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완결이 가능할까.
쓰다만 소설이 있다. 온갖 악당들이 다 등장하는 소설이다. 내 기준에선 슈퍼 히어로 어벤저스가 와도 감당하기 곤란한 악당들이다. 어이쿠, 내가 때려 부수는 몸싸움은 잘하는데 기싸움(혹은 개싸움)은 좀... 이거 츠아암, 고급 인력을 이딴 조잡한 일에 부르다니...... 하면서 스멀스멀 뒷걸음치다가 뒤도 안 돌아보고 슈웅- 날아가버릴 것 같다.
어쩌다 보니, 그 소설 속에 내가 싫어하는 인간 유형을 다 등장시켜 버렸는데 그 바람에 갈등 구조가 좀 이상해졌다. 처음부터 서로 싫어하고 내내 서로 괴롭히고 끝끝내 서로 미워해서 기승전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극적인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시작부터 싫어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싫어하며 언제까지나 계속 최선을 다하여 싫어하고만 있어 서사도 없고 사연도 없고 개연성도 없고 절정이랄 것도 없다.
아, 이거 이래도 되나? 싶은 나의 양심만 아주 코딱지만큼, 진짜 코딱지만큼 있을 뿐이다. 글이란 걸 쓰고 싶다는 애가 글로 이렇게 장난질해도 되나? 싶은 약간의 고민. 특별한 사건이나 이유도 없이 그저 오로지 '저거, 저거 이상한 뇬이네?'싶은 직감 때문에 싫어하는 건데, 그래도 될까? 오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감'을 어찌 묘사해야 할까. 조금 갸웃거리다가, 에라 모르겠다, 다 모르겠고 그냥 싫어하자, 계속 싫어하자, 매번 이런 식이라 소설이라고 하기엔 한없이 허접한 어떤 이상한 기록이 되어 가고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적의'에 대한 기록이랄까.
적의를 지니고 있지만 그 적의를 위한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저 지니고만 있기에 그 적의의 이유나 정당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숨기고 있다 생각하지만 적의라는 녀석은 예측하기 힘든 생물처럼 존재하여 공기 중에 스며들듯 사방에 퍼져나가고 만다. 누군가는 그 적의를 눈치채고 '나도 걔가 싫어'라며 동조하게 되거나, '쟤가 너를 싫어한대.'라고 소곤거리게 만들어 어느새 이전엔 없던 새로운 적의를 만들어낸다. 적의들은 자꾸만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어 점점 커다랗고 까만 구름이 되어 깊어져 간다. 내 소설의 등장인물은 모두 자신만의 적의를 품고 있다.
나는 그저 적의를 품고 있을 뿐 그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아. 그러니, 적어도 나는, 너보단 정당해.
모두들 그런 마음 또한 함께 품고 있다. 아아, 모두가 엇비슷한 모양의 적의와 변명,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뒤섞여버린 불투명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 이제는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나름 소설이랍시고 쓰고는 있는 중이라 공을 들여(믿기 힘들지만 약간의 공은 들인다) 묘사하고 있는 인물이 있긴 한데, 하나는 맨날 '처'우는 애고, 하나는 그 '처'우는 애가 '처'울 때마다 그 울음의 원인 제공자가 되어 굉장한 억울함 속에서 뒤치다꺼리를 하게 되는 아이다. 그 억울한 아이가 주로 하는 말은 "뭘 잘했다고 또 처울지?" 혹은 "일 안 하고 처울기만 할 거면 그냥 책상을 빼지?"이다. 가끔은 그런 말을 하는 것조차 지겹고 지루하여 "왜또처"라고 하기도 한다. 당연히 큰 목소리로 말하진 못 하고 혼자 뒤돌아 구시렁거린다. 책상 위로 서류 더미를 던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서류 더미를 세게 집어던지는 마음으로 한두 장 슬쩍 던져버리고 만다. 늘 그 정도로만 분풀이를 한다.
언젠가 '쳐'가 맞는지 '처'가 맞는지 궁금해서 검색한 적이 있다. 국립국어원에선 '마구', '많이'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인 '처-'와 동사를 결합하여 쓴다고 했으니 아마도 '처운다'가 맞는 듯한데 어법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나 다른 표현으로 말을 다듬어서 표현하길 권한다고 했다.
