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홀과 보라카이 여행기에 모두 담지 못 했던 자투리 이야기들이다.
# 내가 보홀을 찾았을 땐 큰 태풍이 지나간 후라 두말루안 비치나 알로나 비치에선 시야가 너무 흐려 스노클링을 할 수가 없었다. 돌고래도 보지 못했고, 나팔링의 정어리 떼들은 사라졌으며(가이드가 무언가 길게 말했는데 헤비레인, 쩡어뤼 곤, 밖에 못 알아들었다. 그렇지만, 필요한 건 다 알아들은 듯하여 내내 이어지는 말들도 다 알아들은 척했는데, 음... 뭐 중요한 말 했으려나?) 그나마 있던 남아 있던 애들도 커다란 배 아래로 숨어버렸다. 게다가 산호초 사태로(누군가 커다란 산호초에 한국이름을 새겨버렸다. 진짜 미친 거 아냐? ㅠㅠ) 버진아일랜드와 스타카 포인트가 폐쇄되어 스노클링의 성지라는 곳엔 가지도 못 했는데 그럼에도 보홀의 바닷속은 너무 신비로웠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언더더씨'가 절로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호흡을 멈추고 몸을 꺾어가며 다이빙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열대어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다. 물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기만 해도 열대어가 코 끝을 스치며 유유히 헤엄쳐간다.
자라의 등에 올라타 난생처음 바다로 갔던 토끼는 처음엔 영문도 몰랐을 테니 그저 이 아름다움에 취해 행복했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바다 안은 신비로웠다. 물 아래에 이런 거대한 세상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물에 들어가기 전까진 알 수가 있나.
나는 이제, 아주 쬐끔은 안다. 바다가 살아 있는 곳임을, 바다가 살아야만 하는 곳임을.
언젠가부터 바다가 죽어가는 것에 몹시도 마음 아파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죽어가는 산호초와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오염되어 가는 바다에 커다란 부채감을 지닌 채 살아간다.
보홀의 바닷속을 돌아다니는 동안 내가 이렇게 이 바닷속에 있는 것 자체가 산호초와 열대어들의 삶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미안했다. 매일같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거북이랑 고래상어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걔네들은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또 미안했다. 그렇지만, 버진아일랜드와 스타카 포인트가 개방되었다는 소릴 들으면 나는 아마도 보홀로 가고 싶어 부릉부릉 할 텐데 대체 이 모순을 어쩌면 좋나 싶어 그 또한 내내 미안했다. 바다가 잘 살아줬으면 좋겠는데, 보고는 싶고. 인간이 없어야 바다가 아름다울 수 있을 텐데, 아름다우니까 들어가 보고 싶고. 참으로 나약하고 제멋대로인 인간이란 말이지, 정말.
+ 보홀이나 보라카이에는 자외선 차단 지수가 100인 비치헛 선크림이 있다. 대부분 그걸 사서 쓴다. 나도 작년에는 그 선크림을 대용량으로 두통이나 샀었다. 그렇지만 지수가 100이면 뭐 하냐고, 물에 다 씻기는데. 물에 들어가자마자 전부 씻겨버려 아무 것도 안 바른 상태로 돌아간다. 덕분에 아들과 나는 썬번이 왔었다.
이번엔 비치헛에 비해 지수는 낮지만 워터프루프이며 산호초 보호를 위한 해양친화성분의 선크림을 준비했다. 사실 해양친화성분이라고 해도 아예 안 바르는 것보단 틀림없이 바다를 오염시킬 테니 그냥 내 양심과 마음의 위안으로 이 선크림을 발랐던 건데, 확실히 작년보단 바다한테 덜 미안했고 나도 덜 탔다. 이번엔 썬번없이 그냥 짙은 갈색피부가 되었다. 현지 가이드가 필리피노 스킨, 이라고 해서 낄낄낄 웃었다.
검색해 보니 산호초 보호 선크림의 종류가 꽤 다양하다. 앞으로 선크림은 무조건 산호초보호인지 확인하고 구입할 예정.
# 이것은 부산 영도의 흰여울마을 수공예품 가게에서 구입한 가방이다.
이 글이 보홀과 보라카이 여행기이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싶을 텐데, 그러게나 말이다, 차암내.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를 나 역시 보홀에서 불렀다.
