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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Jun 13. 2021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다시 읽는 한비자, 그에게서 마키아벨리의 향기가 난다

 이른 아침 꺼내어 든 책의 제목은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입니다. 다소 공격적이죠. 사실 책 표지 윗단에 작은 글씨로 써져 있는 '서른 살의 선택 한비자에서 답을 찾다'가 눈에 더 들어옵니다.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사상가 중 법가를 대표하는 인물 '한비자'의 글을 설명한 책이라는 것이죠. 한비자와 같이 실리적이고, 원칙적이고, 강경주의적인 인물의 사상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중고교 시절에 어렴풋이 배운 내용을 떠올려보면, '제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대로'가 법가 사상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게다가 심지어 '서른 살'이라니, 도대체 나이 서른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길래 말입니까. 2012년에 쓰인 책이면 그렇게 오래된 책도 아닌데, 마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같은 느낌이라 예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김광석 님이 서른 즈음에 느꼈던 그 감정을 느끼고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본격적으로 어깨를 누르기 시작하는 것이 요즘은 마흔이라고들 하기 때문이죠. 소위 요새 나이는 예전 나이 +10이라고들 하니까요.


 저자 김태관 님은 언론사 편집국장, 논설위원 등의 경력을 가진 언론인 출신이라고 책 좌측 날개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을 조금 검색해 보니 이 한비자를 다룬 책뿐만 아니라 장자를 비롯한 각종 철학 관련 해설서를 집필하셨습니다. 고전을 현대사회에서 재해석해서 세대별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일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던 것일까요.


 솔직히 한비자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이 책도 한비자를 직접 읽는 것이 아니라 결국 누군가의 해석을 읽는 것이지만, 이렇게라도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고전을 접하게 된다는 건 우연히 잡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일단 스윙이 많아야 안타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겠지요.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 주말이면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 시작하니 이렇게 좋은 글을 접할 기회가 생겨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틀밖에 안 되는 주말이지만, 이튿날 아침의 시작이 상쾌합니다.


 글을 읽어나가면서 놀라움을 계속 금치 못했습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그 중심사상이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죠. 두 사람 모두 '군주가 되려면 나라를 이렇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저자 김태관 님도 서두에 언급을 하셨지만 한비자가 천년 이상 일찍 살았던 사람이니, 마키아밸리가 조금 더 유명하다고 해서, 서양사람이라고 해서, 한비자를 '동양의 마키아밸리'라고 부르는 실례는 없어야겠네요. 잠시 옆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이게 혹시 '장유유서'를 바탕으로 한 저만의 착각일까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한비자의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글을 떠올리면서 정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라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한비자 원문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생각이 한비자의 사상인지, 김태관 님의 해석인지 분간할 능력은 아직 없습니다. 그래도 한비자가 책을 잘 쓴 것인지, 저자가 글을 잘 엮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찾은 이 책을 관통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이 머리와 가슴에 남습니다.


 한비자는 '해야 할 일을 하라'고 합니다. '보이는 일'이 아닌 '해야 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죠.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쓸모 있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그게 리더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회사 대표라면, 팀장이라면 성과를 내야 합니다. 직원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일단 해야 할 일을 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열심히 하지 말고,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비자는 법가 사상가입니다. 법치를 중시하고 있죠. 인의에 기대어 상황을 살피고, 사람을 다루지 말고, 시스템을 구축해서 그 원칙대로 내가 신경 쓰지 않더라도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더 자신이나 특정 인물들의 특출 난 능력에 기대하지 말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사람이 엄청나게 선한 의도를 가지고 그 일을 해내고 있다고 기대하지 말고, 누가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큰 조직이고 중요한 조직일수록 이런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짜인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상황에서 하나가 튕겨져 나가면 어떨까요? 그 톱니바퀴가 튕겨져 나가지 않기를 막연히 기대해야 할까요? 어떤 톱니바퀴로도 대체 가능할 수 있도록 조금은 여유 있는, 그리고 지속 가능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개인적으로도 '무리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에 있어서, 혹사시키지 말고, 소모하지 말라고 합니다. 개인관리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체계적으로, 원칙대로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죠. 한비자는 눈을 많이 쓰면 눈이 멀고, 귀를 많이 쓰면 귀가 멀고,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들어 멀리 있는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 태어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안경을 맞췄습니다. 이제 안경이 없으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나이를 들어가면서 자연스러운 과정이긴 하겠지만요. 작년에는 과로로 인한 직접적인 원인 알 수 없는 돌발성 난청이 발생하여 일부 회복은 되었으나 완벽한 정상화는 불가능하기에 좌측 청력이 3~40% 떨어진 상태로 지내야 한다고 진단을 받았습니다. 제 손을 떠난 일인데도 불구하고 미련하게 머릿속에 싸매고 있는 일들, 일주일에 7일 24시간을 신경 쓰고 있는 일들로 인해 언제부턴가 머리 한쪽 구석에 두통을 달고 있는 것은 익숙해져버리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이 책의 부제는 <서른 살의 선택, 한비자에서 답을 찾다>입니다. 그런데 서른을 10년 전에 넘긴 지금의 제가 묵직하게 새긴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치 못하기 때문일까요, 저자께서 서른, 이립의 나이에 기대하시는 바가 컸기 때문에 그러셨던 것일까요. 어찌 되었던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다른 한비자의 해설서나, 원문을 좀 더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어떻게 원하는 대로 살라는 것인지는 사실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원하는 것들 보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원하는 것들을 절제하라는 내용이 더 많았던 것 아닐까요. 책을 좀 더 깊게 읽어봐야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글이 담고 있는 좋은 내용과는 별개로 제목을 정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일 것 같다는 생각 듭니다. 포스터 느낌과 내용이 매칭이 안되었던 영화같은 그런 기분이죠.




