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전단지가 가져다준 기억

동그라미가 3개 있는 장난감

by 날아라빌리

샤워하고 나왔더니 남편과 아들이 식탁 위의 마트 전단지를 보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뭐야? 뭐 재밌는 거 있어?"

물기를 닦으며 다가갔더니 남편이 나를 돌아보며 얘기한다.

"아니, 얘가 전단지를 보다가 어릴 때 마트 갔던 일이 생각났는지 옛날 일을 얘기하는데 웃겨서.... "

뭐뭐? 했더니 이번엔 아들이 얘기한다.


"엄마, 그거 기억나?"

아들이 저렇게 물어오면 일단 긴장부터 된다. 이런 경우 보통, 아름다운 기억은 아니다. '엄마 그때 왜 그랬어?'를 '엄마, 그거 기억나?'로 묻는 거 같다. 9살짜리가 가끔은 나보다 처세술이 좋다.

암튼 엄마는 기억하느냐 묻는다. 이번엔 뭘까?


내가 어릴 때 엄마랑 마트 갈 때마다 장난감 사달라고 하면 엄마가 동그라미가 3개 붙어 있는 장난감이면 사준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진짜 열심히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동그라미가 3개 붙은 장난감은 없었거든.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천 원짜리 장난감만 사준다는 말이었네. 내가 그걸 지금 알았네!

"엄마, 진짜 너무했네."라는 덧붙임과 함께 심오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아들이 무릎을 쳤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났다.

마트만 가면 아들이 2층에 있는 장난감 코너에 버티고 서선 뭐든 사달라고 졸라대었다.

사주고 나면 그날 하루 잠시 가지고 놀곤 금방 질려해서, 이건 집에 비슷한 것이 있잖아, 저건 네가 스스로 조립하기 힘들어, 아이고 그건 진짜 아기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잖아, 등등.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 돼, 하며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장난감을 사주지 않기 위한 10가지 이유쯤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었는데, 꼬맹이 아들에게 그런 것이 통할 리가 있나.

"엄마는 왜 맨날 안 사줘?! 다른 친구들은 저거 다 있단 말이야."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조르거나, 가끔은 눕기까지 해서 마트만 가면 전쟁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드디어 지쳐버려 "좋아, 숫자 하나에 동그라미가 3개 붙어 있는 장난감이면 사줄게." 했다.

보물 찾기를 하듯 아들은 동그라미 3개가 붙은 장난감을 찾으며 돌아다녔지만, 마트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있나. 마트를 갈 때마다 동그라미 3개가 붙은 장난감을 찾았지만 늘 동그라미 4개가 붙어 있거나, 동그라미가 3개라도 앞의 숫자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자주 가던 곳은 다이소 완구코너였고, 아들이 가지고 놀다 싫증이 난 걸 주기적으로 정리하여 버리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어릴 때 동그라미 3개까지만 사줬으니 이제 4개로 늘려줘. 마트 전단지 초특가 세일에도 그런 가격은 없어." 라며 아들이 요구했다.

그건 아니지. 항상 동그라미 3개만 사준건 아닌데? 신비 아파트 시리즈, 공룡알 깨기, 트레저 시리즈, 온갖 종류의 보드게임, 포켓몬 카드 전부 동그라미 4개 이상이었는데?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전단지를 들고 흔들며 사뭇 진지하게 요구하는 표정이 귀여워서 그냥 져주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번엔 너트 총과 과녁을 구입!! 숫자가 무려 5개나 되었다.

"5개야, 보이지?" 했더니 아들이 씨익 웃었다. 바로 저 미소가 나를 살리고 나를 일하게 한다.


아들이 쑥쑥 자라는 만큼 장난감 가격의 동그라미 숫자도 늘어가고 있다. 아니, 어디 장난감뿐이랴. 장난감이기만 하면 참말이지 좋겠다.(조금 시무룩)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가 늘어가는 요즘이다.

그러니, 남은 오후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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