알로나 비치의 중심가는 아주 작고 작아서 가게들이 많지 않은데, 그 몇 개 되지도 않는 가게에서 내가 영도 흰여울마을의 수공예품 가게에서 주인 언니가 직접 만들었다고 했던 가방과 똑같은 가방을 본 것이다.
"어? 저거... 영도에서 수공예품이라고 해서 샀던 건데?" 깜짝 놀라 쳐다보고 있으니 남편도 옆에서 "어? 니 가방이네?" 했다.
저게 왜 여기서 나오지? 저건 부산 영도 흰여울마을 수공예샵 주인장이 직접 만든 건데 보홀 팡라오섬 알로나비치 근처 가게 상인이 수입했나?
동공을 마구 흔들어가며 주먹을 꼭 쥔 채 부들부들거리고 있으려니 남편이 등을 밀며 가자, 가자, 했다.
수공예품 맞을 거야. 영도도 아니고, 보홀도 아닌 메이드인차이나라서 그렇지. 전부 수공예 맞아.
아, 수공예품이라 그런지 메이드인차이나랑은 확실히 다르네, 라며 신나게 매고 다녔던 지난 여름날들이여.
(ㅠㅠ)
# 필리핀은 맛집이 없는 만큼이나 기념품으로 살만한 것도 없음을 작년에 이미 깨달았다.
이번에는 흔하게들 사오는 바나나칩, 말린 망고, 코코넛칩 등을 전혀 사지 않았다. 작년에 샀던 코코넛칩이 아직도 집에 그대로 있으니, 요번만큼은 정말로 아무것도 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지만, 또 뭔가 살짝 아쉬운 맘에 마지막날 구입했던 초콜릿힐 에코백(내가 올랐던 초콜릿힐), 고래상어 지갑(내가 봤으니까), 거북이 열쇠고리(역시나 내가 봤으니까). 순전히 내 추억으로 점철된 기념품.
흰여울마을 수공예품인 줄 알았던 가방의 정체가 꽤나 의심스러워졌으니 그냥 저 에코백이나 들고 다녀야겠다. 쟤도 어차피 메이드인차이나일까, 정말? 과연? ㅠㅠ
# 노스젠 조식
보홀 여행에서 노스젠빌라는 빼놓을 수가 없다.
깨끗한 침구, 한적하고 조용한 수영장, 일몰이 아름다웠던 대나무 길, 벌레 없던 아름다운 정원 등등 이곳의 모든 것이 너무너무 좋았는데, 조식도 딱 노스젠 같았다.
노스젠의 조식은 뷔페식이 아니다. 원하는 메뉴를 미리 신청하면 정갈하게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내가 노스젠의 온갖 후기를 다 보고 갔는데(헤헤헷, 그러니, 여행 전에 어~얼마나 바빴게요? 정말이지 코피 나게 바빴다. ^^;;) 과연 듣던 대로 필리핀 가정식이 맛있었으며 나머지 음식들도 아주 예쁘고 깔끔했다.
우리 가족은 다음번 보홀 여행 때도 무조건 노스젠이다. 이제는 후기를 찾아볼 필요가 없으니 나도 한시름 덜었다. 휴우.
# 라모이
보홀에는 맛집이 없다. 사실 보라카이에도 맛집은 없다. 꽤 커다란 표본을 경험했으니 감히 단언하는데 필리핀은 맛집이 없다. 맛에 관해서는, 기준이 타이트한 안성재도 있고 재미를 수집하는 백종원도 있는, 우리나라가 최고다.
맛있었던 게 무어냐 묻는다면 내 캐리어에 꾸역꾸역 챙겨갔던 오징어 짬뽕이라고 대답하고 싶은데, 그래도 그 중 맛있었던 곳을 고르고 고르자면 해산물을 파는 라모이다. 아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내내 빨리 숙소에 가서 라면이나 끓여달라고 했는데(휴우... 이 수~ㅐ뀌이, 내가 이럴 줄 알고 전기 포트를 2개나 챙겨간 애미다.) 라모이에서만큼은 나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저는 새우의 익힘 정도를 중요시 여기는데요, 이것 참 맛이 타이트하네요, 따위의 농담을 하며 꽤나 맛있게 먹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맛 같은 건 사실 모르겠고(-_-;;) 아들이 신나 하며 맛있게 먹어서 이곳에서의 시간이 행복했다. 맛이 뭐, 타이트하고 이븐 하다네? 참으로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