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내가 허수라고 생각했다. 실수의 메커니즘을 증명하기 위한 가상의 숫자. 그게 나였다. 실수와 허수의 세상에선 허수로, 상수와 변수의 세상에선 아마도 상수겠지. 주어와 동사의 세상에선 당연히 동사다. 오직 동사로만 존재하면서 나와는 분절된 존재인 주어를 위한 무언가를 실행하며 변수의 역할이나 유연함 혹은 실수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도구.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월급을 받으면 남편 때문에 점점 불어나기만 했던 대출금으로 대부분 빠져나간다. 나의 욕구, 나의 취향, 나의 즐거움은 지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 취해야 했다. 그렇지만 내게는 너무도 작고 귀엽고 소중하며 절실했기에 사이버 머니 같은 그 월급을 위해 남들이 하기 싫은 일, 아무 성과는 없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잘해봐야 본전이며 욕먹기 일쑤인 일들을 해야 했다. 하기 싫거나 버겁다 하여 휴직계를 던질 수 있는 선택지 따윈 내게 없었다. 나는 그저 실수의 세상을 동경하는 허수였고, 변해서는 안 되는 상수였으며, 묵묵히 움직여야만 하는 동사였다.
나는, 내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으며 그리하여 이제는 내가 좀 지쳤구나, 생각했다.
발리로 가면 아무것도 되지 말아야지. 발리행 비행기를 타면서 다짐했다. 그냥 아무도 아니고 싶었다. 그 누구도 아닌, 그냥 '나'로 있고 싶었다. 근데,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 어떤 내가 '나'일까.
부산에서 발리까지의 비행시간은 7시간이었고, 7시간은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었다. 미리 다운로드하여 간 '상견니'와 '상연과 은중'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 여전히 까만 하늘 위여서 멍하니 생각했다.
나는 누굴까.
어떤 내가 진짜 나일까.
어떤 나로 있을 때 안녕한 호흡을 할 수 있을까.
'은중과 상연'의 3편을 보던 중에 발리에 도착했다.
우선은 공항밖으로 나가 택시 기사를 만나고 빠당바이로 가서 무사히 숙소 체크인을 해야 했다. 공항은 너무 혼잡하였고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홀로 도착한 낯선 이국의 땅은 조금 무서웠다. 나는 누구지, 따위는 잊어버리고 정신줄을 꼭 붙들어야 했다. 내가 누구긴요. 나는 그냥 나지 말입니다.
빠당바이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남편이 보고 싶어 울 뻔했다. 캄캄한 골목길을 지나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더니, 침대 위엔 낯선 동행(커다란 벌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허수답게 피곤에 절어 잠들고 말았다.
다음날. 간신히 일찍 일어나 길리로 가는 배를 탔으며, 여행 후기에서 본 대로 멀미약을 먹었고, 곯아떨어지기 직전 잠시 생각했다. 내가 누군지는 길리에 가서 생각하자.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허수라고 생각했던 걸까. 길리에서 자전거를 타며 동쪽과 서쪽을 오고 가던 중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희생적이며, 무언가를 인내할 수 있고, 어떤 침묵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길리의 모든 것들이 내가 여행 후기로 보았던 그대로였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고 길을 헤매고 있으면 괜찮냐, 어디 가느냐 물어주는 친절한 사람들. 해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가 거북이를 봤냐고 물으며 나의 대답에 따라 같이 기뻐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게다가, 정말로, 거북이는, 바다 안에 머리만 집어넣어도 여기저기에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북이를 보러 가고 저녁엔 노을을 보러 가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곳. 길 어디에서나 마차 소리가 들리고 말똥이나 오줌이 널려 있으며 소나 닭이 집 앞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풍경에 서서히 익숙해지면서 내가 굉장히 느긋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곳. 지저분하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그곳의 시간은 어쩐지 느리고 무심한 듯 흘러가고 있어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스스로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듯 느껴졌다. 이방인이라는 느낌보단 그냥 전혀 다른 나. 이전엔 없던 새로운 나.
