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나는 지금 발리에 있다. 그 '어쩌다'에 대해서 짧은 글을 썼는데 인터넷이 잘 안 되는 곳에서 오타를 수정하다가 글을 몽땅 날려먹었다. 도대체 발리에 뭐가 있을까. 그게 궁금해서 왔는데 확실히 알게 된 건 잘 안 터지는 인터넷과 조금 엉망인 와이파이가 있다는 거. 뭐 사실 그건 내가 빨리빨리의 민족이라 그럴지도.
여름에 건강검진을 하다가 용종을 떼어냈는데 예상치 못한 보험금이 조금 나왔고, 추석 연휴가 지나자마자 발리행 비행기와 숙박비가 절반 이상으로 떨어졌는데, 때마침 컨설팅과 강의 요청이 들어와서 돈이 조금 더 생겼고, 비교적 여유롭게 휴가를 낼 수 있는 타이밍까지 겹쳐 운 좋게 이곳에 올 수 있었다.
길리에서 3일, 우붓에서 3.5일(4일째는 밤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한다)을 계획했다. 길리에선 거북이를 보며 수영을 하고 우붓에선 요가원 도장 깨기를 해야지. 딱 그 정도만 생각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길리에서의 어느('어느'라는 표현을 쓰기엔 너무 짧은 일정이라 사실 두 번째 아침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길리에선 어느 아침에, 어느 점심에, 어느 저녁에, 어쩌다 보니 저기에서,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여기가 좋으니까 여기에서,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즉흥적이고 우연인 듯 이루어졌기에 '어느'라는 단어를 써 본다. 내 기분 마치 '어느'랄까) 아침에 요가를 하러 갔다. 원래라면 선라이징 패들보드체험을 할 생각이었는데 조금 늦게 일어나 버렸다. 이제 뭘 하지? 섬이나 한 바퀴 돌까? 하다가 선셋요가로 유명한 곳에서 모닝요가도 한다기에 거길 가기로 했다.
자전거 바퀴를 쌩쌩 굴려가며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설마 나뿐인가(극 I는 이런 상황이 두렵다) 싶어 다시 자전거를 돌려 숙소를 가려고 했는데, 다행히 프랑스인이 한 명 더 와서 우리 둘만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자기의 이름이 요가라고 소개했다. 진짜로 이름이 요가라며 웃길래 따라 웃었다. 프라이빗 하다며 오히려 좋다는 프랑스인 옆에서 어색하게 아하하, 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한 두어 명이라도 더 와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주목 공포증이라는 거 알려나. 그거 한국에만 있는 병인가. 서양애들도 I성향이 있을까. 애네는 왜 이렇게 스몰토크를 좋아할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요가를 시작했다.
한국에선 요가를 다운독이나 콰트 프로그램으로만 배웠다. 최근엔 에일린의 유튜브를 구독하면서 따라 하고 있다. 에일린 선생님이 자주 하는 말 중에 "가능한 만큼 호흡하세요" 이런 말이 있는데, 항상 궁금했다. 도대체 그게 어떤 호흡이지? 당연히 가능한 만큼 호흡하는 거 아니야? 때때로 호흡이 가능하지 않은 나로선, 그 가능한 만큼의 호흡이 무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가에서 호흡이 정말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가능한 만큼 호흡한다는 것이 대체 뭘까. 정말이지 궁금했다.
수업을 둘만 받고 있으니 선생님은 우리의 동작을 하나하나 살펴봐주었다. 그러다가 선생님께서 내 호흡이 거칠다는 말을 했다. 인헬과 엑스헬을 깊-고 길-게 부드-럽게 하라고 했다. 거칠게 몰아쉬는 내 호흡을 흉내 내며 그렇게까지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동작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을 만큼만, 가능한 만큼만 하라고 했다. 내가 어깨를 더 돌리려고 하니 선생님께선 충분해, 그만해,라고 하셨다.
네가 호흡할 수 있는 만큼만 해. 그런 식으로 숨을 쉬는 건 요가가 아니야. 요가는 잘할 필요 없어. 그냥 호흡이 가능한 만큼만 하는 거야.
선생님은 내 동작을 하나하나 교정해 주며 나의 들숨과 날숨을 함께 해주었다. 릴랙스, 릴랙스, 하며 웃으셨다. 요가는 잘할 필요 없어. 몇 번이나 말했다. 어...... 그런데, 기분이 점점 이상해졌다. 뭔가, 동물의 왕국을 보다가 눈물이 나려고 할 때와 같은 종류의 민망함이 밀려들기 시작하여, 아 제발 울지 마, 바보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했다. 가능한 만큼의 호흡이 이런 거였어? 드디어 무언가를 조금 알게 된 걸까.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고 했다.
선생님은 잠시 수업을 멈추고(아마 학생이 둘 뿐이라 맞춤형으로 하는 것 같았고, 거의 울기 직전의 나를 눈치챈 듯했다. 저녁에도 또 갔는데 그때는 학생이 많아서 한 명 한 명 봐주지 못하셨다.) 한참을 말씀하셨다.