웃기시네,라고 중얼거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다듬어서 표현할 마음이 1도 없다. 더욱더 처처처처처를 사용하고 싶다. '처처처처처처처처처처' X 5조 5억 5천 번의'처'를 사용하여 처울고 자빠졌네,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이 소설이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니 그냥 한 번만 사용하며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우는 이 아이는, 주로 하기 싫은 일을 맡았을 때 운다. 물론 실수를 했을 때도 운다. 그리고 누구랑 친해지고 싶은데(친해지고 싶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걔가 자기한테 먼저 다가오지 않을 때도 운다. 누군가가 사람들의 이쁨을 받아도 운다. 만들어온 비스킷을 아무도 먹지 않아서 울고, 가고 싶어 하는 음식점이 있어 같이 갔는데도 진심을 다해 함께 기뻐해주지 않는다고 또 운다. 어떤 적의를 감지했을 때는 당연히 운다. 그 적의는 자신의 것일 때도 있고 상대방의 것일 때도 있는데, 자신의 것일 때는 상대를 괴롭히기 위해서, 상대의 것일 때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운다. 정말이지 온갖 상황별로 눈물의 농도와 흐르는 속도를 조절해 가며 열심히도 운다. 그 애가 울 때마다 억울한 애는 더 많은 일을 해야하고 먹기 싫은 비스킷도 먹어야 하며 우는 아이를 달래고 말도 걸며 친구인 척 해야한다. 우는 아이가 울면 울 수록 억울이의 임무는 늘어만 간다. 어쩐지 억울하기만 하여 우는 아이를 향한 억울이의 적의는 점점 더 깊고 짙어져만 간다.
너의 적의는 울음이라는 수단을 통해 나한테 위해를 가하고 있지만 나의 적의는 아직 내 안에만 있어. 그렇지만, 네가 자꾸만 울 때마다 나도 이제는 뭔가 하고 싶어 진다고... 억울이는 주먹을 꼭 쥐고 부들부들 떨며 적의를 감추려 하지 않는데.......
나는, 이 소설을 여기까지만 쓰고 멈춘 상태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든다.
억울이는 정말 아무 짓도 안 한 걸까?
처울이는 정말 위해를 가하기 위해 운 걸까?
물론, 이건 철저히 소설이다. 전부 내가 지어낸 이야기다. 현실 속에선 저렇게까지 잘 처우는 애는 없다. 그렇지만 때때로 이것이 나의 기억인 것 같기도 하고, 나의 피해의식이 만들어 낸 상상인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내 소설 속엔 왜 그렇게 악당이 많은 걸까. 내 컵이 이미 넘쳐버려 차마 그 속에 담기지 못했던 악당들이 모두 저 소설 속에 모여서 와글와글 떠들고 있는 걸까.
한동안은 어쩌면 내가 억울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내가 억울이라 확신했었다. 그렇지만, 억울이가 정말 억울하기만 했는지, 만약 억울이의 적의가 퍼져나갔다면 과연 그 과정에서 억울이는 의도는 전혀 없었던 걸까, 를 생각하는 중이라 이제는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저 소설 속에서 유일한 피해자라 생각했던 억울이도 어쩌면 가해자였나, 생각하니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의 결말을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가해자와 피해자가 각각 존재하긴 하나. 결국은 자웅동체처럼 한 몸 아닐까.
의사 선생님은 옳았다. 처방해 준 약이 착실하게 나의 컵을 비워내줄 거라 하셨는데 확실히 그러고 있는 중이다. 적어도 약을 먹는 동안은, 내가 억울이였든, 내가 처울이였든, 혹은 내가 그 무엇이었든 나는 괜찮을 것 같다. 다만, 이제는 이 소설의 결말을 생각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면, 차라리 그 누구도 죽지 않고 그 누구도 헤어지지 않는 이상한 소설처럼 그냥 영원히 결말을 내지 않은 채 이 소설 속에 모든 걸 봉인하듯 묻어둬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든다. 어쨌든 슬슬 처울이와 억울이의 관계에 대해 무언가를 좀 더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거 아닌가 싶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까지 억울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