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장과 코에서?
파킨슨병은 두 번째로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지만, 두 번째라는 단어에 비해서는 잘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은 65세에서 5%, 85세에 33%라는 압도적인 숫자의 유병률을 보이는데 반해 파킨슨병은 65세에 0.5% 미만, 85세에 2% 유병률을 보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900만 명 정도의 환자수를 보이고 있으며 대부분의 환자들은 (아무래도 수명이 긴) 중진국 이상 국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환자와 주변 가족의 삶의 질, 그리고 의료비용의 증가로 봤을 때 알츠하이머 다음으로 빨리 치료법을 발견해야 하는 질병이죠.
파킨슨의 특징적인 증상인 손떨림, 움직임이 느려짐, 경직, 자세불안정 등등이 나타나기 5~20년 전에 몇 가지 전조증상이 나타납니다. 변비, 후각 능력 저하 등등이 그것인데요, 두 개를 집은 이유는 제목에서 언급한 이야기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 독일의 해부학자 Heiko Braak 선생님은 파킨슨 초기부터 후기 환자 뇌를 쭉 분석하였는데, 파킨슨병에서 나타나는 주요 표지인 Lewy body가 두 장소 - 한 곳은 후각멍울, 그리고 다른 곳은 미주신경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미주신경은 중뇌와 몸의 신경들을 연결하는 신경...이라고 이해하시면 좀 편할 텐데요 (설명하자면 해부학 시간이 길어집니다) 이후 파킨슨병 증상이 진행될수록 마치 이 두 부위에서 Lewy body가 뇌의 다른 부분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stage 3-4에 중뇌부위의 도파민 신경 밀집부위인 흑질에 퍼져나갈 때 흑질 도파민 신경세포 사멸에 동반되어 운동능력 감퇴가 나타나며 이후 대뇌피질 영역으로 병변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환시, 정신증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변비가 나타나는 장은 미주신경이 연결된 부위고, 후각멍울 또한 앞에서 설명한 기능저하와 왠지 연결된 것 같습니다. 기가 막힌 우연일 뿐일까요?
앞에서 언급한 정보들을 조합했을 때 변비가 일어나는 장에서 만들어진 Lewy body 같은 단백질 덩어리가 중뇌의 도파민 세포까지 미주신경이란 도로를 타고 올라와 문제가 된다면 도로를 막으면 - 장에서 올라오는 미주신경을 절단하면 파킨슨의 발병률을 낮출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2017년 스웨덴에서 미주신경절제술 (vagatomy)를 한 그룹에서는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유의미하게 파킨슨 발병률이 줄어들어 있다는 인구통계 데이터를 발표했습니다. 2020년에는 존스홉킨스의 고한석 교수님 방에서 마우스로 vagatomy를 통해 Lewy body와 비슷한 단백질 응집체의 이동을 막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죠.
아직까지는 파킨슨병에서 왜 코와 장, 두 군데가 가장 먼저 응집이 시작되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 두 군데가 중요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 lewy body의 전이를 막는 것이 질병에 중요할 것이라는 가설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이런 진행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는 Lewy body의 주요 구성단백질인 alpha-synuclein 단백질에 대한 항체, 해당 단백질의 응집 억제제, 신경이 죽으면서 이러한 응집단백질이 전이가 일어난다면 신경의 죽음을 막고 염증반응을 완화하기, 세포 내 응집단백질 분해를 위해 세포 내 응집단백질 제거 기작 활성화... 등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조금 신기한 것은 흡연자는 파킨슨에 걸릴 확률이 비흡연자와 같거나 일부 연구에서는 더 낮게 나옵니다. 물론 흡연은 아주 많은 부정적인 효과를 나타내지만 연기 속의 무언가는 어쩌면 미래의 파킨슨 예방... 까지는 아니고 억제제로 쓰일지도 모릅니다? ㅋ물론 아직 갈길은 멀지요.
하지만 코와 장에서 시작된다는 가설을 생각한다면 담배 외에 코와 장에 안 좋은 물질들이 접촉하는 일 - 특히 농약과 같은 미토콘드리아에 대미지를 주는 물질들을 최대한 삼가는 것이 천에 다섯 정도 확률로 올 파킨슨 예방의 시작이 되진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