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그리고 스파이더맨
그러고 보니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스파이더맨 1편이 개봉한 지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이나 20대들에게는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타고 뉴욕 도심을 날아다니는 화면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20년 전,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로 그 장면을 보았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스파이더맨은 마블 세계관에서 큰 의미를 갖는 히어로이지 않을까요.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 그리고 톰 홀랜드까지 세 번 씩이나 주연배우를 바꿔가며 리부트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 캐릭터가 이 세계관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스파이더맨이 다른 히어로들보다 더 관심이 갔던 것은 '무작정 히어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수퍼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먹고 살 걱정도 해야 하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처럼 존재를 드러내 놓고 지내는 것도 아니고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초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토르와 같은 신적인 존재도 아니었고, 헐크처럼 정말 가공할만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마블이 아닌 소니 픽쳐스가 캐릭터에 대한 판권을 선점한 것 때문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초창기에 스파이더맨 없는 세계관이 되는 건 아닌지 다들 관심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3편의 단독 영화를 마블에서 제작하는 것으로 협의가 되어서 톰 홀랜드 주연의 스파이더맨이 어벤저스에 합류할 수 있었고, 이번 노 웨이 홈까지 세편의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과거 스파이더맨 시리즈보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재미와 감동이 덜하다는 평도 있습니다. 이미 화면에서 이런저런 스파이더맨을 수차례 보아 오면서 익숙해지기도 했고, 기대도 생긴 탓이겠죠. 게다가 스스로의 이야기만을 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세계관 안에서 다른 작품들과 연관되어 움직여야 되기 때문에 제약도 있었을 것이고요. 실망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파이더맨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실망이 있을 수 있겠죠.
이번 작품이 재미있고 아니고는 개인 취향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작품의 콘셉트가 참 좋더군요. 토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캡틴 마블 등을 통해서 그동안 지구에 한정되어 있던 이야기를 우주까지 확정했고, 어벤저스 엔드게임과 앤트맨을 통해서 시간여행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스파이더맨에서는 세계관의 시공간을 확장한 것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세계들이 평행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무한정 펼쳐질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멀티 유니버스 콘셉트를 그냥 '설명'하면서 갑자기 가져오면 따라오기 힘든 사람들에게 혼란만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나왔던 두 명의 주연배우와 빌런들을 통째로 같이 가져와버리면 굳이 '이해'하려 할 필요가 없겠죠. 그냥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요. 히어로물을 다 챙겨보지 않고 본인이 관심 있는 시리즈 일부만 보는 저희 아내도 재미있게, 어렵지 않게 보았을 정도이니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 아닐까요.
개봉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도 극장에서 계속 상영 중에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가가 얼어붙어서 다른 변변한 개봉작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상영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마무리를 잘한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스파이더맨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또 나올 일은 없는 것 같은데, 어벤저스를 비롯한 다른 시리즈에서는 스파이더맨을 찾아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