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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2023년 이른 봄꽃맞이 후쿠오카 여행

by 바다건너는 바다

정말 그야말로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때마침 한 달 동안 부모님 집에서 머무르던 고모님 내외가 미국으로 돌아가시고,

아직 국내에는 소식도 없는 벚꽃 개화가 일본에서는 시작되었다고 하고,

후쿠오카에서는 사쿠라 마츠리(벚꽃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이번이야말로 완벽한 타이밍 아닌가?


2022년 한 해를 정말 다사다난하게 보내고 기다려왔던 2023년, 그리고 또 기다려왔던 봄이었다.

움츠렸던 몸도 마음도 꽃도 깨어날 시간, 그 시간을 나는 엄마와 함께하고 싶었다.

자식이 행복한 게 세상에서 제일인 우리 엄마는 내가 아픈 만큼 같이 아팠을 거다.

그래서 엄마에게 누구보다 먼저 봄을 맞이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의 후쿠오카 여행이 계획되었다.


거창할 건 없었다.

명분은 어차피 벚꽃구경. 1박을 하기도 마땅치 않고 해서 당일치기 여행으로 계획했다.

여느 때와 다르게 여권을 추가로 챙기긴 했지만, 출근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크로스백 하나 매고 집을 나섰다.


우리는 7시 전에 공항에 도착했고 8시 45분 비행기에 올라 후쿠오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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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짓재팬으로 입국심사나 세관신고를 사전에 등록하고 왔음에도 입국심사까지 약 1시간 20분이 소요되었다.

후쿠오카 시내에 있는 스시로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미리 예약을 해두었는데, 입국심사가 늦어져 식사를 못하게 될까 봐 조마조마했다.


간신히 12시 예약에서 30분을 남기고 공항에서 나오게 됐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스시로로 향했다.

택시를 탄 덕에 예약한 시간보다 5분 먼저 도착해서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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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부터 계산까지 모든 게 셀프로 진행되는 스시로는 일본에서 유명한 초밥 체인점으로, 최근에는 한국까지 진출해서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아직 시도해보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이번 여행의 목적인 벚꽃을 보러 사전에 알아두었던 마이즈루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벌써 곳곳에서 벚나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성격이 급한 나무들은 제법 풍성하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빈약한 나무들 앞에서도 우리 엄마는 연신 아름답다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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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거리였다. 사실 식당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는데,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왔더니 30분은 가까이 소요된 것 같았다.


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벚꽃 축제기간임을 알 수 있는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었다.

물론 풍성한 나무들도 예쁘지만, 성곽을 따라 늘어지게 펴있는 벚꽃들이 굉장히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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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고 좀 더 안쪽으로 이동을 했다.


평일이고 낮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금요일이니 저녁부터는 붐비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나라 지역 축제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가운데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가장자리에 빙 둘러서있는 푸드트럭들을 보니 일본에 온 게 맞나?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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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그곳을 빠르게 통과하고 성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연신 주위에서 예쁘다는 뜻의 일본어 '키레이'가 들려왔다.

역시 국적 상관 없이 보는 눈은 다 똑같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개화율이 너무 낮아서 그중에 성격 급한 나무들로 골랐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그마저도 우리는 '예쁘다, 좋다, 행복하다'를 외치며 표정에서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사실 날씨가 좋지는 않았다. 떠나오기 전부터 확인했을 때 비예보가 있었는데, 마침 하루 전에 흐림으로 바뀌었길래 예정대로 강행했던 게, 어쩌면 더 좋을 수 있는 추억을 반감시키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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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미리 충전해 두었던 보조배터리가 정상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알게 되었다. 일본 가전제품은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니, 소형 가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본에서 보조배터리를 구매했는데 역시 가격이 국내에서 구매할 때보다 2배 정도 비쌌다.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이미 배터리는 20% 이하로 떨어지고 있는데. 배터리를 구매해서 근처 카페에 앉아 핸드폰도 충전하고 카페인도 충전했다.


아직 저녁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저녁 8시 40분 비행기를 타려면 6시 30분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했고 그러면 텐진에서 6시에 출발해야 하니 5시에는 식사를 시작해야 했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후배에게 추천받은 텐진호르몬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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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어정쩡해서 그런지 식당이 붐비지 않아 바로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호르몬은 일본어로 곱창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곱창/대창/막창을 먹지 않는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토시살이나 살치살도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픈키친 형태로 조리하는걸 직접 볼 수가 있는데 숙주와 고기 그리고 달걀을 적절히 익혀서 한 접시에 같이 담아주었다. 달걀은 날달걀로도 제공이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달걀을 밥 위에 올려 호르몬덮밥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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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쳤는데 우리에겐 아직 해결하지 못한 미션이 하나 남아있었다. 그건 바로 아빠에게 드릴 산토리를 사는 것! 근처 돈키호테로 가니 산토리가 층마다 어마어마하게 쌓여있었다. 어차피 주류는 인당 2병까지만 허용되기 때문에 각 2병씩 4병과 카베진이랑 카키노타네 등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5,500엔부터 적용 가능한 면세혜택까지 받았다.


그리곤 계획에 맞춰 후쿠오카 공항으로 돌아왔다. 전철을 타고 도착하니 이곳은 후쿠오카공항 국내선. 국제선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데 매 10분마다 버스가 출발한다고 했다. 지금 시간 오후 6시 정각. 부랴부랴 올라가니 버스가 막 떠나가고 있었다.


꼬박 10분을 더 기다리고 국제선 아시아나항공 카운터에 도착을 하니 오후 6시 20분. 원래 카운터 오픈시간은 6시 40분이었지만,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런지 25분쯤 카운터를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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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출국심사를 통과하고 면세구역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지쳤는지 쇼핑을 포기하고 탑승시간까지 휴식을 취하며 대기했다.


티켓을 받아보니 내 자리는 복도석 엄마 자리는 창가석이었다. 비행기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창가자리를 양보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누구를 닮아 비행기를 좋아하겠는가? 엄마도 당연히 좋아할 거라 생각이 들어 그대로 앉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엄마는 내손을 꼭 잡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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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밤 10시. Q-Code를 미리 등록해 놓은 덕분에 입국심사도 빠르게 통과하고 아침에 맡겨놓은 차를 찾아서 집에 돌아오니 11시가 채 못된 시간이었다. 아침 6시에 나가서 11시에 돌아오니 체력이 바닥난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피곤이 몰려왔다. 다행히 다음날은 토요일이었으니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던 타이밍.

사실 그 이유는 내가 스스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떠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을 땐 떠나는 게 정답인 것 같다. 그건 내 몸과 머리가 어쩌면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걸 수도 있으니까.

비록 몸은 피곤했어도 마음은 한결 가볍고 편안해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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