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행님들

by 날아라빌리

봄부터 수영을 시작했으니 국민체육센터 초급 새벽반에서 버둥대기 시작한 지 어느새 8개월째다. 스아~실, 이제는 그저 버둥대고만 있는 건 아니라서 '더 이상 버둥대지 않는다'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은데, 하필 오늘 아침에 접영을 하다가 또 무지하게 버둥대었기에 그 말을 하기가 조금 머쓱하다. 언제쯤 버둥대지 않을 수 있을까. 흑.

선생님은 오늘도 접영을 할 땐 몸을 유선형으로 만들며 물 안에서 웨이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리곤 정확하게 나를 쳐다보시며 웨이브를 만들어 물을 타기도 전에 급하게 얼굴만 끄집어내면 안 된다고도 하셨다.

"죽을까 봐 그러죠, 죽을까 봐." 라며 볼멘소리를 했더니 행님들께서 킥킥거리셨다. 물소리 때문에 내 말이 잘 안 들리셨는지 뭐라고요? 하는 선생님께 죽을까 봐 그랬다잖아, 죽을까 봐, 라며 대신 항변도 해주셨다. 역시 행님들이다.


수영강습을 신청할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기존 회원들의 텃새였다. 꽤 많이 들어왔다. 목욕 바구니를 놓는 자리라든지, 수영장 레인에 서는 순서라든지. 모든 자리와 순서 사이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과 그들만의 질서가 있으니 가능한 튀지 않으면서 눈치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아주 쉽게, 아주 사소한 이유로, 아주 빈번하게 기가 빨리는 나로선 보이지 않는 어떤 손들의 움직임이 있을까 봐 제법 긴장된 표정과 경직된 어깨로 수영장에 첫발을 들여야 했다. 한참 동안 소심하게 쭈뼛거리며 한발 물러선 채로 모든 것들을 관찰하며 느리게 두리번거렸다.


그러는 동안 자주 시선이 닿았고 그 시선이 오래 머물렀던 방향은 수영장의 행님들이 있는 곳이었다. 새벽반은 25명 정도인데 남녀로 보자면 여자가 조금 더 많고 노소로 보자면 나이 많으신 분들이 조금 더 많다. 우리 엄마 또래로 보이는 분들도 꽤 많은데 언니라는 호칭 대신 행님(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처음엔 동서지간인가 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그렇지만 동방예의지국의 동서지간 마냥 꼬박꼬박 행님 왔어요? 행님 어제는 왜 안 왔어요? 행님 등 밀어드릴까? 행님 등에 로션 발라줄까? 행님 힘들면 한 바퀴 쉬어요, 등등의 말을 서로에게 건네며 부지런히 안부를 챙기고 피부관리를 돕는가 하면 거칠어진 호흡에 대한 걱정을 주고받기도 하셨다.


행님들은 귀여웠다.

너도나도 서로를 행님이라 부르고 있어 지켜보는 나는 좀 헷갈렸는데 행님들은 본인을 가리키는 '행님'을 정확하게 알아듣곤 그 말에 대답도 해가며 옆의 행님에게 다시금 행님이라 부르고 말을 걸어가며 대화를 잘도 이어나가고 있었다. 역쉬~ 대가족 문화에서 사셨던 분들이라 짬이 다르네. 과연 대단하네. 나는 혼자 조용히 감탄한다.

어느 날은 행님들의 무리 중 조금 어린 행님이 여러 행님들의 수영 용품을 한꺼번에 주문한 듯했다.

행님 건 저기 있어요

행님, 행님 건 내가 아까 줬잖아.

아이고, 우리 행님 그 수경 잘 어울리네. 수영 선수 같네.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연이은 행님, 행님을 들으며 도대체 어느 행님이야? 하며 바쁘게 눈동자를 굴렸다. 행님 소리의 방향을 따라가던 중에 유난히 목소리가 걸걸한 행님의 소리가 들렸다.

얼마야?

어, 행님, 사만칠천삼백 원.

오만 원 줄게. 택배비 해.

그 택배비 소리가 뭐라고. 이상하게 그날 하루 종일 "얼마야? 오만 원 줄게, 택배비 해."라고 말하던 행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쨍쨍 울렸다. 참 정정하시네, 우리 행님. 쩌렁쩌렁하던 그 목소리가 괜스레 대견하여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었다.


요즘 우리 아들이 즐겨 듣는 노래가 있다. 데이식스의 해피라고 어느 보이밴드의 노래라고 했다. 아들이 하도 흥얼거려 내 귀에도 꽤나 익은데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그런 날이 있을까요 마냥 좋은 그런 날이요

내일 걱정 하나 없이 웃게 되는 그런 날이요

매일 웃고 싶어요 걱정 없고 싶어요

아무나 좀 답을 알려주세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런, 그러니까 말이지... 걱정 없는 날은 없단다, 아기들아'라고 조금은 짠한 말투로 혼잣말을 하곤 한다. 매일 웃을 수는 없을 테고 걱정 없이 살 수도 없는 것이 삶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매일 웃고 싶고 걱정 없고 싶다고 노래하는 어리고 청량한 그 목소리가 어쩐지 내 맘을 두드리고 있어 "매일 웃을 수도 없고 걱정 없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야."라는 말을 너무 아프지 않게 그리고 너무 김 빠지지 않게 건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이크.... 내가 이미 어느 한 시절을 건너왔구나. 그리고 어쩌면 행님들이 얼마 전 지나쳐 온 시절 속으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들도 어렴풋이 해 본다.


최근 부쩍 우리 행님들이 발차기를 힘들어하며 숨을 몰아 쉰다. 행님들끼리 속삭이며(그렇지만 다 들리게) "힘든데? 아, 앞에 너무 빠른데?"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조금 천천히 가야 할지를 물어보려다 그냥 말았다. 행님들의 속도는 행님들이 알아서 조절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갈까를 묻는 것은 주제넘은 소리일 테다.

행님들은 이미 매일 웃을 수도 없고 걱정 없을 수도 없는 인생의 어느 시간들을 지나쳐 왔으며, 매일 웃을 수 없는 날들이어서 도리어 매일 웃는 법을 깨우쳤을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행님, 행님 부르며 격려하고 보듬어주며 손이 닿지 않는 등을 만져주고 밀어주는 모습을 보니 나도 언젠가는 매일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깨닫게 되겠지,라는 생각도 든다.


새벽에 일어나 집을 나서기 전에 잠든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날들보다 앞으로의 날들이 더욱더 '매일매일 웃을 수는 없는 날'일지도 모를, 어린 아들의 볼에 입을 맞춘 후 수영장으로 간다. 매일 웃기가 힘든 하루하루지만 어쨌든 헤엄치며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이미 그러한 하루하루들을 수없이 살아내었고 걱정 없이 살아가는 방법 같은 건 찾지 못했지만 여전히 헤엄치고 있는 행님들을 바라본다.


한동안 행님들이 관절 걱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살짝 걱정했는데 요즘은 호흡법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음~할 때 내쉬고 파~ 할 때 마셔야지.

파~하면서 쉬고 마시고를 다 하면 길게 못 가, 행님.

행님들 옆에서 헤엄치다가 그 소리를 들으며 살짝 웃었다. 행님들 말대로 나도 음~하며 내쉬고 파~할 때 마셨다.

길게 가고 싶다. 매일 웃을 수 없고 걱정 없을 수도 없겠지만 그러기에 더욱더 매일 웃고 걱정 없을 수 있는 방법을 깨우칠 때까지 음~파~ 하며 팔을 뻗어야겠다. 우리 행님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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