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으로 치우친 왜곡된 이야기, 코리끼 다리 같은 이야기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책에 정말 걸맞은 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표지에서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평양을 제집 드나들듯 했던 대북사업 전문가의 <레일 북큐멘터리>'라는 부제가 눈에 걸립니다. 평양을 제집 드나들듯 했다는 것이 꼭 전문성을 대변해 주지는 않으니 말이죠.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활동을 했는지가 중요하겠죠. 물론 가보지 못하고 본인의 의견을 펼치는 사람들 보다야 경험적 근거를 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만 보고, 보여주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전문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에 가보았다고 해서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 경제의 중심을 읽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너무 많은 오류와 왜곡, 비약 등이 가득하다 보니 정말 조심스럽게,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 개인의 주장과 의견을 담은 책은 미주를 통해서 자료의 출처가 포함이 됩니다. 신뢰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 책은 미주는커녕 각주도 없습니다. 본인이 제한적으로 보고 들은 이야기, 즉 '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북한 체제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부분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 전개 방식도 대단합니다. 북한 헌법을 우리가 굳이 그렇게까지 이해해 가면서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79년생이면 나이도 많지 않으신 분인데 어쩌다 이런 생각에 빠지게 되었는지 의아합니다. 무죄 혐의로 풀려났다고는 하지만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던 전력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논리는 '우리나라 시장경제 민주주의는 개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 '북한은 전체주의가 아니고 매우 합리적이고 올바른 방향의 집단주의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오해는 그들 시각에서 보면 당연한 것들이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있는 다양한 문제점은 북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흘러갑니다. 과연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나라 대학교 학비가 비싸고, 북한 대학교가 무료이면 북한이 좋은 것일까요? 우리나라는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거주의 자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북한은 집도 주어지고, 거처나 일에 따라서 타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이동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되어 있는 것인가요? 의미 없이 사랑타령이나 하고 있는 우리나라 음악과 드라마, 영화들은 국가나 집단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의미 없는 산업인 것일까요?
그들이 감추어 둔 것은 모르는 채 하고, 눈앞에 보여주는 것에 현혹되어 다른 대중들을 호도하려는 이런 시도는 어떤 면에서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책의 많은 부분이 어딘가에서 자료를 제공받은 것처럼 북한의 허울뿐인 제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김정은 3대 세습까지 '그럴 수 있다',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어렵고 힘든 혁명과업뿐이다'며 미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케네스 배'가 학대당하던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것일까요? 왜 그곳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오토 웜비어'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것일까요? 동북아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핵미사일에 대한 내용은 왜 없을까요? 이 돈이면 수천만 인민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아실만한 분일 텐데 말입니다. 무상교육을 운운하기 이전에 10년이라는 군 의무복무에 대해서는 왜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쓰인 북한에 대한 글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포함된 경우가 많습니다. 좌측이든 우측이든, 확인된 사실과 그와 관련된 것들을 살펴보기보다, 본인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판을 짜두고 이야기를 맞추는 경향이 큽니다. 엊그제 읽었던 독일 작가의 글이 이러한 글보다는 수천수만 배 나은 것 같습니다.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이토록 객관적인 글을 쓸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합니다. 수년 전에 읽었던 후지모토 겐지의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도 머리 한편을 스칩니다. 북한에서 오래 있었기로 치면 오늘 읽은 이 책을 쓴 자칭 대북사업 전문가 '좌충우돌 아줌마'보다는 후지모토 겐지가 훨씬 더 오래, 깊이 있었겠죠. 오늘 읽은 이 책은 어쩌다가 이렇게 치우치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우리 사회에 대한 불만이 이런 내용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막연하게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심리적인 현상일 수도 있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막연하게 '서양사람들은 친절하고 법규도 잘 지킨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에서는 커피숍에 노트북을 그냥 두고 가도 없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직하다'라고 합니다. 전형적으로 '내 것'에는 엄격하고, '남의 것'을 동경하는 것이죠.
이 책은 어쩌다가 '북한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잘못된 것이니 그들에 맞춰야 된다'는 논조를 갖게 되었을까요? 우리나라 정부, 기업들과 북한의 교류가 원활하지 못했던 사례와 원인들을 짚어보는 부분에서 북한 리선권이 우리 경제인들에게 '냉면이 목에 넘어가냐'고 말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될만한 행동일까요?
사실 철저하게 감추어진 저 나라에 대해 전 세계 어느 누구가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있을까요? 그러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 쉽사리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북한에 대해서는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좋은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반대쪽의 체제를 옹호하고 이해 글이 반대로 북한에서 출판 되어 도서관에 꽂혀있을 수 있을까요? 어느 사회가 더 자유롭고 정상적인 사회인지는 어렵지 않게 답이 내려질 것 같습니다.
