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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쓰기] 14. 병아리보단 드래곤!

병아리 추억에 젖은 아이들 (2025.9.28)

by 엄마다람쥐

안 자던 낮잠을 잤다. 두 시쯤에 잠들어서 밤새도록 잘 뻔했다. 아침에 아이 데리고 대전에 갔다 왔는데 오랜만에 복잡한 도로 운전해서 그런지, 전날 처음 배운 필라테스 때문인지, 오는 길에 코스트코까지 들러서 그런지 오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고, "여보! 일어나!" 소리에 5시도 넘어서 일어났다. 낮잠을 몇 시간을 잔 걸까. 그래서 밤에 잠이 안 왔다. 애들은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를 처음 보면서 "너무 귀여워. 엄마 드래곤 키우고 싶어.", "나는 핑크색 드래곤!" 하고 나는 필사를 했다. 병아리 다시 키우자고 할 땐 겁이 났는데 드래곤을 키우자고 하니 웃음이 났다. 정말 진심으로 "키우고 싶구나."라는 말이 나왔다. 병아리에 대해 다정하게 말하면 당장 마트 가서 유정란 사 올까 봐 못했는데, 드래곤을 어디 가서 사 올 수가 없다. 그래서 한없이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말이 나왔다.

어제 내 유튜브 병아리 목욕 영상에 댓글이 달렸다. 병아리 아직 키우시냐고. 그 집에도 병아리가 태어났다고 했다. 보송보송 병아리의 치명적인 귀여움은 말로 다 못하고, 의외로 사람을 따르고 클수록 조용해졌다. 병아리 때 삐약삐약 내지르는 소리라면 커서는 속으로 삼키는 소리를 냈다. 닭들은 겸손했구나. 말을 삼가는 예의가 있었네. 단 100일 만에 몸집이 몇 배가 커진 걸까? 하얀 닭은 백조같이 예뻤고, 갈색닭도 한 미모 했다. 게다가 "갈색아, 둘째야!" 하면 달려왔다. 이름도 알아듣는 천재 닭이 우리집에서 태어났다니! 한 배에서 나도 제각각이라지. 하양이는 백치미를 자랑하며 오로지 새우 사료 통 열기만을 기다렸다. 새우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고 저 멀리서부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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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차 / 71일차

아파트 사람들은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저게 뭐야, 실눈을 뜨고 다가오다가, 한순간 눈도 입도 크게 일시 정지 되었었다. "닭이에요???" 네 맞아요 닭이에요. 닭들 산책시키는 중이에요. 숲해설가 과정 내내, 그리고 아이를 숲유치원 보내며 바깥공기를 쐬고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아이 성장에 좋은지 알았으니 우리 닭들도 베란다에만 가둬두고 키울 순 없었다. 애들 키우는 것도 유난스러운데 닭을 데리고 엘리베이터 타고 들락거리는 유난 끝장인 엄마다. 처음 나갔을 때도 병아리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점점 날아올랐다. 내 자전거 바구니에 병아리집채 싣고 다니며 동네 여기저기 다녔다.

추석 때는 차에 태워서 시댁, 친정에도 갔다. "아이고, 닭을 다 데리고 왔네!" 하시면서도 재밌어하셨다. 아파트 화단은 제초제를 많이 뿌려서 그런지 먹을게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점점 다른 곳을 탐색하길래 지인 텃밭에도 데려갔는데 거기 가면 땅을 파고 먹이를 찾아먹느라 둘 다 고개를 들 생각을 안 했다. 가꿔진 자연보단 자연 그대로가 좋은가보다. 애지중지하던 닭과의 이별을 점점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털과 각질 비슷한 것이 내내 빠지고 날렸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아이들 비염이 심해지는데 느낌상인지 실제인지 모르겠지만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애들은 베란다 청소 다 할 테니 닭을 꼭 계속 데리고 있자고 했지만 여러 번 청소해도 닭 털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닭 덕분에 동네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나도 병아리 키운 적 있는 데로 시작한 대화가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웃으면서 나에게 나눠주셨다. 남녀노소 대통합을 이뤄준 닭 두 마리의 힘이 대단했다. 한 번은 아파트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손잡고 산책하다가 우리 닭을 만났다. "혹시 언제 이렇게 나오세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닭을 또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의 산책 시간이 비슷한 것 같으니 자주 볼 것 같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주 만났다. 닭을 만날 때 아이들의 눈빛, 호기심 가득해서 더 귀여운 표정들을 잊을 수 없다.

