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 미케비치 새벽 바다수영
도저히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현재 시간 오전 5시 10분. 다낭에 도착한 시간이 어젯밤 10시 30분, 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시 30분이었다. 짐도 풀고 씻어야 했기 때문에 오전 1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으니 이제 고작 4시간 밖에 못 잤는데 밖이 너무 소란스러웠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해변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호텔이라고, 위치는 정말 완벽하다면서 예약했던 우리였는데, 그 선택이 잘못됐던 걸까? 눈만 감고 있을 뿐 잠은 진작 깼던 터라 더 이상 누워있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다.
친구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꺼낸 우리의 첫마디는 "미친 거 아냐?"였다. 세상에 누가 새벽 5시부터 수영을 한단 말인가. 아직 해도 뜨기 전인데, 이 사람들은 일도 안 가나? 학교도 안 가나? 잠은 언제 잔단 말인가? 바다가 그렇게 좋은가? 설마 매일 이런다고? 주말도 아닌데 어떻게 이래?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바다 위 떠있는 깨알 같은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기도 했다. 한국에서 그 사진을 본 친구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컷 불만을 토로한 나는 호텔에서 제공해 주는 조식을 야무지게 먹고 외출 준비를 한 뒤 호텔을 나섰다. 우리의 목적지는 한시장, 근데 그전에 갈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호텔 앞에 있는 미케비치. 새벽부터 수영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던 그 해변이다. 이제 오전 10시가 가까워진 시간,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길을 건넜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진도 찍고 바다에 발도 살짝 담가보며 해변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콧잔등 위로, 등 뒤로,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땀은 문제도 아니었다 정수리가 너무 뜨거워서 두피에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한시장으로 향했다.
한시장을 구경하며 쇼핑도 하고, 점심으로 로컬 맛집에서 쌀국수도 먹고, 한국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코코넛 커피도 마시고 호텔로 돌아오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낮동안 사라졌던 사람들이 또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아!!! 그거구나!!!
아침에는 해가 뜨기 전에 수영을 즐기고 해가 뜨면 들어갔던 사람들이, 오후 해가 넘어갈 때 높은 건물들이 만들어주는 그림자에서 또 수영을 하러 나오는 것이었다. 드디어 이해가 됐다. 에어컨 보급률이 낮아 평소 문을 열어두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더위에 잠을 설친 사람들이 해가 뜨기 전 바다에서 열을 식히고 수영을 즐기는 것 같았다.
새벽 바다수영이라? 흥미가 생겼다. 그렇게 시끄럽다고 불평불만하던 내가 갑자기 새벽 바다수영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도 내일 아침엔 바다수영을 나가보자며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니 현재 시간 새벽 5시. 밖을 내다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해는 뜨기 전이었고 아직은 어둡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갈 거야?, 진짜 갈 거지?" 다시 한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는 선글라스를 끼고 튜브를 한 손에 든 채 바다로 향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네트형태로 된 가방에 방 키와 핸드폰 등 소지품을 넣고는 가지런히 벗어둔 신발 위에 올려두었다. 혹시 누가 가져가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방을 계속 주시하면서 뒷걸음질로 바다에 들어갔다. 바닷물은 차가웠다. 호텔에서 길 하나 건너에 있는 바다까지 걸어오면서도 땀이 나기 시작할 정도로 더웠는데 그 더운 기운은 싹 사라지고 오히려 춥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럴 땐 몸을 계속 움직이면 춥지 않다고 어린 시절 아빠가 알려주셨다. 부지런히 발장구를 치며 가지고 나간 튜브에 몸을 맡긴 채 간헐적으로 오는 파도를 맞으며 오르락내리락 새벽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꺄!!
너무 신이 나서 단전에서 올라오는 기분 좋은 비명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우리를 보고는 현지인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오늘이 평소보다 파도가 높은 것 같아." "박자에 맞춰서 뛰어봐, 지금!!" 다양한 조언을 해주며 함께 즐기던 베트남 사람들이 어느 순간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해가 뜨기 시작했다. 등이 뜨겁고 타는 듯한 느낌에 더 이상 바다 수영은 어려울 것 같아 급히 호텔 수영장으로 피신했다.
샤워기로 바닷물을 씻어내고 수영장으로 들어가 여유를 즐기다가 문뜩 베트남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새벽부터 소음을 내고 있다며 흉을 봤다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러웠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살면서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듯,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새벽 바다수영은 새로웠고 즐거웠고 짜릿했다. 또 다른 누군가가 호텔에서 우리를 욕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