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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Nov 09. 2023

행복을 찾아서

행복하기 위해 반드시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돈을 들였을 때는 반드시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


3인 가족의 8박 9일 보라카이 여행을 위해 지금까지 쓴 돈이 5백만 원이 넘어간다. 비행기와 숙소에 300만 원, 액티비티 150만 원, 마사지 60만 원 정도.(현지에서 지불해야 하는 돈 포함)

각종 물놀이 도구와 수영복, 비치웨어 구입을 위한 비용까지 포함하면 이 여행을 위해 이미 600만 원을 넘게 썼으며 여행지에서의 교통비나 식사비, 귀여운 소품이나 바나나칩 등의 쇼핑까지 생각하면 당초 내가 계획했던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쓸 것 같다.

가성비 여행을 하겠다며 처음 계획했던 예산은 300만 원이었다. 이미 당초 예산의 2배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카드값은 지난달부터 리볼빙이 시작되고 있어 대체 어디서부터 가성비와 멀어지게 된 것인지 살펴보는 중이다. 집집마다 밥그릇의 모양과 크기가 다르듯 일주일의 3인 가족 해외여행 비용으로 6~7백 정도인 것이 평범한 수준인 집도 있겠지만 우리 집 경제사정으로 봐선 꽤나 과소비인 셈이다. 가성비 여행을 하겠다는 말이나 말던가 말이다.


두어 달 전부터 머릿속은 온통 보라카이뿐이다. 꽤나 규칙적으로 하던 책 읽기와 일기 쓰기마저도 모조리 미뤄둔 채 보라카이 여행 후기만 보고 있다.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여 수하물지원센터에 수하물을 다시 맡기고 터미널 밖으로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시물레이션을 해 가며 일정을 계획한다. 여러 가지 액티비티를 검색하고 후기도 비교해 본다. 업체별로 특징을 살펴본 후 우리 가족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여 예약한다. 일정에 따른 동선과 컨디션을 고려하여 맛집과 스파를 끼웠다 뺐다 하며 비용을 계산한다. 기왕에 여기까지 왔는데. 이왕 하는 김에 이것까지. 기왕이면, 이왕이면, 을 중얼거리다 보니 여행 비용이 점점 늘어나는 중이며 출발까지 남은 2주 역시 그런 날들로 채워질 것 같다.


"보라카이는 생각보다 가성비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 코시국이 끝난 후로 베트남도 필리핀도 모두 현지 물가가 많이 올랐나 봐."

"우리 가족은 동남아 여행이 처음이라 살 것이 너무 많아. 수영복도 없고 제대로 된 튜브도 없어. 당연히 스노클링 장비도 없지. 이번에 사놓고 뽕을 뽑을 때까지 앞으로 자주(돈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다니자."

"뭐...... 내가 수영복을 좀 많이 사긴 했는데 그건 처음이라서 그래.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찾는 과정에선 늘 치열한 자기 성찰이 필요한 거고 나는 지금 그 과정인 거야. 내 몸이 이런 줄은 나도 몰랐다고. 프리 사이즈는 전부 없어져야 해. 사놓고도 못 입는 내가 제일 속상하지 않겠어? 물론, 가는 날까지 최대한 살을 빼서 어떻게든 몸이 들어갈 수 있게 할 거야."

"봐봐, 자기야. 우리끼리만 가면 현지인들 음식 먹고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스파 가면 돼. 근데 애랑 가니까 너무 가성비를 따질 수만도 없잖아? 애를 공항에서 노숙시킬 거야? 그럴 순 없지. 가선 안전한 물놀이를 해야 하고 고급까진 아니라도 적당히 쾌적한 스파에 가야 하지 않겠어?"

"사실 비행기 값이 예상보다 비싸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지금 보라카이에 가는 비행기 자체가 많이 없어. 아직 휴가철이 아니라 그런가?"

"여행 다녀와서 아껴 쓰면 돼. 어차피 쓸 돈이 한 푼도 없을 거라서 저절로 아껴질 거야."

남편이 물어본 적도 없는데 혼자 변명하듯 이러쿵 저러쿵 늘어놓는다. 남편이 별 관심 없는 얼굴로 알아서 하라며 고개를 끄덕이길래 일단 안심한다. 다행이다. 남편마저 화들짝 놀라며 "뭐라고? 육백만 원? 그건 몇 달 치 생활비잖아?"라고 했다면 단박에 기가 죽었을 테다.


이 와중에 그제는 촬영 장비가 사고 싶어졌다. 내 휴대폰은 30기가가 조금 넘는 구형 아이폰인데(아이폰 7이다) 평소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아 불편함이 없지만 여행지에선 용량이 부족할 듯했다.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갈까 생각하다가 기왕이면 방수되는 장비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저녁 식사를 하던 중에 남편한테 "우리 수중 촬영 장비 살래?"라고 던졌다.

집으로 날아드는 수많은 택배 박스에도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며 '알아서 해~~' 하던 남편이 드디어 깜짝 놀란 얼굴로 "고프로를 사자고? 여행 때문에?"라고 한다.

