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홀과 보라카이 여행기에 모두 담지 못 했던 자투리 이야기들이다.
지난번 보라카이 여행 때는 디몰만 걸어봤을 뿐 주로 트라이시클을 타고 이동하였기에 걸을 때만 알 수 있는 거리의 풍경을 제대로 느끼질 못 했다. 출퇴근 시간의 혼잡함과 활기 가득한 소란들, 학생들의 등하굣길에 있는 상점, 동네 사람들이 이용하는 빵집의 냄새.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아침에서 저녁으로 해의 기울기가 변해감에 따라 거리의 풍경들도 달라져 갔는데 그 변화들이 재밌었다.
보라카이는 긴 뼈다귀 모양으로 생겼는데 그 뼈를 3 등분하여 스테이션 1,2,3으로 부른다.
역도 없는데 왜 스테이션이라고 하느냐 물었더니 예전에 선착장이 있던 위치대로 나눈 거라 했다. 내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자신이 없어 검색해 봤는데 별다른 정보가 없네. 히잉. 부디 내가 똑바로 알아들은 것이길.
스테이션 별로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다. 스 1이 가장 한적하며 모래 입자가 곱다. 확실히 스 1쪽 비치가 가장 넓고 아름다운 것 같다. 스 1에는 고오~~ 급 숙소들이 많고, 스 2는 디몰이 있고 번화가라 사람들이 많다. 스 3이 아직은 예전 보라카이 분위기를 간직한 곳이라고들 하며(그니까 쫌 덜 발달되었단 소리) 비교적 저렴한 숙소가 많다. 지난번 여행 때 스 3을 가보지 못해서 이번엔 아예 첫 숙소를 스 3에 잡았는데 골목골목 돌아다닐 곳이 많아 좋았다.
밤새 내린 비로 흙탕물이 잔뜩 고여있어 조금쯤은 지저분했으며 늘 어딘가 한 두 군데는 도로 공사 중이라 여기저기 파여있었다. 이야, 제법 터프한데? 단정함이라든지 깨끗함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그 회색빛 거리가 이상하게 끌렸다. 아침 햇살이 쏟아질 때면 그 회색빛 위로 화색이 돌았다. 굉장히 명랑한 와글거림을 쏟아내었는데 바로 그 순간 그 거리를 관통하고 있는 생생함과 박력이 아주 맘에 들었다.
저녁 무렵의 디몰 거리.
사진 속에 있는 빨간색 가게가 할로망고인데 보라카이에 있는 동안 가장 자주 갔던 곳이다. 망고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인데 진짜 너무 맛있어서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모~~ 오든 것이 디몰 안에 있기에 그곳을 반드시 지나쳐야 했다) 망고홀릭을 사 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필리핀에서 먹었던 것 중 망고홀릭이 가장 맛있었던 것 같다. 아! 산미구엘 애플 빼고.
미용실인가, 이발소인가, 혹은 둘 다 인가. 궁금해서 한참이나 들여다봤던 곳. 아무래도 둘 다 인 것 같았다.
지난번 여행 때는 이런 골목을 가보지 못했는데 이번엔 짧게라도 아침 산책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디몰 근처 빵집.
보홀 노점상에서 사 먹었던 판데살이 너무 맛있어서 보라카이에서도 내내 노점상과 빵집을 기웃거렸다. 그치만 갓 구운 빵이 아니라 그런가, 내가 카스텔라를 싫어해서 그런가. 솔직히 말하자면 또 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판데살은 조금 뻑뻑했으며 도넛은 어릴 때 뷔페에서나 먹을 수 있던 맛이었다. 아! 이거슨 추억의 맛인데? 하며 아련해질 수 있는 맛이 아니라, 음... 뭐랄까, 뭔가 재료를 많이 아낀 맛인데? 싶었달까. 빵도 우리나라가 훨씬 맛있는 거 같다. 아니, 음식에 관해서는 그냥 우리나라가 최고인 것 같다. (망고홀릭과 산미구엘은 제외)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빵집을 가고 싶었는데 그런 곳은 잘 보이지 않았다. 간판 같은 것이 없어 대체 뭘 파는 곳인지 알 수 없는... 정체 모를 노점상? 반찬 가게? 자그마한 간이식당? 암튼, 주종목이 희미한 아주 작은 가판대가 곳곳에 놓여 있었는데 아침이면 커피(...라고 주장하고 싶은 어떤 액체)와 판데살을 소포장하여 팔았다. 파리가 좀 덜 날아다녔다면 한번 구입해 봤을 텐데 파리가 너무 왱왱거려 뒷걸음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사볼걸, 싶다. 따끈한 판데살은 꽤 맛있었을 텐데. 이럴 때면 쓸데없이 까다로운 내가 좀 싫긴 하다.
