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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Aug 11. 2023

취미 부자에 대한 부러움

나는 취미나 취향이랄 것이 딱히 없다. 지금이야 자기소개를 할 일도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일도 없지만, 한창 나라는 사람에 대해 소개하고 다녀야 했던 때엔 취미라고 할 것이 없어 머뭇거려지는 순간이 꽤 있었다. 내 얼굴은 이목구비가 아주 흐린 얼굴인데 그 흐릿한 얼굴만큼이나 개성도 없는 사람이라 가뜩이나 없는 존재감이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욱 옅어지는 것 같았다. 취미는 언제나 만국 공통 취미인 독서였다. 그렇지만 그건 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말을 살짝 돌려하는 정도의 수준이었고 대단한 독서량을 지니고 있진 않았다. 좋아하는 작가도 누구나 다 아는 작가들. 읽은 책도 누구나 다 읽은 책들. 읽은 후 감상문을 남긴다거나 독서모임에 참여하여 토론을 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사실 이 정도면 취미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크게 궁금한 것이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취미가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그 취향과 호기심만큼 넓어져 가는 세상과 풍부해지는 감각이 부러웠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 특유의 시선과 은유가 있듯이 취미가 많은 사람들 특유의 언어와 여유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늘 부러웠다. 사무실 동료 중에 오토바이와 수상스키가 취미인 사람이 있었는데 평일 내내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주말엔 바이크를 끌고 다니는 에너지가 대단해 보였다. 체격이 나보다도 작은 여자분이라 "맨날 야근하고 주말에 또 그걸 타고... 몸이 버텨?"라고 물으면 "그거라도 해야 살지"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정말 멋지다고 말하면 피식 웃곤 했는데 그 웃음조차 꽤나 여유로워서 더 멋졌다.

취미나 관심사가 많은 사람들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느낌을 적절한 비유를 써가며 풍성하게 이야기했다.

가령 나는 "아, 멋져."라고 말하고 마는 것을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은 "이 풍경은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봤던 노을보다 더 멋진 것 같아."라고 말할 수 있었다. 노을의 질감과 색채에 대해서도 다섯 가지 감각들을 촘촘하게 엮어내어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나는 그저 "아, 화나."라고 말하며 씩씩거리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맛집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인 사람은 "괜찮아, 이 정도면 내 앞에서 웨이팅이 끊겼을 때보단 참을 만 해." 라고 말하며 넓고 다양한 경험치를 끌어와 별일 아닌 듯 넘기곤 했다.  


이제 와서 내 이목구비가 또렷해질 수 없는 것처럼 새삼스레 어떠한 인상이나 반전을 갖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아마도 계속 조금은 무미건조할 테고 살짝 무채색에 가까운 사람일 테다. 다만, 삶에 더해질 어떤 여유와 풍부한 감각들을 지니고 싶긴 하다. 그런 바람과 동경을 지닌 채 취미 부자들의 움직임을 자주 구경하곤 한다. 그들에게서 내게는 없는 몰입과, 내게는 없는 비유와, 내게는 없는 취향들을 발견하며 살짝 부러워한다.

이제라도 취미를 좀 가져볼까 싶지만 여전히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가지지 못했던 그 취미가 이제 와서 갑자기 생길 리가 없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하고 싶은 것들과 해야 하는 것들, 잘하고 싶은 것들과 잘할  있는 것들, 궁금한 것들과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보곤 한다. 수상스키를 타는 , 서핑을 하는 , 요가를 하는 , 베이킹을 하는 , 목공을 하는 , 다른 나라의 언어를 쓰는 , 전문적인 견해를 지니고 토론을 하는 . 여러 가지 나를 상상해 본다. 익히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감각들에 대해 상상을 한다. 가끔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해져 취미쯤이야  없어도 그만이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늦기 전에 취미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취미 부자들의 취미를 훔쳐보며 종이인형 옷을 갈아입히듯 나를 끼워 넣어 본다. 이제와 문득 생각해 보니 내 취미는 아마도 공상이 아닌가 싶다.    


#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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