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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Jun 18. 2020

나비의 소리 1편

사소한 소식의 전달



Ch1. 나비의 소식


카페 1층 테라스에 앉아 보이지 않는 나비를 상상했다. 난간 바로 너머 키 작은 진초록 풀에 나비를 앉혀본다. 나비는 날갯짓을 하며 공기를 휘젓다 여섯개의 다리로 지탱해야하는 육중한 무게를 풀에 털썩 얹는다.


나비의 날개가 만들어낸 작은 혼돈. 작은 난류.

몸을 들어올리기 위해 아래로 밀어낸 공기뭉치.

밀려난 공기는 양옆으로 퍼지며 하트모양을 그리다 사그라든다.


문득 든 생각.

눈앞의 나비가 만들어낸 흐름을 난 느낄 수 있을까.

저 미약한 혼돈이 나에게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릴까.

그 시간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너무 약해서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사실 느끼길 바라는 게 욕심이긴 하지. 그렇다면 질문을 살짝 바꿔볼까. 느껴지지도 않을 흐름은 언제쯤 나한테 와닿을까?

그 흔들림이 너무 약해서 올 일이 애초에 없으려나? 글쎄. 모든 움직임들이 멈춘 극도로 고요한 세계에 이 나비만이 남아 날개를 펄럭이는 상상을 해보면, 날갯짓 자체는 분명 미약하나마 그 세계에선 격변이고, 그 영향은 공간 속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물론 무한히 작아지겠지만, 어쨌든 퍼져나갈 것이다. 중요한 건 이거다. 난간 옆 나비. 분명 나한테 어떤 영향을 주긴 줄텐데 말이야.


나비와 바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나비 효과'.

한 기상학자의 발표 부제에서 탄생한 '나비효과'는 "복잡계는 초기값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잡는다. 쉽게 말해, 약간의 차이가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어쩌면 그냥 복잡한 건 감히 예상하려 들지 말아야한다는 나비의 경고 정도로 해석될 수도. 기상청 지못미


공돌이의 노트 1
나비효과는 미약한 효과가 거대한 파국적 결과로 변모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필 부제로 날개짓과 돌풍이란 단어를 쓰는 바람에 발생한 오해.


하지만, 이건 나비의 살랑거림을 느끼고 싶어하는 내가 궁금해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다. 어떤 흐름이 생기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다. 약하디 약한 바람이 언제 나에게 전달될 것인지, 나비의 소식이 언제 나에게 와닿을 것인지가 궁금한 거니까.


사진 -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면 하트를 볼 수 있었을텐데.. ㅠ
사진 - 어쩔 수 없이 비행기 사진으로 대체. 아무튼, 하트모양이 주제는 아니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Ch2. 얼음이 녹는 동안


나비의 소식, 이걸 왜 궁금해하게 된걸까?


땡땡 얼어있는 얼음을 꺼내두면 머잖아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우리는 배웠다. 얼음은 0도일 때부터 녹거나 언다고. 그리고 녹거나 어는 도중에는 0도가 유지된다고. 이건 끓을 때도 마찬가지다. 냄비에 올려둔 물은 뜨거워지다가도 끓기 시작하면 무조건 100도를 유지한다. 모든 물이 다 끓어서 사라질 때까지.


24도 밑으로 못 내리게 막혀있는 에어컨을 튼다. 에어컨은 말한다. 방이 지금 24도니까 실외기를 끄겠다고. 아니 잠깐 그 24도는 어디 기준인데. 너가 느끼는 온도는 니 바로 옆 온도겠지 센서는 너 안에 있을테니까. 너만 시원한 너만의 24도.


교복 입을 시절, 접시에서 녹고 있는 얼음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정말 다 0도라고? 녹아내린 얼음은 물이 되었고, 접시는 흘러내린 물로 얕고 넓게 찼다. 가운데에는 더워하는 약간의 얼음만이 남아있을 뿐. 지금 토치로 접시 가장자리를 달군다면 참방거리는 물을 끓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더워하는 얼음을 남긴 상태로라도. 그럼 이 접싯물 온도는 100도야 0도야? 끓는 기름과 녹는 얼음이 뒤섞인 튀김 아이스크림. 뜨거운거야 차가운거야?


상태를 이야기기할 때 우리는 매우 순진한 가정을 한 가지 두고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내가 있는 이 공간이 모두 균일할 것이라는 가정. (아닌 거 알면서도 자주 그런다니까?) 에어컨은 자기 근처 온도가 24도니 방이 24도일 것이라 생각하고, 얼음과 근접한, 적어도 얼음의 내부는 0도, 끓는 물의 중심은 100도가 맞기에 주변의 물이 모두 그 온도일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순진하게 생각해왔던 방식을 고수한다면, 날갯짓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 순간, 그 여파는 즉각적으로 나에게 전달되었을 것인데, 다만 그 것이 너무 미약해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일 뿐. 나비와 내가 아주 가까웠으니 바로 전달된다 치자. 그렇다면 좀 더 스케일을 키워서 지구 전체를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한국에서 펄럭인 나비의 날갯짓이 한순간에 지구 전체로 휙?


아니겠지 설마.


나비: 슈슉-


한 지점이 동시에 두 온도일 수는 없는 법. 접시 중심의 얼음에서 가장자리의 끓는 물까지, 온도는 0과 100 사이를 점진적으로 거쳐갈 것이라는 합리적 설명을 우리는 마음의 소리로 다 알고 있다. 사실로서 전달되는 지식은 설명의 편의성을 위해 때론 정적이고, 단순하며, 강제적으로 균일하다. 이 것들이 만들어낸 순진한 착각은 세상은 균일하지 않다는, 그래서 어디든 점진적인 변화가 존재한다는, 모든 것에는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놓치게 만들곤 한다.


나비의 날갯짓이 궁금한 이유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비는 조심스럽고 작은 혼돈이다. 폭죽의 폭발과 같은 다소 폭력적 소식이라면 그 전달 자체에 의문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내 귀청을 공격했을 것이니까. 나비이기에, 설마 나에게 느껴질까 싶은 연약함과, 나에게 분명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약한 확신 사이에서, 그 전달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공간 속으로 퍼져가는 보이지 않을 소식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비의 소식은 어떻게든 전달될 것이라는 것. 하지만 즉각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이 두 가지 생각의 울타리가 마련되었으니, 자, 이제 좀 더 본격적인 질문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비의 소식은 얼마나 빠르게 퍼져나갈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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