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갚은 까치

부모로서 느끼는 아이들의 적정 보은 수준

by 조용히정진

아이들의 어린시절 모습을 표현한 글 뒤에 성장한 모습을 위치하는게 좋을 듯하여

브런치 작가 신청시 작성한 글을 '연재하는 글' 속으로 다시 올립니다.

부모의 보살핌으로 성장한 자녀가 '은혜갚은 까치'처럼 머리가 깨지거나 '은혜갚은 두루미'처럼 지속적으로 깃털을 뽑는 고통을 느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글입니다.

한사람의 어른으로 독립하여 잘 살아 주는 것만으로 '효'를 다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혼식 때 엄마가 아들 손을 잡고 입장해서 신부에게 건네주며 '애가 생기면 반품은 안된다' 한마디 던지면 어떨까 농담삼아 아내와 얘기해 보았습니다.

한 5년 뒤 진짜 그래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아이들이 보기엔 잔인한 내용의 동화가 가끔 있다.

은혜를 배푸는 입장에서 보면 매우 추천할 만한 동화 '은혜 갚은 까치'


까치 둥지를 털려던 수컷 구렁이를 죽인 선비 때문에 과부가 된 암컷 구렁이.

슬픔은 분노가 되어 남편을 해친 선비를 사로잡아 막 죽이려 할 때

까치가 목숨을 걸고 선비를 구해주며 배풀어 준 은혜에 보답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보은의 수단이 까치 자신의 머리라니...

머리통이 깨져라 쇠로 된 종에 부딛혀 종소리를 세번이나 울렸고,

그 덕에 진짜 깨져 죽고 말았다.

그순간 고통 속에서 남은 새끼들을 걱정하는 까치의 슬픔과 고통이 어떠했을까 한번 상상해보자.


일본에서도 자신의 깃털을 주재료로 한 값비싼 천을 만들어 은혜를 보답한다는 '은혜갚은 두루미'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을 때마다 얼마나 아팠을까.

고통과 함께 영구적 손상이 있을 텐데


은혜를 갚기 위해 그정도까지 해야 하나?


부모는 자식을 키우며 지속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주느라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산다.

그 덕에 자식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어느새 어른이 된다.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하나?


20대 후반 직장인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경험담을 이야기해 본다.

누가 출근하던 퇴근하던 배웅하고 맞이하는 것은 우리 집의 오랜 관습이다.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집을 나서는 첫째를 배웅하러 나갔다.

현관에 놓인 20리터들이 쓰레기 뭉치를 큰아들이 조용히 손에 들고 있었다.

센스있는 녀석.

아빠에게 돌아 올 몫을 선뜻 해결해주다니.

그러하지 않았더라면 내 차지였을 것을.

감동의 눈물이 흐른다.


내가 새벽 2시 반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와도

현관문 여는 소리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다녀오셨어요' 를 외치는 첫째.

다 컷구나. 어른이 되었구나. 이제 장가가도 되겠다.

성장한 아들의 모습에 나는 마냥 행복하다.


며칠 전 결혼 기념일 겸 아내의 생일 파티를 위해서 미리 점심 식사를 했다.

아내의 생일 전날 나는 결혼했다.

아쉽게도 결혼을 기념하다가 어느새 아내 생일파티까지 겸하게 된다.

(장기적 안목으로 큰 그림을 그렸다는 오해는 사양한다)

큰아들은 모임 관계로 참석하기 어려웠고, 나와 아내, 그리고 둘째 아들과 함께 삼겹살 집에 갔다.
동네에 있는 칼집 삼겹살집은 양도 많고 저렴하며 맛도 좋은 곳이다.

소주와 맥주를 시켰다.

‘오프너를 드릴까요’ 라는 사장님 말씀에

‘괜찮아요. 숟가락으로 따면 돼요’ 자신 있게 이야기하였다.

미리 준비한 와인 마개를 열지 못해 사이판 신혼 여행지에서 와인을 곁들인 분위기 있는 밤을 보내지 못했기에

일생에 걸쳐 뚜껑 따는 연습을 틈틈이 해 왔다.

아이들도 철이 들 무렵부터 숟가락으로 병뚜껑 따는 훈련을 시켜왔다.


병뚜껑을 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어느새 어떤 도구로도 가능하게 되었다.
신문지로도, 나무젓가락으로도.

소주와 맥주가 준비되고, 병뚜껑을 따려 하는데,

둘째가 거침없이 소주병을 들고 흔들고 팔꿈치로 병 바닥을 치더니 소주 병 밑부분으로 맥주병 뚜껑을 금세 따버리는 것이 아닌가.

쓰나미 같은 충격이 몰려왔다.

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너무 듬직해 보인다. 다 컸구나. 이제 장가가도 되겠다.


아들이 고기를 구워준다.
고기를 잘라서 먹기 좋게 불판에 구워준다.

자식 키운 보람이 느껴진다.


행복은 별게 아니다. 이런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아이들이 다 컸다고 느낄 때, 어른이 되었구나 라는 것을 느낄 때 나는 행복하다.

그거면 된다.

행복하게 성장해서 혼자서 잘 살아줄 때 부모의 은혜는 이미 다 갚았다.

이전 10화함께 하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