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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보낸 하루 (상)

네브셰히르에서 이스탄불까지

by 바다건너는 바다
딱! 한 자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우리의 길고 긴 튀르키예 버스여행의 시작이었다. 15년 동안 꽤 많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면서 수 없이 비행기를 탔었다. 인천에서 뉴욕까지, LA에서 포틀랜드까지, 이스탄불에서 니스까지, 파리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도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두 명인데 자리는 하나라..


국내선이라 자리가 여유 있을 거라 생각한 게 문제였다. 아침 8시 반부터 약 2시간 간격으로 비행 편이 있었기에, 아침 눈뜨는 시간 봐서 골라타 자며 항공편을 예약하지 않았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를 보기 위해 어차피 일찍 눈을 떴고, 일어난 김에 공항으로 가자며 6시부터 이동했는데. 도착한 공항에서는 오늘 비행기가 전편 만석이라고 했다. 노쇼(NO-SHOW : 예약 승객이 나타나지 않음)가 있을지도 모르니 기다려보라는 말에 탑승시간 10분 전인 8시 25분까지 기다렸지만, 남은 자리는 딱 하나라고 했다. 이후 항공편은 오히려 오버부킹(OVERBOOKING : 탑승 가능 인원보다 많이 예약을 받는 것)이라 노쇼가 나타나도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튀르키예로 오기 전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까지 이동 가능한 교통수단을 모두 확인했었다. 그중에 하나는 우리가 선택한 이스탄불 공항에서 네브셰히르 공항까지 항공편으로 이동 후 택시를 타고 괴레메로 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괴레메까지 한 번에 가는 고속버스였다. 돌아갈 항공편을 구하지 못했으니, 남은 방법은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사실 갈 때도 문제가 있었다. 잘 가던 항공기가 갑자기 기체결함으로 앙카라 공항으로 비상착륙하는 바람에, 앙카라 공항에서 네브셰히르 공항까지 버스로 4시간 이동했는데, 이번에도 버스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튀르키예는 우리에게 하늘길을 열어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버스 터미널까지 어떻게 가야 할까 막막한 참에 렌터카 직원이 도움을 주겠다 말을 걸어왔다. 택시를 타도 네브셰히르 시내까지 900리라(약 45,000원)였는데, 터미널까지 본인 차로 40유로(약 55,000원)에 태워다 준다는 것이었다. 택시를 부르고 기다리는 번거로움을 우리는 만원과 바꾼 샘 치고 개인 차량으로 터미널로 이동했다.

이스탄불로 가는 버스는 10시 정각에 출발한다고 했다.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9시 30분. 얼른 티켓부터 구매하고 터미널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근데, 한 가지 우리가 알아보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소요시간!

약 10년 전 이스탄불에서 괴레메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는 회사 과장님의 말을 듣고는, 버스도 있단다 정도만 알아두었지, 정말 내가 버스를 타게 될 줄은 몰랐기에 얼마나 걸리는지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것이었다. 부랴부랴 티켓창구로 가서 소요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양손을 쫙 펼쳐 보였다.

"네, 알아요. 10시에 출발한다고요? 그거 말고 얼마나 걸리냐고요. 이스탄불에 몇 시쯤 도착할까요?"

출발 시간으로 오해를 한 것 같아 다시 물어보니 그는 웃으며 다시 양 손바닥을 펼쳐 보여줬다.

"10시간? 그럼 이스탄불 도착시간이 저녁 8시라는 겁니까??"

놀란 표정으로 물으니 그는 "very far!"라고 답했다.


막막했다. 카파도키아로 올 때도 예상치 못하게 하루를 그냥 버렸는데, 이스탄불 여행도 망한 것 같았다. 차에서 배가 고플지도 모르니 일단 샌드위치를 사서 먹는데 샌드위치는 내려가지 않고 자꾸 울컥울컥 속상함이 올라왔다.

"왜 우는데?"

