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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Oct 05. 2023

캠핑장에서 예민함 생각하기

하늘 아래 첫 동네 캠핑장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캠핑을 하느냐, 마느냐.

그 후 어떤 텐트를 구입할지, 어떤 장비가 적합한 지, 캠핑장은 어디가 좋을 지에 대한 고민이 끝없이 이어졌지만 최초 선택지는 그 두 가지였다. 하느냐, 마느냐. 남편은 아주 오래전부터 캠핑을 하고 싶어 했지만, 벌레와 습기와 남들과 함께 쓰는 샤워장과 화장실만큼은 내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꽤나 망설이다 캠핑을 결정했다.


나는 예민한 편이다. 아니, 예민한 축에 드는 것이 아니고 대놓고 꽤 예민하다. 거의 모든 자극에 촘촘하게 반응한다. 너무 밝은 빛에도, 너무 지속적인 소리에도, 너무 큰 소리에도, 너무 습한 기온에도, 너무 차가운 기온에도 모두 힘들어한다. 게다가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라 타인과의 관계 맺음보단 내면의 고요함을 유지하는 일에 가치를 둔다. 끊임없이 말을 거는 사람도, 끊임없이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도, 끊임없이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도 대하기가 힘겹다. 상대방의 표정이나 근육의 움직임, 시선의 높낮이 등으로 감정을 잘 읽어내는 편이라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빨리 지치곤 한다. 기가 쪽쪽 빨려 스스로가 소진되는 기분이다.


평생을 몰랐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가족이 되어버렸던 결혼 초반과 낯선 존재의 탄생으로 끝없는 보살핌이 요구되었던 출산 직후의 고달픔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일을 축복으로만 여기지 못하는 성향. 무던하지 않고 유난스러운 기질. 남들과 같지 않은 별난 감각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것 또한 빨리 깨우쳤기에 필요에 따라 덜 예민하며 외향적인 척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일에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지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자주 멍해지곤 한다.

가끔씩 이대로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을 한다.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내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예민함을 감추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택한 대신 좋은 사람이란 평을 듣기를 포기했다. 그 어떤 종류의 관계도 원하지 않으니 내 예민함을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지닌 후부터 다른 이의 사정이나 안위에 대해서도, 그의 애정과 관심에 대해서도 크게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무던하며 잘 웃고 싹싹한 사람이기 위해 노력했던 날들도 있었지만 스스로의 성향과 너무 다른 존재가 되어야 했기에 차라리 그저 한 걸음 떨어져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길 선택한 것이다. 사회성과 맞바꾼 내향성이었다. 꾸며낸 사회성을 버리고 예민한 내향성을 인정하니 자유로웠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을 상상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 내게 캠핑은, 섬처럼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선 딱 알맞은 일이었지만 집 안에 있는 것보다 자극이 직접적이라는 점에선 아주 견디기 힘든 일이기도 했다.


지난번 캠핑 때는 명절이 끼어있지도 않았고 비도 오지도 않았지만 이번 캠핑엔 그 두 가지가 함께 쏟아져내렸다. 캠핑을 마치고 돌아가면 명절이라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누군가와 약속이라도 잡힐라치면 달력을 볼 때마다 초조해져 약속이 취소되길 바라거나 어딘가 아파오길 바라게 되는 것처럼 명절에 만나야 할 사람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까지 불행하지 않기 위해선 진작에 번개라도 맞은 듯 성격을 뜯어고치거나 애당초 결혼 같은 걸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이런 무모한 선택을 했던 걸까.

새벽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 홀로 깨어났다가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음을 깨닫곤 가지 못해 괴로웠다. 그 와중에 명절이라는 곤혹까지 더해져 아침까지 잠들지 못했다. 두 번째 날 새벽에도 여전히 홀로 깨어 있었다. 침낭은 무거웠고 텐트 안은 마냥 습했다. 무언가가 후드득후드득 텐트를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가 빗소리라는 걸 깨닫자 조금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두 번째 캠핑에서부터 비를 만나는 건 캠핑 초보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비 소리는 점점 거세어졌고 습기 또한 짙어져 갔다.