한 번은 하양이가 사춘기가 왔는지 새우 통을 열어줘도 오질 않고 자꾸 화단 속으로 숨었다. 탈출 욕구가 솟아났나 보다. 한참을 씨름하던 중에 고무장갑 끼고 빗자루 들고 청소하시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저 좀 도와주세요!!!", "무슨 일인데요?", "닭 좀 잡아주세요!", "네??? 닭이요???" 그렇게 할머니와 하양이가 한바탕 붙었다. 처음엔 "이리 와 닭아~~" 하시다가 점점 "아니 이 눔의 닭이!!!"로 변했고, 할머니 발 옆으로 쏙, 옆구리 쪽으로 휙 날아오르고, 다시 휙. 무술 하는 것보다 더 현란했다. 하지만 또 우리의 K-할머니 힘을 얕잡아보면 안 된다. 씨익 웃으시며 빨간 고무장갑으로 흰 닭을 번쩍 들어 올리셨다! 브라보!!!

"아니 닭이 돌아다녀서 내가 잡아 먹을랬더니 그 집 닭이라며?!" 아파트 청소하시는 할아버지가 놀람 가득 섞인 목소리로 소리치셨다. 잡아가랬더니 하얀 닭 잡아주신 할머니가 저기 애기 엄마가 키우는 닭이라고 말리셨다고 했다. 와하하하하 웃으시며 별일이네 별일이야 하셨다. 저도 제가 이렇게 닭을 키울 줄은 몰랐어요. 유정란이 부화될 줄도 몰랐고, 이렇게 잘 클 줄도 몰랐어요. 학교 앞에서 사 온 병아리처럼 당연히 며칠 살다 죽을 줄 알았죠. 죽을 것에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잘 크네요... ㅎㅎㅎ

매일 아침 닭과 함께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렸다. 매일 인사를 나눈 또 다른 할아버지. 청소도구 한가득 싣고 나오시는 할아버지는 아이들과 인사해 주시고 손주 이야기도 하셨다. 친구분이 포도밭을 하는데 거기서 닭도 여러 마리 키우신다고 했다. 아! 부탁드려 볼까? 닭 털에 매일 지며 100일 되었을 무렵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혹시 포도밭에 저희 닭을 맡겨도 될까요?" 며칠 뒤 데려가시겠다고 했고, 어린이집 버스 타러 가는 길에 닭 두 마리를 건네 드렸다. "여기 받아." 하시며 아이 손에 만 원을 쥐어주셨다. 서운한 마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둘째는 뭔가 손에 쥐어지니 잠시 어리둥절했다. 다행이다 눈물이 멈춘 것 같다. 돈이 뭔지 감이 없었던 아이는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다는 사실 하나에 마음이 가라앉은 듯했다. 감사하게도 포도밭 닭 유치원 사진을 보내주셨고, 그 겨울 잘 지낸다고 사진을 한 번 더 보내주셨다. 의외로 하양이가 기죽지 않고 텃세를 이겨냈다고 하셨다. 멋지다! 그 후로도 아이들은 궁금해했지만 잘 있겠지, 대장노릇하면서 하고 매번 얼른 다른 주제로 돌린다.

드래곤을 키우고 싶다고 하면 계속해서 상상하며 질문할 수 있다. 드래곤 있으면 어떤 걸 하고 싶어? 옷도 입힐 거야? 어디를 같이 가고 싶어? 먹이는 뭘 줄 건데? 병아리 이야기는 그렇게 진지했다가는 질문이 현실이 되고 아이들은 순식간에 꿈에 부푼다. 언제 부화기 돌릴 거냐고 하면서. 눈물 나는 꿈이 꿈으로 끝나면 안도하듯, 병아리 꿈은 꿈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대신 드래곤 이야기를 더 즐겁게 이어가야겠다. 이참에 드래곤 시리즈를 같이 읽어야겠다. 원서든 한글이든 상관없다. 나의 목표는 병아리 생각 쏙 들어가게 하는 것이므로!


https://youtu.be/AIiQfAfra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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