9. 악한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군주에게 뱀 같은 지혜를 주문했다는 점에서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는 닮은 데가 많다.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간교한 본성에는 동서양의 구분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이들은 일깨워 준다.


12. 빚에 쫓기는 자에게는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40. 즉 승리와 패배는 전적으로 사람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47. "그만 울어.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아."


48. "군주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인자함이지만 다스림은 아니다. 눈물을 흘리며 형을 집행하지 못하는 것은 인이고, 그래도 형을 집행하는 것은 법이다." 외저설 우상편에서, 한비자는 천하의 명마인 천리마라 해도 지금 당장 부릴 수 없다면 가차 없이 목을 베어 버리라고 충고한다.


50. 작의 의를 세우려다가 땅강아지처럼 죽는다면 헛된 죽음에 불과하다.


53. 한비자 공명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한 자밖에 안 되는 키 작은 나무라도 높은 산 위에 세워 놓으면 천 길이나 되는 골짜기를 내려다볼 수 있다. 이는 나무의 키가 커서 그런 게 아니다. 그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


57. 한비자가 난세편에 인용한 신도의 말은 우리의 의표를 찌르고 있다. "현명함과 지혜만으로는 많은 사람을 굴복시킬 수 없지만, 권세와 지위로는 현명한 사람도 굴복시킬 수 있다. 이로써 나는 권세와 지위는 믿을 수 있어도 현명함과 지혜는 부러워할 것이 못됨을 알았다."


65. 그들은 맹상군을 따른 게 아니라 자기 이익을 쫓아다녔을 뿐이다. (중략) 재벌 회장도 몰락하면 찾는 이가 거의 없고, 일국의 대통령도 물러나면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게 오늘의 세태 아닌가.


68. 아버지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도 남의 모함으로 죽일 수도 있다. 하물며 왕과 신하의 관계는 어버이와 자식만큼 친하지도 않다. 여러 신하들이 입을 모아 모함하면 단지 첩 하나가 입을 놀리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성인이나 현인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겠는가.


73. "지금 왕이 향락에 빠져 온 나라가 날 새는 줄도 모르고 있으니 천하가 위태롭다. 온 나라 사람들이 날짜를 모르는데 나만 홀로 안다면 내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술에 취해 날짜를 알지 못한다고 일러라." 아는 것은 지식이지만, 알아도 말하지 않은 것은 지혜다.


78. "죽은 자는 진실을 말하지만, 산 사람은 거짓을 말한다."


79. "상아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면 푸성귀 따위의 허술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반드시 산해진미를 찾게 될 것이다. (중략) 산해진미를 질그릇이나 옹기에 담을 수는 없다. 금 쟁반이나 옥그릇이 필요한 법이다. (중략) 옥그릇을 사용하는 사람은 꾀죄죄한 옷을 입을 수 없다. 비단옷 정도는 입어야 한다. 비단옷을 입은 사람은 누추한 집에서 살지 못한다. (중략) 따라서 그는 고대광실의 으리으리한 집을 찾게 마련이다. (중략) 지금의 궁궐이 성에 찰 릭 없다. 반드시 궁궐을 새로 짓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자면 엄청난 인력이 동원돼야 하고, 세금도 더 거둬야 한다. 왕의 사치를 위해 백성을 쥐어짠 나라들이 어떤 종말을 맞았는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84. 한비자가 망징편에서 마흔일곱 번이나 '이러면 망한다'를 되풀이한 것은 사소한 것을 방치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다.