"아니, 고프로 말고 유프로라고 초가성비템이 있더라고. 내가 다 검색해 봤어. 그걸 사자. 휴대폰을 방수팩에 넣는다 해도 바다 안에선 한계가 있을 거야. 난 꼭 바다 안에 들어가서 찍고 싶거든. 그리고 나중에 캠핑 가서도 촬영할 수 있잖아. 두고두고 쓸 수 있을 걸?"

"너 말이야, 보라카이 여행에 너무 인생을 때려 박는 거 아니야? 진정해.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

남편이 조금 비웃었지만 나는 진지했다.

"맞아! 나 지금 이 여행에 매우 진심. 신혼여행 후로 첫 가족여행이야. 10년 만에 해외여행이라고."라고 말하자, 아들이 옆에서 "엄만 10년 만이지만, 난 난생 처음이야."라고 한다.  

아들의 말에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물놀이하면서 촬영하면 재밌긴 하지.

그래서, 유프로도 주문했다.


엑셀 파일에 시트를 나누어 여행비용과 쇼핑비용을 기록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꼭 본전을 뽑고 말 테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곤 무심결에 나와버린 그 말에 잠시 멈췄다.

본전을 뽑을 수 있을까? 어느 정도로 신이 나고 즐거우면 본전일까?

6백만 원이면 얼마나 행복해야 하는 걸까?

남편은 슬슬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남편이 걱정하는 것이 뭔지 안다. 본전을 뽑고 말겠다는 각오. 돈을 들였으니 들인 돈만큼은 꼭 행복해지고 말겠다는 다짐. 이미 예산을 초과해 버렸으니 백만 원은 그냥 백만 원이 아니라 평소보다 훨씬 무거워진 백만 원일 테고 그 백만 원에 대한 기대치 또한 아주 높아진 상태라 쉽사리 행복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남편은 혹시라도 내가 실망할까 봐(... 그래서, 화를 낼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매일 같이 엑셀 파일을 들여다보며 일정을 조절하고 비용을 계산하면서 조금씩 짙어지는 초조함을 느낀다. 보라카이에 가면 가장 먼저 프리다이빙을 배울 계획이라 유프로까지 구입했지만, 사실 막상 바다 앞에 서면 많이 무서울 것 같다. 나는 물에 들어가 본 적도 없고 수영도 못 하는데 헤엄치는 니모를 내 눈으로 보고 말겠다는 다짐만으로 바닷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 단일 체험비로는 프리다이빙이 가장 비싼데 그걸 실패하고 본전을 날리게 되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사실, 벌써 한번 취소했다가 다시 예약한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무언가를 향해 조금씩 애걸복걸하고 있는 나를 깨닫게 된다. 행복할 거야. 행복해지고 말 거야. 내가 들인 돈만큼은 꼭 행복하고 말테야. 그러니, 이번엔 진짜 나 좀 봐줘.

10 전에 떠났던 신혼여행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당연히 행복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떠났던 여행에서 '당연히' 없었다.   느긋한 인내와 촘촘한 다정이 필요했지만 당연히 행복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기대감이 너무 컸기에  실망을 느껴야 했다. 그때처럼 되지 않겠다고  번이고 다짐하고 있는데, 이러한 다짐이 혹여 이번에야 말로 당연히 행복하겠지? 라는 식의, 결국은 같은 결의 기대감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때처럼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일까.


가끔은 행복이 정가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100원을 냈으면 100원만큼은 온전히 행복해지기. 100원만큼은 행복할 테니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되고, 그 이상 행복해지지 않더라도 100원밖에 안 냈으니 할 수 없지,라는 체념을 하기도 쉽고.

내가 느끼는 행복은 얼마짜리일까. 나는 얼마면 행복해질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쩌면 그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알 수 없겠지 싶었다. 100원에도 쉽게 웃을 수 있는 행복이 내 거면 좋겠는데...... 이번 여행에서 조금은 그 답을 향해 다가갈 수 있을까? 방금 막 예약을 마친 스파의 금액을 엑셀 파일에 입력하면서 100원짜리 행복이 내 거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조바심을 감추기 위해 손가락을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제목을 '본전을 찾아서'라고 했다가 너무 안달 난 느낌이라 '행복을 찾아서'로 바꿨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본전을 찾아서'이다. 본전만큼은, 행복을 위해 들인 돈만큼은,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고 인내하며 노력한 만큼은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나의 소중한 본전을 위해 일단은 살부터 빼야겠다. 난생 처음 입어볼 비키니를 위해 이렇게나 정성을 들여 쇼핑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몸에 맞는 수영복을 찾지 못했다.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담아, 비키니를 입어 본전을 찾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일단은 옆구리 운동부터 해 본다. 아브라카다브라.


+ 브아걸의 아브라카다브라. 러브핸들 없애는 운동에 아주 딱이라고 한다.

브아걸에 빙의하여 오늘도 아브라카다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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