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반은 요즘 자유형 팔 꺾기와 접영 웨이브 연습이 한창인데 특히 이번주엔 팔 꺾기를 집중적으로 했다. 선생님께선 팔로 노를 젓듯 물을 끝까지 민 다음 팔꿈치를 접으며 어깨를 열어 돌리라고 하셨다.
나는, 웨이브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접영과 멋들어진 팔 꺾기에 대한 환상과 동경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지만, 자세에 대한 지적이 유독 나에게만 반복되고 있어 주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선생님은 나한테 '팔꿈치 수영' 하지 말고 팔을 일자로 끝까지 펴라, 어깨엔 힘을 빼라, 삼두를 써서 팔을 접으라, 말씀하셨다.
비록 초급반이지만 행님들을 비롯한 대부분은 경력이 꽤 되기에 팔 꺾기를 자연스럽게 잘했는데, 나는 어깨를 열지도 못 한채 잔뜩 경직된 채로 냅따 팔꿈치부터 접어대어 물을 밀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나머지 공부를 하는 학생 마냥 물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조금 딱해 보였던 걸까. 선생님께서 내 뒤를 따라 헤엄쳐 오시며 자세를 하나하나 교정해 주셨다. 그렇지만 나의 팔 꺾기는 극적인 반전 따위 없이 지난주 내내 그 상태였다.
행님들조차 계속 어깨를 돌려, 아니지, 그냥 돌리지 말고 롤링을 해야지, 라며 훈수를 두셨다. 고장 난 내 어깨가 저 옆의 중급반까지 소문이 난 것인지 옆 레인의 행님마저 수영을 하다 말고 어깨에 힘을 빼야 돌아가지, 라며 답답해하셨던 한 주였다.
1. 팔로 물을 밀다가,
2. 쭉 뻗었을 땐 삼두를 써서(대체 그 삼두가 어디신지?) 팔꿈치를 접고,
3. 사이드킥을 할 때처럼 몸을 롤링하며 어깨를 열고 돌리면,
4. 그 과정에서 글라이딩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게 글로는 쉬운데 막상 헤엄을 칠 때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아 삐걱거리고 만다. 나는 힘과 팔꿈치만으로 수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속도는 빨랐지만 쉽게 지쳤다. 다들 충고하는 대로 딴엔 힘을 뺀다고 뺐지만 바로 그 순간 물안에서 균형을 잃으며 가라앉을 듯 비틀거렸고 속도마저 이전 같지 않았다.
빡침.
지난주 내내 나의 기분이었다.
빡침. 매우 빡침.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개빡침.
나는, 수영장에서만 힘을 빼지 못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구나,라는 사실을 이런저런 일로 꽤나 많이 느끼고 있어 조금은 버겁던 한 주였다.
작년 봄에 승진을 하고 난생처음 나의 팀이 생겼으며 관리자라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내가 겪었던 상관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내가 6급이 되면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들을 수없이 되새겼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인간적인 선배가 되어야지, 나는 실무를 같이 해야지, 나는 많이 들어주는 선배가 되어야지, 나는 책임지는 선배가 되어야지.
그리고 2년의 시간이 흘러간 지금. 그 시간을 한마디로 정의해 보자면, 그저 헛된 '뽕'이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엉터리 승진뽕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8~9급때 했던 일들까지 해가며 이런저런 사정에 귀를 기울였지만 그건 그저 중심이나 기준 따위 없이 이리저리 휘둘렸던 나약함이었다. 실무를 하는 팀장은 실무를 하지 않으려는 팀원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순간의 감정을 공감이라 착각하며 기준 없이 들어주는 팀장은 팀을 돌아가게 할 수가 없다. 그건 그저 또 하나의 무능력함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아주 솔직하게 그 일을 왜 못 하겠다는 건지, 고작 그게 뭐가 힘든지, 네가 안 하겠다고 하면 대체 팀원 중에 누가 해야 마땅하다 생각하고 있는 건지, 나는 그 일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해 왔는데 괜한 엄살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시라,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나. 글자 한 톨 한 톨 곱씹어가며 그러지 못했던 대부분의 순간을 후회 중이다.
나는 정말로, 이제야, 서서히, 깨닫고 있다. 왜 나의 상관들이 대체로 속을 알듯 말듯한 표정을 보였는지. 왜 때로는 한발 물러서서 관망하고 있었는지. 왜 나의 곤혹에 적극적으로 공감해주지 않았는지. 그리고 가끔씩 그들이 내게 보여줬던 진심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쳐 내보였던 것인지도.
그들은 팀장이었고 팀이 잘 돌아가게 할 책임이 있었다.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에 팀장이란 작자가 번번이 흔들리며 좌지우지되는 모습은 팀 전체의 어떤 의욕을 떨어트릴 뿐이었다.
모르겠다고 하면 스스로 더 알아봐라. 못하겠다고 하면 능력에 맞는 다른 자리 찾아가시라. 포기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시라. 그저 힘을 뺀 채 어떤 벽처럼 존재했어야 했나. 아니, 사실 이것 또한 내가 기울인 마음과 노력을 보상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얄팍한 '삐짐'일 테니 나야말로 내 능력에 맞는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수영을 하며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듯, 잔뜩 힘이 들어간 나의 '뽕'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쉽게 빠질 것 같지 않다. 긴 시간 겹겹이 쌓여왔던 그 힘을 한방에 빼려 하며 쓰지 않던 근육을 쓰려고 하니 모든 동작이 부자연스럽고 매 순간 아플 뿐이다.
1. 팔로 물을 밀다가,
2. 쭉 뻗었을 땐 삼두를 써서(대체 그 삼두가 어디신지?) 팔꿈치를 접고,
3. 사이드킥을 할 때처럼 몸을 롤링하며 어깨를 열고 돌리면,
4. 그 과정에서 글라이딩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주말 내내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기며 허공에서 힘을 빼고 팔 꺾기를 연습했다.
힘 빼기는 언제나 어렵기에 내가 어떤 팔 꺾기를 할 수 있을지, 내가 어떤 팀장이 될 수 있을지, 나는 결국 내 선배들의 표정을 닮아가고 말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주가 시작되고 있고 새로운 해가 다가오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다시 천천히, 다시 새롭게, 이번에야 말로 조금쯤은 능숙하게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