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같은 글쓰기가 되다니
7시 7분. 오늘은 딱 30분만 써보자. 더도말고 덜도 말고 딱 30분 쓰고 30분 땡 하면 바로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 놓자. 이상하게 조금 떨리는 기분이다. 약간 시험보는 것 같다. 시간을 제한한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시험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책상에 책가방 올리고 보던 시험, 답을 모르겠어서 가슴 두근두근하던 때, 빨간 색연필이 처참하게 그어져있고 65라는 숫자가 있었던 4학년 때 사회 시험지. 무슨 시험을 그렇게도 자주 봤는지, 분명 목적은 "얼마나 배웠고 뭘 모르는지 확인해보자." 였을텐데 분위기는 항상 너무 무서웠다.
긴장하지 않았던 시험이 있었을까? 대학 때 봤던 중간, 기말 고사는 덜덜 떨지 않고, 친구가 "시험 잘 봤어?" 하면 "응" 대답이 저절로 나왔다. 아리까리한 답안 중에 하나 골라야 하는 것이 아니었고 배운 내용을 쓰면 됐다.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을 도서관 가서 더 찾아보고 리포트 쓰면서 평소에 어느 정도 시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머리를 믿고 그래 난 다 알아 하며 놀면서 시험 잘보는 학생은 아니었고 실수할 지 몰라, 시인 이름을 잘못 쓸 수도 있으니 다시 보자, 또 써보자 하며 손에 볼펜 하나 항상 쥐고 살았다.
여기까지 썼는데 벌써 19분이다. 긴장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거 이거 제대로 긴장하고 있나보다. 시험이라는 단어가 제일 무서웠는데 여전히 무서운 호랭이 같은 녀석이다. 가장 긴장한 시험은 뭘까? 수능과 교사 임용고사 아닐까? 이 두 시험은 일 년에 한 번 있다 하는 무기를 갖고 있다. 너무 잔혹하다. 일 년에 한 번 이라니. 고스란히 다 갖다 바친 일 년을 다시 잡아먹겠다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달려드는 호랑이가 업그레이드 되어 시험 제대로 안 보면 달력 열 두장을 먹어버리리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첫 해, 덜덜 떨면서 심장 터질 듯한 상태로 봤고 1점 차로 떨어졌다. 말이 1점차지 그 사이에 수 천명이 들어있다고 했다. 두 번 째 도전 하던 그 해, 논술 시험과 수업 실기 및 면접에 객관식 시험이 추가되어 3차로 바뀌었다. 객관식이 들어오다니 누가 누가 제일 답이니 고르는 고민, 공부를 제대로 했으면 다 보이는 거 아닌가 싶지만, 이런 경쟁 시험에선 실력과 함께 순위를 매겨야 하므로 문제 내기 위한 문제도 많다. 내신 성적을 위한 중고등 학교 시험도 마찬가지다. 시험을 위한 문제 으 정말이지 싫다.
두 번째 도전 하던 때는 영어 교육에 열을 올리던 해라 경기도에서만 무려 125명을 뽑았다. 그나마 영어과는 어느 지역 더 선발한다가 문제지 매년 뽑기는 했다. 하지만 어떤 과목들은 올해 뽑느냐 마느냐, 전국 티오가 몇 명인지 한 자리인지 0인지 공지가 뜨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동물학과 졸업한 내 친구는 "올해도 0이래." 하는 소리를 여러 해 했고, 전국에서 한 자리수로 뽑을 때, 한 번 낙방, 두 번째 합격, 방방 뛰며 축하한다고 수화기 터지도록 소리 질렀던 날이 생각난다.
5분 남아버렸다. 아..... 키보드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손을 놀릴 줄 알았더니 답을 모르는 시험 보는 학생마냥 계속 시계를 보고 있고 손은 자꾸 멈춤 상태로 기다리고 있다. 내가 그린 그림은 이게 아니었는데... 시험 종료 5분 전입니다는 시험을 감독하는 입장이 되어도 너무 떨린다. 학생들 긴장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고, 마지막 실수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동시에 펜을 딱 내려놓는 순간까지 내 마음도 쪼그라든다. 역시나 수능 시험 감독 할 때 긴장은 최고조에 이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 친구들이랑 '시험 없는 학교'라는 작은 책자를 만들었던 것이 갑자기 떠오른다.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만화 형식으로 만들었는데, 시험이 너무 싫다, 시험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로 시작해서 시험이 없으니 놀기만 해서 다 바보가 되었다, 그러니 시험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결국 시험 세상을 탈출하지 않고 다시 들어와버렸다.
이제 7시 37분. 약속대로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놔야 하는데 60초가 남았지! 아니 59초! 37분 59초에 내려놔야지! 마지막 1초라도 더 쓰다보면 어떤 결말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38이 되어버렸다. 아쉽다. 하지만 그만 쓰자. 아쉬워야 내일 또 쓰고 싶어질테니! 그러자. 손가락아 내려와. 이제 내려갈 시간이야. 갈 시간이라고 식세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