여행지에서 나는 철저히 변수였다. 길리는 차가 없는 곳이라 마차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야 했는데, 빌린 자전거가 너무 높아 몇 번이고 휘청이다 계속 넘어져 주변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괜찮냐는 질문과 왼쪽을 유지하라는 충고를 자주 받았다.(삐뚤삐뚤 기우뚱거리며 달려서 앞에서 오던 다른 자전거나 마차와 충돌할 뻔한 적이 많았다.)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으며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된 채 비를 맞다가 길에서 엉엉 울기도 했다.
숙소 스텝이 나를 찾으러 동네를 돌아다녀야 했고 숙소를 바로 코앞에 두고서도 길을 헤매던 나 때문에 길리의 어디에 있더라도 데리러 간다며, 와츠앱 번호를 알려줘야 했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잘못 저장하여 엉뚱한 사람한테 연락했더랬지.
내 키에 맞는 낮고 예쁜 자전거를 구해준 스텝에게 자꾸만 민폐를 끼쳐 미안하다며 몇 번이고 사과하자 활짝 웃으며 손사래 쳤다. 여행지를 즐기러 온 여행객인데 미안해하지 마라, 뭘 잘하려고 하시냐, 그냥 즐겨라,라는 대답을 들었는데...... 비를 맞으며 헤매다가 엉엉 울어버린 직후라 그런가. 돌아다니다 호흡이 곤란해져 "씨~발! 쫌!"이라고 하늘을 향해 욕을 퍼부어버린 직후라 그런가. 속이 후련했다.
그 누구보다 충분히 예측불가한 변수로 존재할 수 있는 나를, 허술하고 엉터리 같은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모든 나를, 온전히 즐기기로 했다.
그 순간부터 길리에서의 모든 내가 사랑스러웠다.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그 섬에서의 모든 내가 퍽 사랑스러웠다.
길리는 작고 동그란 섬이다. 당연히 동쪽에선 해가 뜨고 서쪽에선 해가 진다. 동쪽으론 거북이 포인트가 있어 아침부터 동쪽으로 달려갔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서쪽으로 달려가곤 했는데 어디를 가든 내가 향하는 길 끝엔 해가 있었다.
동쪽 끝에선 해가 떠오르고
서쪽 끝에선 해가 진다.
길리에선 3일을 있었는데, 이제 막 우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여 엄청나게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라는 석양은 보지 못했다. 그래도, 노을을 보기 위해 자전거 패들을 밟으며 달려가던 길 위에서의 설렘이 좋았다. 내가 향하는 길 끝에 펼쳐질 하늘과 바다를 떠올리니 너무도 행복하여 내가 누구라도 좋았다. 아니, 아니, '누구'이고 싶었다. 이 멋진 순간을 혼자 느껴야 하는 것이 아쉬웠다. 남편이 같이 있었다면 좋아했을 텐데. 남편은 이런 분위기 정말 좋아할 텐데. 지난 근무지에서 함께 했던 동료들, 이런 길을 같이 달리면 까르르 거리며 웃고 난리가 났을 텐데. 보고 싶네. 우리 아들은 자전거를 못 타니까 내가 태우고 가야 하겠지? 아들이랑 오면 전기자전거를 빌려야겠다. 얼마나 신나 할까.
여기에선 정말이지 아무도 아니어야지. 그 누구도 되지 말아야지. 그렇게나 다짐했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누군가'이고 싶은 나였다. 남편의 아내, 아들의 엄마, 직장 동료의 좋은 친구, 엄마의 딸, 여동생의 언니, 남동생의 누나, 잊힌 사람들에겐 그래도 조금쯤은 좋은 사람.
이 길 끝에 펼쳐진 저 눈부신 금빛과, 저 길 끝에 펼쳐진 아스라한 분홍빛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자꾸만 떠 올라 동쪽과 서쪽을 오고 가며 어느 순간엔 웃었고 어느 순간에 울기도 했다. 행복했고, 행복했고, 행복했다.
나는 '아무도'가 아닌 '누군가'이고 싶다고, 나는 변수도, 허수도, 실수도 될 수 있는 그 모든 '누군가'이고 싶다고, 자전거 패들을 밟으며 생각했다. 머리카락이 불어오는 바람에 마구 흔들려서 시원하고 자유로웠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 악당이 될 수도 있고 히어로가 될 수도 있고 그저 관객일 수도 있는 나. 그 모든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해야지. 무슨 이유인지, 이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길리에서 불타오르는 선셋은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정말로 이미 모든 것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