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브셰히르에서 이스탄불까지
여기 사람들한테 물어보자!
남편의 한마디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래 물어보자. 우리 버스가 어디 갔는지 그들은 알 거다. 근데 내 말을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일단 시도나 해보자.
"혹시, 영어 하실 수 있나요?"
물어보는 족족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며 피하기 바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해졌다. 모르겠다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무작정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좀 전에 내렸는데요, 우리 버스가 없어졌어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 정말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다. 이제 곧 버스가 떠날 시간이다. 이대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서 고등학교 때 연극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온갖 제스처를 다 가져다 붙였다.
버스에서 내리는 흉내를 내고 그 버스가 사라졌다며 양손을 하늘로 향하게 펼치니 그제야 다들 이해를 한건지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제히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위에? 버스가 위로 갔다구요???"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고, 왜 위쪽을 가리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직원처럼 보이는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걸어오자 모두 그 남자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그 사람에게 말을 하라는 듯 손짓했다.
"아! 혹시 영어 할 줄 아시나요?"
"네"
"저희가 30분 전에 여기에서 내렸는데, 우리 버스가 사라졌어요!!"
"아!! 여기는 하차하는 곳이고, 탑승하는 곳은 3층에 있어요. 따라오세요."
역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때마침 나타난 그 직원은 우리를 안내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향했다.
그를 따라간 그곳에는 우리에게 계산기로 '1,330'을 보여주었던 그 버스 안내원이 있었다.
하,,, 안도감에 몸이 바닥으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우리를 안내한 직원은 버스 안내원에게 아래층에서의 상황을 설명하는 듯했고, 이미 우리를 봤을 때부터 대충 상황을 이해한 듯했던 안내원은 다시 한번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서툰 영어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괜찮다며 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내리지 말자며 다짐했다.
이후로도 거의 매 시간마다 크고 작은 도시에 들러서 사람들을 내려주고 태우기도 했고, 저녁 시간이 되면 휴게소에 들러서 약 40분 정도 정차하고 식사를 하라고 했지만, 우리는 내리지 않았다.
8시가 되면 이스탄불에 도착할 거고, 그때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으면 될 것이다.
시원한 맥주 한잔씩 시켜놓고 오늘 진짜 고생했다며 회포를 풀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간이 휴게소 같은 곳에서 식사답지 않은 식사는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고 오직 오후 8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버스에 타서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는 어느새 끝이 나버렸고, 다른 영화나 드라마를 시작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너무 오랜 시간 태블릿 PC만 보고 있었더니 눈도 피로해지는 게 느껴졌다.
한숨 자볼까?
어느새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곧 어둠이 깔렸다.
"얼마나 남았어?" 남편이 물었다.
"글쎄, 잠깐만?" 구글지도를 검색한 나는 깜짝 놀랐다.
이제 곧 8시인데, 우리는 아직 이스탄불에서 2시간이 떨어진 곳을 달리고 있었다.
"어? 뭔가 이상해, 우리 아직도 여기까지밖에 못 왔어. 여기서부터 이스탄불 터미널까지 찍어보니까 2시간 정도 남았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오늘 우린 그냥 끝난 거야. 12시 전에만 도착하면 다행이다. 내 생각에는 거기 나오는 시간보다 두 배는 더 걸리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출발 전 구글지도에서 검색했을 때 네브셰히르 터미널에서 이스탄불 터미널까지는 자가용으로 7시간이 걸린다고 했었다. 만약 남편의 말이 맞다면 우리는 총 14시간이 소요된다는 거다. 10시에 탔으니까,, 그럼 24시에 도착을 하게 되는데, 그럼 정말 오늘 하루는 전부 길에서 보내는 꼴이 되는 거였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으며 이스탄불에 도착만 한다면 저녁식사도 맥주도 다 포기하고 그냥 씻고 자고 싶어 졌다. 핸드폰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고, 보조배터리도 더 이상 충전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몸에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 들었고 우리는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잤을까 차가 멈추는 느낌에 눈을 뜨니 아파트 같은 건물들이 가득했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스탄불 터미널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마을이었다. 그때 시간이 10시 30분. 잠이 확 깨고 이제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나머지 30분 동안은 잠을 자지 않고 계속 지도를 켜놓고 경로를 따라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드디어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스탄불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호객하는 택시 기사님들이 다가왔고, 그중 영어가 가능한 기사님과 짧은 흥정 끝에 나쁘지 않은 가격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호텔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거의 대화하지 않았다.
호텔에 도착하니 프런트에 있던 직원은 지칠 만큼 지친 우리를 보자마자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이해 줬다. 내가 온 지 어떻게 알았냐 물으니, 오늘 도착하지 않은 유일한 손님이라고 했다. 다행히 그 직원의 환대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따뜻한 물로 씻고 나니 에너지가 충전된 기분이었다.
이대로 자기는 아깝지 않은가. 다행히 이스탄불은 대한민국 서울처럼 잠들지 않는 밤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12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도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식당에도 손님이 아직 남아있었다. 호텔 바로 맞은편에 있는 식당으로 건너가 버거와 맥주를 주문해서 아주 늦은 저녁식사를 먹었다.
내가 지금까지 마신 맥주 중에 이보다 맛있는 맥주가 있었을까? 동네 맛집도 아니고 정말 호텔 맞은편에 있던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는데, 거기서 마신 맥주가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로 기억되고 있다.
그 이유는 내가 길에서 보낸 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네브셰히르 공항에서 티켓을 구하지 못했을 때, 앙카라 터미널에서 버스를 잃어버렸을 때 타지에서 얼마나 무섭고 당황스러웠을지를 상상해 본다면 충분히 이해될 거라 생각된다.
다시는 튀르키예는 오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바로 다음날 이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으로 바뀌었고, 이 고생은 6개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맛있는 안주거리가 되고 있다.
그렇게 길에서 보낸 내 하루는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