주위엔 내가 이 모든 것들에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치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리지의 엄마를 대하듯 엉터리 신경쇠약을 핑계 삼아 우스꽝스러운 불평을 부리는 사람쯤으로 보고 있음을 알고 있다. 사실 그것까진 참을 수 있는데 남의 안위를 궁금해하지 않는 나를 비도덕적인 사람 보듯 대하는 시선만큼은 나도 참기 힘들다. 나는 그 어떤 의도도 없이 그저 아무런 궁금함이 일지 않을 뿐이며 그들의 궁금함 또한 내 관심사가 아닐 뿐이다. 이해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서로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너를 이해하니 너도 나를 이해하라는 소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나 할 수 있는 소리다. 각자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머무르다 우연히 시선이 마주칠 때  작고 순수한 응원을 담아 미소 짓는 건 안 되는 걸까.

아아... 어쨌든. 그저 좀머 씨처럼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라고 뱉어내곤 저 쪽 모퉁이로 쌩하니 사라지고 싶었던 캠핑이었다. 역시 명절 전후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대체로 내가 가장 예민한 시기인데, 스스로에게 참으로 조심성이 없었다.  


비에 젖은 텐트를 말리겠다던 남편은 귀찮았는지 집에 와선 그대로 창고에 넣었다. 거의 다 마른 것 같았고 어차피 2주 후에 꺼낼 거라서 괜찮다고 했다. 괜찮음에 대한 기준이 너무나도 달라 우리는 지난 10년 간 끊임없이 싸웠다. 긴 싸움에도 불구하고 그 기준이 좁혀지진 않았지만 그 싸움이 얼마나 불필요한 지에 대해선 서로 동의하기에 누군가가 괜찮다고 하면 나머지 하나는 그저 가만히 있는 편이다. 주로 남편이 괜찮고 나는 괜찮지가 않지만,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연휴 동안 새벽 내내 비를 맞다가 잠시 해를 보았던 텐트가 과연 괜찮을지를 의심하며 창고 앞을 서성였다. 집 안에까지 곰팡이 냄새가 나면 어쩌지. 혼자 초조했다. 사실 그 사이에 곰팡이가 필 것 같진 않았다. 그냥... 그 습기를 간직한 채 집 안에 들어와 버린 텐트가 내게 너무 많은 것들을 연상시켰을 뿐이다. 우리 집에서 습기 따위로 힘들어하는 사람은 나뿐이라 아마도 다음 캠핑 때 텐트에서 나는 비 냄새와 곰팡이 냄새를 느낄 사람도 나뿐일 것이다. 이런 예민함에 대한 타박이나 비난을 받기 싫어 입을 꾹 다문 채 캔맥주나 따고 있겠지만 내 삶 속에 이런 선택이 과연 필요했을까 돌아보기 시작할 것 같다. 언제나 늘 조금 과하게 생각하는 것도 내 예민함의 일부긴 하다.   

나는 종종 혼자서만 괜찮지가 않아서 직장에선 남들보다 일이 많고 집에서도 잡다한 일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진짜 괜찮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먼저 인지하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위해 애쓰다가 가장 먼저 지치며 더욱 예민해지고 만다.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된 후에 나타나 나의 예민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곤 한다. 이제는 정말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질려버린 건데도 그저 내가 예민하고 내향적이라 그런 줄 안다. 그럴 때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습한 것이 싫은 사람은 캠핑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했던 여러 가지 선택 중에 나의 성향과는 확연히 다른 선택들이 이미 너무도 많은데 어쩌자고 또 이런 선택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남편처럼 나도 쉽게 괜찮아지는 사람이었다면 좋았을까. 그럼 삶이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러웠을까.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의 절반쯤만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종종 그런 것들을 궁금해한다. 선택할 수 있는 거라면, 그래, 그럴 수만 있는 거라면, 쉽게 괜찮아지는 쪽을 선택하고 싶긴 하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 그저 나의 이런 예민함을 존중하며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에 빠져든다.


캠핑에 대한 판단은 조금 보류하기로 했다.

다음번 캠핑 때 텐트에서 오래된 비냄새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예민함은 쉽게 무뎌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그것을 감춘 채 살아가는 것 또한 진작에 포기한 일이기에 정말로 남편의 말대로 그저 괜찮았으면 좋겠다.

+ 새벽부터 오기 시작한 비는 오전에 그쳤다.

+ 내가 이 자욱함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좀 더 괜찮은 삶을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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