이다.

  눈길을 천장으로 돌려보면.. 뭔가 건물을 가만두기 싫었던 모양이다. 천장도 건물 외관 벽면과 비슷한 테마로 진행이 되는데 빛을 투과하는 유리 대신 거울로 겉을 마감했다. 수은이 끓는 듯한 모양에 인터스텔라에서 나오는 5차원 세계의 테마가 언뜻 떠오르기도 한다. 바닥에서 위로 쭉 훑으면 무언가 해체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 한편으론 무섭게 느껴져서 괜히 땅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한다.

  공연을 볼 수는 없었기에 이 정도 둘러보고 고래 박물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슬란드스럽다는 것을 정의할 수 있는 정성이 가득 담긴 건축이었다.


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집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어보인다.
난 건축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건물 도시 좋아하는 비행기 전공하는 공대생.


실내 디자인과 노르딕 패턴

  레이캬비크 시내에는 관광객들을 겨냥한 디자인샵들이 참 많다. 기념품 가게들보다 특징적인 디자인 테마를 갖고 물건을 파는 상점이 더 많은데, 희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주볼 수는 없는 감성들이 꽤 있다. 책들도 같이 팔곤 하는데, 한 분야에 이 정도의 책을 낼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 된다면 성공한 덕후를 넘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쓴 인생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디자인과 책. 두 얘기를 잠깐 남겨놓고 싶다.



  크리스마스 샵인 줄 알고 들어가봤던 가게. 주방용품들을 파는 곳이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주방용품을 주로 디자인'하는 가게다. 은색과 검정색의 광택 및 무광택 질감, 그리고 곡선을 주 테마로 삼고 있는 가게였는데 유일하게 채도가 있는 색인 빨강으로 간간히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여기 물건들이 어울리려면 자기 집 주방 역시 검정색이나 흰색의 광택이 컨셉이어야할 것만 같다. -> 좋은 인테리어 ->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가격이 적혀있긴 한데.. 한국 원단위어야 말이 될 것 같은 가격들이다. 차마 won단위죠?라고 물어볼 수도 없고 허허허. 그냥 나왔다. ->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주륵.



  나무로 만들어진 안경테와 한 디자인 샵에서 팔던 나무 시계를 발견했다.상점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둘 다 아이슬란드 토속상품은 아니다. 안경테는 덴마크와 이탈리아에서 온 것이었고 시계는 wewood라는 브랜드의 상품. 하지만 길거리 디자인샵에서 목재 악세서리를 발견하기는 처음이었다. 나무 시계는 하나 장만하고 싶었었는데 미리 알아보던 것이 가격면에서(는 당연히)나 디자인면에서 더 나은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


  디자인 샵을 구경하다 보면 책들도 파는데 그 중 한 가게에서 참 많은 책을 팔던 곳이 있었다.



  책들 표지가 이쁘고 깔끔한 것이 책장에 꽂아두는 용인가 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디자인샵이라 겉표지를 디자인 대상으로 삼은 책들을 파는가 하고 책들을 펼쳐보는데, 겉치레만 한 책들이 결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5~6cm는 되는 두께에 글자와 그림들이 빼곡한 것이 강의교재로 써도 될만한 것들이었다. 실내 디자인, 인테리어에 관한 책들이 주로 많고 건축에 대한 양질의 책도 많다.

  관심이 갔던 왼쪽 위 사진의 photographers A-Z, 오른쪽 위의 Architectural THEORY, 아래의 Wildlife, 오른쪽 아래의 Modern Architecture A-Z 네 권을 훑어본다. 하나에 푹 빠져서 통달했다 하면 이 정도급은 나와줘야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단순히 내용이 방대한 것을 넘어 그 내용들이 매우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 되어있다는 점.

  사진에 대한 Photographers A-Z는 테마 별로 명사진들을 나눠 자세히 설명해놓았는데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백과사전으로 하나 구비해놓아도 좋아보였다.  Architectural theory는 르네상스~현대까지의 건축양식을 매우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르네상스와 로코코를 커버하면서 교양서적의 느낌도 주고 현대 건축의 트렌드까지 다뤄 현직 건축가분들도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각 양식의 기초부터 심화된 내용까지 정말 자세한데 저자가 한 명. Wow.

  저런 책들이 쌓여있다.


포괄적인 제목을 사용하는 게 거만한 듯 하면서도 자신감 넘쳐보이지 않는가? 제목에서부터  내가 이 분야의 모든 것을 알고있다는 패기와 자신만만함에 매력이 폭발한다.
나중에 저런 책 한 권 정도 남겨보는 게 목표가 되어버렸다. 제목은 뭐로 할까? "Aviation A-Z"? 킄

졸업부터


  디자인샵 외에도 옷가게가 많다. 아이슬란드의 특산품인 양털 니트인데 그 패턴이 바로 노르딕 패턴이다. 노르웨이에서 왔으니까 원조는 노르웨이인데 왜 아이슬란드에서 특산품으로 팔지? 싶지만 생각해보니 이들이 노르웨이의 후손. Aha. 노르딕 패턴을 입힌 Handmade knit, 장갑, 목도리 등을 특산품으로 판매하는데 가격은 상당하지만 100% 양털옷인 것을 감안하면 또 합리적이어 보인다. 보통 옷보다 까끌까끌한 느낌인데 새 옷임에도 보풀이 꽤 많아보인다. 정전기가 많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싶은지만 보온성만큼은 대단하다고 하니, 추운 지방에 사는 스칸디나비아 사람들과 아이슬란드인들은 양털옷 몇 벌 정도는 구비해놓는 듯 하다.

출처: http://www.childrensalon.com , 멍청하게도 노르딕 패턴을 담은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었다.



이제 고래 박물관으로 향한다.

  박물관은 항구 쪽에 있는데 걸어가다 보니 약간은 버려진 듯한 황무지가 보인다. 녹슨 철은 스산한 느낌을 풍기지만 그 질감과 색감이 꽤 차분하기에 잘만 쓰면 꽤 멋진 소재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건물의 간판에 쓰인 녹슨 철과 황무지에 버려진 낡은 어선하나를 발견, 대비해보았다.

녹슨 철을 이용한 '무광택'에 '나무색' 간판.. 취향저격;


버려져있던 녹슨 어선




다음편은 마지막 편인 '하이라이트' 편!
고래 박물관, 요쿨살론, 블루라군 일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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