결국!!! 한식당을 찾아갔다. 스 3 골목 안에 위치한 주점부리.(주전부리X, 주점부리O)
떡볶이랑 김치찌개, 라면, 김밥을 한가득 시켰는데 후루룩 마시듯 먹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떡볶이는 지구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다. 한식이 최고시고요!! ㅠㅠ 그중에서 떡볶이는 왕이심미다!! ㅠㅠ
아! 치킨이나살은 맛있었다. 식당이 스 1에 있어 트라이시클까지 타고 가서 먹었는데 '아! 여길 미리 와 볼 걸' 했던 곳이었다. 보라카이에 오자마자 왔었다면 필리핀은 맛집이 없어, 소리 따위는 쏙 집어넣고 주변 식당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을 텐데 말이다.
아들의 피부발진으로 이후의 모든 일정은 숙소였기에 식당 방문은 이곳이 끝이었다. 게리스그릴이랑 무니무니는 꼭 가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일단, 저의 심사평은요...
할로망고=산미구엘>새우요리>치킨이나살>그냥 풀떼기......> 졸리비> 기타 등등 필리핀 음식
스 3에서의 숙소는 그럭저럭 적당했다. 크게 나쁘진 않았지만 굳이 또 가고 싶을 정도로 좋을 것도 없었는데 딱 하나 맘에 들었던 것이 조식뷰였다. 매일 아침 화이트 비치를 바라보며 조식을 먹을 수 있어 그거 하나는 진짜로 행복했다. 아, 근데 쓰다 보니 이 정도면 좋은 거 맞잖아? 나란 녀석, 거 참 디게 불평이 많구나?
말룸파티 가는 길에 만난 강아지? 개?
말룸파티로 가기 위해선 보라카이에서 배를 타고 카티클란으로 갔다가 다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누군가가 커다란 인형을 어깨에 메고 배안으로 들어오기에 아, 개네... 하고 있었는데 인형이 계속 움직여서 헐, 개네? 했다.
개를 둘러업고 배를 타는 보라카이의 기백. 멋지다.
보라카이에 다시 가게 된다면 내내 모벤픽에서만 묵고 싶다. 내가 상상했던 휴양지의 모든 것들을 지닌 숙소였다. 적당한 크기의 전용비치도, 크고 한적한 수영장과 자리쟁탈이 필요 없는 여유로운 선베드도, 오며 가며 보이는 다정한 미소도, 푸름 가득한 산책로도, 비키니 입은 아름다운 외쿡 언니(?)들도, 공짜인 초콜릿 뷔페도, 빵 종류가 엄청 많았던 조식도 전부 다 좋았다. 그냥 다 좋았다. 날씨까지 완벽했고 모든 것이 다 좋았다.
나도 식탐이 꽤 있었구나? 깨달았던 조식의 빵코너. 저걸 다 못 먹어보고 와서 아쉽다 ㅠㅠ
보홀 발리카삭에서 처음으로 해파리에 쏘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후기에서 그랬다. 해파리에 쏘이는 순간 '아, 쏘였구나' 알 수 있다고. 근데, 우와아, 진짜였다. 뭔가 엄청 따끔했는데, 그 순간 직감했다. 이거슨 해파리구나. 나팔링에서는 해파리와 물벼룩 모두에게 당했다. 아팠지만, 이 정도쯤은 다이버의 훈장처럼 여겨져 초보다이버는 조금 우쭐거려졌다.