아직 울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채고 물어보니 갑자기 속상한 마음이 폭탄 터지듯 팡! 하고 올라왔다. 한 번 터진 눈물샘은 도저히 마를 생각을 안 했다. 이유를 설명하기도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었다. 속상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잘못이 있다면 티켓을 제대로 예약하지 않은 나한테 있을 텐데, 누구한테 분풀이를 할 수도 없어서 더 분했다.



"그만 울고 얼른 밥 먹어 이제 버스 타야 해."라는 남편의 말에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버스로 올라탔다. 다행히도 이 버스에는 이스탄불까지 같이 가는 안내원이 있었고 불행히도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원, 투, 쓰리, 포도 몰라서 우리를 당황하게 할 줄은 이때는 몰랐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원이 카트를 끌고 와서 과자와 음료수를 나누어주었다. 이제 이렇게 10시간 동안 자고 쉬고 비행기에서 보려고 미리 다운받아 온 넷플릭스도 보자며 의자도 뒤로 젖히고 나름 장거리 이동에 대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버스는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멈추었다.

'응? 뭐지?'

급하게 구글지도를 켜서 찾아보니 그곳은 네브셰히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키르셰히르 터미널이었다.

안내원이 튀르키예어로 무언가 안내했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 없던 우리는 옆자리 승객에게 영어가 가능한지 물어 통역을 부탁했다.

"여기서 10분 정차한대요."

그제야 깨달았다. 이 버스 완행이다.


어쩐지 네브셰히르 터미널에서 이스탄불 터미널까지 구글맵에서 찾아보니 소요시간이 7시간 남짓이었는데 왜 10시간이나 걸린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야 그 퍼즐이 완성되는 기분이었다. 카운터 직원은 분명 이 버스가 가장 빠른 버스라면서 더 오래 걸리는 버스도 있다고 했는데, 빠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이면 가는 작은 나라에서 온 나는 이 상황이 더더욱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이제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의자를 고쳐 앉고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버스는 키리칼레에서 한번 더 정차하고 앙카라 터미널로 왔다. 이 정도면 이번 여행 일정에 앙카라를 추가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앙카라 터미널은 그 다른 터미널들과 규모가 달랐다. 훨씬 넓고 큰 터미널이었고 그 때문이었을까 안내원의 멘트가 아까보다 더 길어졌다. 우리에게 통역을 해주던 옆자리 승객은 불행히도 앙카라에 도착하기 전에 내렸고 할 수 없이 안내원에게 직접 물을 수밖에 없었다.

"몇 시까지 돌아와야 하나요?"

시계를 가리키며 물어보니 그는 알아보기도 어렵게 손가락 하나와 세 개를 겹쳐 보였다.

"13시?" 하고 영어로 다시 물으니 그는 살짝 웃어 보이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계산기에 '1,330'이라고 적어줬다.

"아! 1시 30분? 오케이!!" 자신 있게 인사를 하고는 인당 50리라씩 지불해야 하는 터미널 화장실도 다녀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하니 뜨거운 인스턴트커피를 주는 카페에도 다녀왔다.



이 더운 날 뜨거운 커피를 주니 인종차별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친절했고 뭐가 잘못됐나 이해하려 애쓰는 걸 보곤 아무 문제없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제 버스만 타면 된다. 아직 시간은 10분 정도 남았지만 미리 가보자며 돌아간 그 자리에 우리 버스는 없었다.


순간 머리가 작동을 멈춘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 보던 심장이 멈출 때 나는 삐- 소리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혹시 몰라 이 버스 저 버스 다 올라타서 안내원을 찾기도 했고 다른 쪽으로 이동을 했나 싶어 그 긴 터미널을 왔다 갔다 뛰어다니기도 했다.


여권도 지갑도 아이패드도 와이파이 도시락도 그리고 나머지 모든 짐이 다 그 버스에 있었다. 우리가 들고 내린 건 핸드폰과 동전지갑뿐이었다.


우리..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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