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한 10여 년 전쯤에 했던 거 같다. 나름 '글'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꽤나 진지한 편이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내가 하는 여러 가지 행위 중 그나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글이 나를 살게 해 줬다거나 글을 쓰며 치유받았다거나, 뭐 그러한 정도의 묵직함과 진중함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쓰면서 복잡한 마음의 이유를 깨닫기도 하고, 정리도 하고, 반성도 하고, 포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상대방에 대해서도, 어떤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적정한 범위를 글을 쓰면서 깨우치게 된다. 삶의 부스러기들이 어떠한 단어를 만나 생각지도 못한 의미가 된 순간들도 몇 번이나 겪었다. 살아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맺어야만 하는 관계마저도 곤란한 과제처럼 여기는 나로선 홀로 떨어져 글을 읽거나 쓰는 시간들이 큰 도움이 된다. 글이 없었다면 삶이 지금보단 견디기 힘들었을 테고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았을 것이다.
다만, '글'이라는 걸 내가 제대로 쓸 수는 없을 것만 같다. 거의 유일하게 진심을 다해 좋아하고 존중하는 것이 글인데 내가 쓴 조잡한 문장 따위로 글이 지닌 가치를 떨어트리고 싶진 않다. 최근 거의 그 무엇도 쓰지 않고 있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스스로의 사고와 감각에 대해 확신이 없는 편이다. 늘 무언가가 과하게 결핍되어 있거나 과잉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감정들이 살짝 뒤틀어진 상태로 균형감을 잃은 채 흐르고 있음이 느껴진다. 가끔은 내가 쓴 문장들이 우습고 수치스럽다. 그 속에 담긴 과한 표현과 정제되지 못한 감정들에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아, 물론 이런 생각들 또한 늘 한결같은 것은 아니고, 아주 드물지만 때로는 내가 끼적인 문장들이 맘에 들 때도 있으며 그럴 때면 '글이 뭐 별 거 인가?' 하며 잔뜩 고무되기도 한다. 그러나 쓰고 싶은 소설에 대해 여전히 첫 문장조차 쓰지 못하는 스스로를 깨닫고는 다시금 아니야, 역시 글은 별 거야, 하게 되는 것이다. 글이란 여전히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캠핑을 가기 전 짐을 챙기면서 책을 한 권씩 넣어간다. 처음엔 '5년 만에 신혼여행'이었고 두 번째엔 같은 작가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보면서 미뤄뒀던 보라카이 여행을 결심한 것처럼 그믐을 보면서는 미뤄둔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 이랬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저 그 소설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을 뿐이다. 이 정도의 주제의식과 기발한 상상력과 담담한 표현력을 지녀야 소설을 쓰는 것이지. 개뿔, 나 따위.
소설에 대한 생각을 한 건 불합격을 하던 해였으니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무수한 불합격을 겪었기에 몇 번째 불합격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그 해에 있었던 모든 시험에서 떨어진 어느 늦여름 혹은 초가을의 밤에 도서관을 향해 터덜터덜 걷고 있던 때였다. 걷다가 열린 창으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순식간에 조금 멍해지고 말았다.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고 까만 밤하늘 위로 그림 같이 하얀 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 하늘은 일 년 중 꼭 그맘때만 볼 수 있는 하늘인데, 하필 이런 때에, 이런 날에, 이런 하늘 아래에서 저 목소리를 듣다니. 나는 그만 창문 아래에서 울고 싶어졌다. 당시 내가 느끼고 있던 온갖 감정들이 사방에서 밀려들었기에 이리저리 속수무책으로 흔들려야만 했다. 지구의 중력이 나한테는 작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우주 어딘가에서 나를 좀 끌어당겨주면 안 되나? 그 창 아래에서 가만히 생각하다가 언젠가는 이 순간을 꼭 소설로 써야지, 느닷없이 불쑥 그런 결심을 했더랬다.
그리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제 그때의 그 감각들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스스로가 조금도 특별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속엔 왜 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장된 연민과 헛된 망상이 함께 있는 걸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그때의 나보단 지구의 중력에 많은 미련과 욕심이 생긴 오늘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어쩌면 그 순간에 대한 글을 영영 쓰지 못하겠구나.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을 한다.
캠핑은 단짠이 심하다. 대체로 좀 싫은데 아, 이건 진짜 못 견디게 좋아! 싶은 순간이 있다.
정체 모를 벌레가 많고 텐트 안은 쾌적하지 못하며 뭔가 습하다. 아들은 아늑한 느낌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맨 땅 위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느낌이 든다. 그 언젠가에도 이렇게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무진장 추워하고 무진장 슬퍼했던 것 같다. 이 기분은 대체 뭘까? 고심하게 된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전생에서의 삶이 불현듯 떠오른 건가? 아마도 난 원시인이었을 테고, 동굴에서 살지 않았을까? 조금은 기구한 사연을 품은 채 안타까운 순간 속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 기억 속을 헤매듯 텐트 주변을 서성인다. 한참 동안을 불편해하다가도 화로대에 불을 피우는 순간 그 모든 불편함이 가라앉음을 느낀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라치면 맘 속의 온갖 소란들이 고요함 속에 자리를 잡고 가라앉는다. 그럭저럭 흘러가고 있는 삶에 대한 감사와 평소의 내겐 없던 어떠한 여유를 느끼며 살짝 무뎌져 가는 예민함에 가벼워하기도 한다.
그날 그 창 아래에서 느꼈던 감정들과 멍해진 시선으로 올려다본 별빛들이 조금씩 아득해져 간다. 이런 시시한 말랑함에 익숙해지면 정말이지 글 같은 건 영영 못 쓰겠구나. 근데... 좀 그러면 어떠냐? 이런 생각들도 비집고 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글이 뭐 별거니? 하며 소곤대는 소리들이 귓가를 울리고 있고 어어,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날 그 순간들이 지금의 내겐 무용하기에 잊혀 가는 건가. 이제는 그러한 감각 대신 조금 다른 감각들을 받아들여야 하나.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를 들으며 짙어진 가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10년을 넘게 쓰지 못한 그 순간들은 이제 그만 놓아줘야 할까 보다. 어쩌면 글 같은 거 쓰지 못해도 이미 충분한 삶인지도 모른다.
세 번째 캠핑의 밤이 가을 속을 깊숙이 지나간다. 밤의 도란거림에 귀를 기울이던 나는 동굴 속 원시인의 사연을 조금 궁금해하다가 까무룩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