가이드가 해파리가 나타났음을 경고하는 순간에 바로 쏘였는데, 괜찮아 나 어차피 처음도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어깨까지 으쓱거리며 허세를 부렸다.
보라카이에서도 또 쏘였다. 양쪽 발목 전체에 해파리 자국이 생기자 살짝 뿌듯하기까지 했으며 그 자국들이 조금씩 옅어지자 서운했다. 바다에서 행복했던 흔적들인데 내 기억과 감각들이 옅어지는 만큼 그 자국들도 희미해져 가는 듯하여 정말로 좀 서운했다.
이건 떠나기 전날 보라카이 앞바다에서 다이빙하다가 바위랑 부딪혔던 자국
냅다 아래로 내려갔는데 생각보다 깊지가 않아 조금 쿵! 했더랬다. 피가 살짝 났지만 나는 꽤 터프한(그리고 미숙한) 다이버라 괜춘괜춘, 하며 새끼 열대어를 열심히 따라다녔다.
이제 이 상처자국도 거의 없어졌다. 확실히, 뭔가 많이 서운하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던 과일가게
내 기억보다 너무 비싸진 망고 가격에 깜짝 놀랐다.
우기가 되면 바람이 앞바다로 불어 모래를 막기 위한 바람막이가 저렇게 세워진다.
작년엔 건기에 왔던 터라 바람막이가 없었는데 이번엔 우기라서 오픈형 식당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바람막이가 있었다. 날씨는 내내 좋아서 건기와 다를 바가 없었는데 그 예쁜 바다를 저렇게 가려놓으니 많이 아쉬웠다. 다음엔 꼭 건기에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들이 사달라고 엄청나게 졸랐던 레이저. 돌아가는 즉시 어디에 뒀는지도 모를테니 절대 안 사주려고 했는데 아들이 피부발진으로 우울해하네? 결국 깎고 깎아서 1000페소에 샀다. ㅠㅠ
자라고 있는 야자나무들. 귀엽다. 무럭무럭 자라렴.
다나루 스파 안쪽은 비밀의 정원같이 너무 예뻤다. 뭔가 발리 느낌(발리는 안 가봤지만)
아들의 피부발진으로 병원을 가야 했다. 작년에 갔던 병원을 다시 가려다가, 남편이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더니 보라카이의 대학병원 같은 곳이 있다며 마침 숙소 근처라고 하기에 찾았던 곳이다.
입구에서 간호사가 접수를 받고 바로 그 옆 책상에서 의사가 진료를 본다.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서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계산했는데 그 모습을 보던 남편이 속닥거리며 '무슨 병원에 컴퓨터도 하나 없어?' 하며 놀랐다. 대학병원이라며? 뭘 검색한 거야? 싶어, 나는 한숨이 조금 나왔다.
작년에 갔던 병원을 갈 걸 그랬나, 했는데 처방해 준 약이 꽤 잘 들어서 만족했다. 의사 선생님이 영어도 잘하고, 휴대폰으로 약도 잘 처방해 주고, 확실히 보라카이의 대학병원 같은 곳이 맞나 보다.
입구 바로 앞. 응급실 같은 곳이다. 응급실이 있는 걸로 봐서 확실히 대학병원이 맞다.
내내 숙소에만 있었던 시간들. 여기까지 와서 또 발코니에만 있어야 하다니. 혼자 화를 내기도 했다가, 괜히 눈물이 나서 울기도 했다가, 남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심통을 부리기도 했으며, 그러다 열받아서 다시 맥주를 마시곤 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조금은 초연해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변수 앞에서도 의연하고 느긋한 내가 되고 싶다. 제발.
분홍빛 솜사탕 하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보라카이의 시간. 언제나 그리울 보라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