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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Oct 14. 2020

예측의 법칙 #0

미래를 예측하기

오늘도 무한히 사실에 가까워졌다.




고등학교 2학년, 함수가 뭐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숫자가 뭐냐랑 다를 바 없는데 그냥 식이지요. 아니지. 뭐 넣으면 뭐 나오는.. 그게 중요한거지. 뭐 넣어서 뭐 나오는게 핵심이란다. 어차피 이렇게 설명할 거 왜 무섭게 물어보는데. 뭘 넣어서 내가 모르는 뭔가가 튀어나오는 게 그래서 왜 중요한걸까요.

 [y=f(x)]


이해하는 것은 설명서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래서 모든 앎은 설명하는 것이라 체득했다. (내가 너를 이해해. 도) 과거 머리가 비상했던 이들은 변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중 숲보단 나무에서 출발한 이들은 변화를 숫자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철수와 영희는 무한히 얼음판 위에서 서로를 밀치기 시작했는데.. F=ma가 미안해..

[a=F/m]


변화를 설명한다 했다. 내가, 너가, 그것이, 규모가, 처한 상황을 알면 나아갈 변화를 설명한다. 움직임에 대한, 열에 대한, 돈에 대한, 규모에 대한 설명서의 존재. 그것들의 변화를 안다는 것은 미래를 추측하는 것을 너머 설명 가능한 형태로 '알게' 한다. '함수'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알게 하는 힘. 미래에 대한 불안을 기대로 바꿔주는 힘.

[나의 현상황을 state, X라 표현하고.

변화는 점을 찍어 나타낸다. X'

그 변화의 변화는 점을 두 번. X''

x''=v'=a=F/m]


변화란 시간의 이야기. 시간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 곧 변화의 의미이며, 찰나의 순간 설명서를 따라 충실히 바뀐 상태 때문에 기존의 방향은 과거의 것, 이젠 오답이 된다. 결국 지금 이 자리에서 설명된 미래는 가까운 미래. 변화의 설명서는 미래에 그려질 모든 것들의 궤적을 알려주지도, 미래의 모든 시간 속 존재를 채우는 데에도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미래의 이정표 역시 현재에 머문다. 하지만 너무 가까운 미래의 예언자는 예언자라 할 수 없잖아.

[F=f(x,t) (F is function of t)

결국, X''은 일정치 않다.]


운 좋은 몇몇 함수는 미래까지 정확히 그려내는 또 다른 함수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것이 예측한 미래는 너무 단순해서 무용했다. 말이 안되거나, 무의미하거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 손에 있는 변화의 설명서는 그래도 가까운 미래까진 알 수 있댔지. 설명서를 따라 아주 가까운 미래로 가자. 그리고 거기서 설명서를 다시 참조하자. 거기서 예언된 가까운 또 다음 단계의 미래. 또 가자. 또 보고. 또 가자. 추적은 우리에게 미래를 안겨다줄거야.

[x''=v'=F(t)/m dt

v(t)= ∫F(t)/m dt

x(t)= ∫v(t) dt

이젠 점이 필요없어!

변화를 따라 그려낸 미래의 궤적 그 자체니까!]


얼마나 가까운 미래로 가고 설명서를 펼쳐야하는 거지? 찰나의 순간 동안에도 변화하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과거에 받아놓은 예언서는 끊임없이 '틀려지고' 있는데. 과거의 예언서는 과거를 기준을 했을 뿐이야. 그것이 정확했던 때는 예언서를 받던 그 때 뿐이야. 우리가 찰나를 상상하는 순간 예언은 빗나가고, 우리는 이미 미래를 헛짚는거야.

우리의 최선은 최대한 가까운 미래만을 예견하는 것일 뿐. 추적하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나아갈 뿐.

[v(t+1) ≈ ∑F(t)/m dt

x(t+1) ≈ ∑v(t) dt

dt->0]


미래를 추적하는 것마저 오류가 필연적이라면, 우리가 찰나의 찰나의 찰나 단위를 상상할 수 없다면, 우리는 미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것인가?

그렇지.

다만, 최대한 비슷할 뿐.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오류와 오차에 대한 고민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지. 이건 모든 설명서들이 어떤 '가정'을 두고 세워졌다는 사실마저 차치하고서도 존재하는 오류.

이정표를 따라 달리는 찰나가 만들어내는 현실과의 괴리는, 즉 예언 자체의 오류는 미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쌓이고 쌓여 겉잡을 수 없이 증폭될 것이니, 꾸준히 미래 속에서 이 오차들을 발견하고 고칠 수밖에, 꾸준히 미래 속을 살아야할 수밖에, 여전히 불안해할 수밖에.


[세상은 미분(')으로 설명되고, 적분(∫)으로 기술된다.

수치적분(∑, numerical integration)은 해석적으로 적분되지 않는 식(손으로 풀 수 없는 것들)을 시간을 추적해나가며 적분하는 방식으로 무수한 시뮬레이션, 해석 기술의 중심이 된다. 미래를 그나마 빠른 시간 안에 정확히 예견하고자 많은 적분 기술이 만들어졌고, 실질적으로 현실과 거의 근접한 결과를 얻는 수준에 이른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꾸준히 의심받고 우리는 검증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오늘도 무한히 분명하게 틀려간다

Law of forecast #0 : It's w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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