96. 직장에서 샐러리맨들이 가장 크게 불만을 느끼는 것은 신상필벌의 원칙이 무너졌을 때라고 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승진에서 밀려나고, 요령만 피우면서 아부를 잘하는 사람이 일 잘한다고 칭찬받는 게 그런 경우다. 상사가 업무로서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제 마음에 드는 부하만 편애하는 것도 직원의 사기를 꺾는 일이다.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회사의 앞날은 보나 마나다.


97. "내가 술에 취해 측근 신하들과 장난을 하다가 그만 실수로 북을 쳤다." 백성들은 모두 돌아갔지만, 그로 인한 후폭풍은 컸다. 몇 달 뒤에 이번에는 진짜로 비상 상황이 발생해서 북을 쳤지만 백성들은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고, 초나라는 큰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100. 불은 보기에 사납기 때문에 불에 타서 죽는 사람은 드물다. 반면 물은 순하게 보이므로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다. <한비자 내저설 상편에서>


102. 충고는 충고고, 무례는 무례다. 이 둘을 헷갈려서 함부로 행동하거나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된다. 충고는 듣되, 잘못이 있으면 처벌해야 한다.


105. "인자한 군주는 남의 고통이 안타까워 형벌을 잘 내리지 못한다. 또한 군주가 베풀기를 좋아하면 공을 세우지 않아도 상을 주려고 한다. 죄가 있어도 벌을 안 받고, 공이 없어도 상을 받는다면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


115.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은 술뿐만이 아니다. 술에 취하면 건강을 잃지만, 사람에게 취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120. 한비자는 유도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법은 신분이 귀하다고 하여 아첨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먹줄이 굽지 않는 것과 같다."


123. "한 사람의 악인에게 무거운 죄를 줘서 나라 안의 모든 악을 그치게 하는 것이 곧 나라를 잘 다스리는 지름길이다." (중략) 특권층일수록 법을 무시함으로써 자신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일수록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고 있어 섣불리 처단했다가는 나랏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30. 법은 쉽고 분명해야 혼선이 없고 관리들이 농간을 부릴 여지도 사라진다. 반면에 법이 애매하면 다툼과 비리의 소지도 그만큼 커진다. 온 백성이 다 법을 알면 관리들이 자의적으로 다룰 수 없기 때문에 공평한 집행이 가능해진다.


134.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바탕은 법에 있고, 나라가 어지럽게 되는 바탕은 사사로움에 있다."


140. 외저설 우하편에 이런 비유가 나온다. "불을 끄는 데 소방대원에게 물동이를 들고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가게 한다면 한 사람 몫밖에 해낼 수 없다. 그러나 채찍을 들고 사람들을 지휘하여 불을 끄도록 하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뛰어난 군주는 몸소 작은 일을 하지 않는다." 직접 물동이를 들고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갈 왕이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런 왕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행동이 어리석음이 아니라 어짊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주는 어진 행동으로 알고 행하는데 실은 어리석은 짓인 경우가 많다. 미담이라 하여 주위에서 박수치니 그것이 짧은 생각인 줄은 더욱 깨닫기 어렵다.


141. 진정으로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가라면 수레에 태워줄 일이 아니라 다리를 놔줘야 한다는 것이다.


142. "자기 눈과 귀로 직접 보고 들어야만 백성의 악행을 안다면 아직 안 잡힌 범죄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관리들에게 맡긴 뒤 법을 분명히 할 생각은 않고, 단지 똑똑한 관리 한 사람의 지혜에만 의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신하들을 잘 다스리면 왕이 몸소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


145. 솔선수범만을 최대 미덕으로 아는 리더는, 조직원들이 굶주리면 빵 몇 개를 직접 사서 나눠주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지만, 그것으로 끝이라면 그의 명령을 조직원들이 얼마나 믿고 따르겠는가.