잘할 필요 없다. 가능한 만큼 호흡해라. 호흡에 에고가 있고 호흡에 평화가 있으니 인헬, 엑스헬, 그리고 릴랙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하라고 했다. 결국, 내가 눈물을 흘리자 선생님은 수건을 건네셨고 다시 한번 잘할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삶은 즐기는 거라고 했다. 할 수 있어. 이런 건 쉬워,라고 생각하면 호흡이 가능하고, 호흡이 가능하면 머리와 몸이 압박을 받지 않아 진짜로 쉽고 간단해질 거라고 했다. 이건 할 수 없을 거야, 이건 어려워,라고 생각하면 호흡이 먼저 거칠어지면서 몸이 긴장하게 되고 압박을 받게 된다고...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삶은, 참 이상하지. 우연히 만나는 어떤 순간들이 굉장히 극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건 그 순간이 정말로 극적이라 그런 걸까. 그 순간의 내가 모든 것으로부터 열려 있어 극적으로 느끼는 걸까.
내게 꼭 필요했던 말들이 내가 꼭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마치 나를 잘 안다는 듯 내게 꼭 맞는 방식으로 나를 끌어안아주는 경험을... 이전에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이 사람은... 내가 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 여기에 왔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아니, 나는 이 이야기가 듣고 싶어 우연의 우연이 겹쳐지며 나를 발리로 가라고 등을 떠미네~~ 하며 떠나온 걸까. 실은, 내가 너무 오고 싶어서,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늘 거절하기만 했던 강의까지 했던 거면서...
선생님의 말씀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사실 다 아는 이야기였다. 잘할 필요 없다는 말은 남편이 늘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왜 늘 그렇게까지 해서 스트레스를 받냐고, 그냥 적당히 대충 하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듣기가 싫었다. 남들이 하는 그 '적당히'를 하기 위해서 나는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나는 변수에 약하고 순발력이 없기 때문에 적당히만 하면 너무도 무능하여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할 뿐이었는데 네가 뭘 안다고 자꾸만 적당히 하래. 오히려 답답했다. 대충 해도 뭔가가 되는 사람들에겐 늘 열등감을 느꼈고, 그러지 못한 스스로에겐 화가 났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지금 이 순간에, 그 말이 와닿는 이유는 대체 무언지. 나의 무엇이 달라졌기에 지금은 이 말이 받아들여지는 걸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선생님이 내 동작을 조금씩 교정해 줄 때마다 호흡이 편해졌다. 시작할 때보다 호흡이 거칠지 않죠? 라며 선생님께서 웃으셨다. 울고 있다가 다시 선생님을 따라 웃었다. 정말로 그러네요, 선생님. 가능한 만큼만 호흡하니까 동작이 더 잘돼요.
사바아사나를 할 때 고요함 속에서 파도 소리와 새소리가 들렸다. 그 평화로운 순간 속에 내 호흡소리가 더해졌다. 가능한 만큼의 호흡. 드디어 그게 뭔지 조금 알게 되어 후련하고 기뻤다.
우붓에서는 요가원 말고는 일정이 없었다. 요가원 도장 깨기랄까. 관광지 같은 곳은 갈 계획이 없고 요가와 명상 수업 10개 듣기가 목표인데 3일째인 오늘, 벌써 7개의 수업을 들었고 이제 티베트 싱잉볼 수업을 앞두고 있다.
어제는 명상 관련 수업(브레스 워크, 인요가, 사운드힐링)만 계속 들었다. 수업은 나쁘지 않았다.(브레스 워크는 좀 나빴던가... 아, 이건 할 말이 많다) 그들은 모두, 나의 몸이 무얼 원하고 무얼 말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지만, 더 이상 내게는 와닿지 않았다. 특별한 울림은 없었다. 수업에 대한 실망이라기 보단 나는 이미 내가 이 여행에서 원하는 답을 찾았기에 충분해서였다.
가능한 만큼의 호흡, 그리고 충분하다는 만족감.
이제 나도 그걸 조금은 알게 되었다.
호흡이 곤란해지게 된 후로 물에 들어가는 일이 망설여져 수영을 그만두었다. 길리에서 다이빙을 앞두고선 꽤나 걱정이 되었다. 내가 과연 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나와야지, 생각했는데 내 증상이 많이 나아진 것인지, 처음엔 살짝 긴장했으나 조금씩 익숙해졌다.
예전처럼 '더 빨리, 더 깊게, 더 오래'는 할 수 없었지만, 거북이와 수영을 하기엔 충분했다. 길리의 바다엔 유명한 이글포인트가 있는데 그곳에선 물에 들어가자마자 지금 내 호흡으론 안 되겠구나,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글포인트를 그냥 지나치며 물 위로 올라가 버리자 사진을 찍어주던 가이드가 왜 그러냐 했다.
나는 이미 충분해,라고 대답하며 OK를 그려 보였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의 내가 퍽 사랑스럽다. 나는 못 하겠어,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충분해,라고 대답했다. 나도 이제 그걸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우붓에서의 명상 수업이 그렇다. 내겐 이미 길리에서의 요가 수업으로 무언가가 충분해져서 이곳에서의 명상수업은 더 필요 없겠구나, 깨달았다.
오늘은 빈야사와 하타, 아쉬탕가 스타일의 빈야사 수업을 들으며 가능한 만큼의 호흡을 연습했다.
여전히 약을 챙겨 먹어야 하고, 길리에선 두어 차례 호흡이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어쩐지 나는 곧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나'이겠지만, 어쩌면 조금은 다른 나일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스스로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한 만큼의 호흡이 이런 거였구나. 조금 늦었지만 힘들게 깨달은 만큼 절대 잊지 말아야지. 이 순간의 모든 것들을 잘 기억해 둬야지. 다짐해 본다.
+ 명상 수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티베트 싱잉볼 수업은 유명하다기에 기다리고 있는 중... 졸리려나. 그럼 자면 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