30. 2003년 부산시장이 방북했을 때, 함께 간 부산의 경제인들은 여러 분야의 합의서를 작성했지만 단 한 것도 지키지 않았다. (남측 경제단체에 대한 문제 지적)
35. "우리 (남한) 지방 공무원들이 중앙 관리들을 만나면 얼마나 깨지는지 모르시죠? 그에 비하면 북측의 태도는 고압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분들은 자기 권위를 위해서 큰소리 내는 것도 아니고, 남쪽에 비하면 몹시 순수합니다." (남측 정부 의사결정체계 비교)
53. 사람들이 북녘을 통제사회라고 보는 또 다른 이유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물어보자. 우리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는가? 남쪽에서는 돈이 있어야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된다. (전 세계에 어디도 자유가 없다는 궤변)
55. 인간의 모든 욕망을 보장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 상에 없다. 지구의 재화는 제한되어 있다. 인간의 욕망과 기본권을 실현하는 방식에서 사회마다 기준과 실현방식이 다를 뿐이다. (기본권 통제의 정당성 주장)
57. 전체주의는 '개인은 민족, 국가와 같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이념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정부나 지도자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사상 및 정치체제'이다. 전체주의로는 집단의 실질적 협력과 단결을 보장할 수 없다.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없는데 어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단결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반면 집단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지 않는다. 집단주의는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철저히 보장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와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이후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출처나 근거가 제공되지 않는 또 다른 궤변)
71.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도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단결했다. 오히려 굶주리고 있는 인민들을 지켜보는 지도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인민들보다 더 굶으면서 나라의 살길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지도자의 마음을 안쓰러워했다. 지도부에 대한 신뢰를 더욱 굳게 하고 단결의 힘으로 고난의 행군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나갔다. ('굶다'와 '성공적 극복'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
86. 나는 고등학생 아들이 하나 있는데 대학 가면 등록금만 한 해 1,000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 큰일이라며 한 숨을 내쉬었다. (중략) "요즘 우리 대학생들이 철이 없어요. 국가에서 학비를 대주는데도 고마운 줄 모르거든! 기숙사, 교복, 다 무료라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오! 학생들을 좀 데리고 올 테니 총장 선생이 남조선 대학생들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설명을 좀 해요. 나라의 고마움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모든 게 무료라, 참 부러운 상황이다. (북한 교육제도 동경)
96. 일찍부터 재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가르치고 격려한다는 것이 아이들의 천진함을 훼손한다는 사고는 편협하다. (강제적 영유아 예체능 공연에 대한 정당성 주장)
110. 대체로 남자는 10년, 여자는 3년 동안 군 복무를 하는데, 제대 군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도 다시 마련되므로 북녘에서는 군 입대를 선호한다. (탈북자 주장과 배치)
150. 2005년 9월부터 11월 초까지 '아리랑' 공연은 남쪽 사람들 누구나 와서 볼 수 있었다. (중략) 나는 이 이 기간 동안 평양에 상주하는 남쪽 상황실 책임자였다.
153. 나는 지금도 이런 공연이 어떻게 가능한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억만금을 들여도 불가능하다. (중략) 아리랑 공연이 청소년에 대한 심각한 인권탄압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이 있다. 그러나 공연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았는가? (개인행동의 선택권과 관련된 인권문제에 대한 이중적 잣대)
156. 기꺼운 마음으로 '영예군인'(상이군인)들과 결혼하는 북 여성들. 집단을 위해 희생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청소년들. '하나는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하나를 위한다'는 집단주의의 기본 특성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아리랑'을 이해하기 어렵다. (전체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한 자가당착)
171. 반면 북한은 집단주의 사회다. 경쟁보다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단합이 더 중요하다. 집단을 중시하다 보니 개인의 창의성이 무시될 수 있으며, 관료주의의 폐해가 생길 소지 없이 역시 없다고 할 수 없다. (개인성 상실에 대한 정당화)
189. "세습이란 원래 재벌이나 부자들이 자기 아들에게 기업과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김일성 주석은 자기 아들에게 무엇을 물려주었겠습니까? 모든 것이 인민의 소유인 북에서 물려줄 만한 것이 있었을까요? 유일하게 물려준 것이 있다면 혁명과업이겠지요." (세습 정당화)
199. 남쪽 사람들의 온갖 무리한 요구와 무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힘이 근원은 자신들이 장군님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나왔으며, 조국통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웃으면서 간다는 결심 덕분이라는 것을. (남측 비하, 성급한 일반화, 독재 정당화)
236. 최근 탈북자 출신 주성하 기자가 쓴 '평양 자본주의 백과사전'에 보면 "외부인을 만나는 순간 속내를 철저히 숨긴 배우로 둔갑하는 평양 시민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무척 황당스럽고 악의적인 이야기다. (북한에 살았던 사람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한 감정적 대응)
237. 그동안 반북 권력과 영합하며 살아온 소위 북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은 가려서 들어야 한다. 북녘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북녘의 변화, 그것을 남녘 사람들이 제대로 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자만이다. (자기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