156. 한비자 난이편에는 쓸모 있는 사람을 찾는 것보다 그 사람을 부리는 일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인재는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부릴 줄 몰라 못 쓴다는 것이다. 나라에 수많은 인재가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쓸 줄 모른다면, 이는 군주의 마음이 협량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흠을 잡자면 한이 없다. 태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진 군주는 원수라도 포용하고 적이라도 등용하여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쓴다.


166. 한비자 주도편에서는 군주의 통치술에 대해 이렇게 다시 한번 강조한다. "왕은 신하들의 행실을 보고도 보지 못한 듯, 들어도 듣지 못한 듯, 알아도 알지 못한 듯 운신해야 한다." 군주는 귀가 있어도 감추고 입이 있어도 닫아야 한다는 뜻으로, 왕이 함부로 본심을 드러내면 반드시 우환이 따른다는 경고다. 한비자 이병편에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왕이 싫어하는 것을 드러내면 신하들은 작은 일이라도 감추고, 왕이 좋아하는 것을 나타내면 신하들은 능력이 없는데도 있는 체 꾸미게 된다."


175. 수면제 먹으라고 잠자는 사람을 깨우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189. 화려하게 꾸미는 말재간만 중시한다면, 이는 본질은 놔두고 지엽말절을 좇는 일이다.


192. "개나 말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눈앞에 보이는 짐승이라 똑같이 그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러나 도깨비는 형체가 없습니다. 아무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그려도 시빗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193. 노자의 도덕경은, 진신한 말은 화려하지 않고 화려한 말은 진실하지 못하다고 가르친다. 제대로 아는 자는 잡다하지 않고, 잡다하게 아는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똑바로 알지 못 하기 때문에 자꾸 꾸미려 든다. 겉포장을 화려하게 꾸밀수록 속은 비어있기 십상이라는 사실은 우리들 모두가 현실사회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202.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말도 그렇듯하게 잘 꾸민다.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져 의심할 여지가 없고, 더구나 그 말대로 하면 나한테도 이익이 돌아오니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203. 이의부나 이완용에게서, 독버섯이 더 아름다운 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독이 든 말이 더 솔깃한 법이다. 독사인 줄 뻔히 알면서 물리는 사람은 없다. 속았기에 물리는 것이다. 독사는 때로 아름다운 시를 읊으며 꽃인 양 화사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206.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군자가 여럿이라도 모자라지만, 망치는 데는 간신배 하나면 족하다는 말이 있다. 나라가 망하는 데는 여러 사람이 필요 없다. 충신이 열 명 있어도 간신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214. '입이 여럿이면 쇠도 녹인다'는 속담이 있다. 간신배들의 혀는 나라도 녹여버린다.


225. 하급의 군주는 주위에서 '그렇다, 그렇다'하면 그런 줄로만 안다. 그러나 상급의 군주는 주위에서 일제히 '그렇다, 그렇다'하면 뭔가 수상하다는 사실을 안다. 여러 사람이 앵무새처럼 한 목소리만 내면 인의 장막을 의심하는 게 상급의 군주다.


226.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모두가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도 꼭 나쁘기만 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229. 칼을 쥔 사람의 마음이 변했는데도 이를 모르고 있다면 그것처럼 위험한 일도 없다.


231. 아무에게나 굽실거리기를 잘하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내 비위를 잘 맞추는 부하는 적의 비위도 잘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239. 천하의 보옥도 보는 눈이 감겨 있으면 돌멩이로밖에 안 보인다. (중략) "군주들의 귀가 열려 있지 않으니 인재들이 어떻게 오기나 상앙과 같은 재앙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주장을 밝히겠는가?"


241. 이명은 자기만 듣고 남은 못 듣는다. 코 고는 소리는 남은 다 듣는데 자기만 못 듣는다.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이명은 병인데 남이 안 알아준다고 성화이고, 코 골기는 병이 아닌데 남이 안다고 화를 낸다."


249.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안 받는 것이다. 생선을 받는다면 그 사람에게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법을 어기게 될 것이다." (중략) 정약용은 한비자 속의 이런 예화들을 목민심서에 옮겨놓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청렴한 자는 사실 천하에서 가장 영리한 장사꾼이다. 그러므로 큰 것을 바라는 자는 반드시 청렴하다. 청렴하지 못한 자는 작은 것을 탐하는 사람으로 지혜가 모자란다고 할 수 있다."


259. 진정한 고수는 자기를 감추고 아는 듯 모르는 듯 말이 없다. 그러나 하수는 별 것도 아닌 재주를 함부로 드러내며 세상에 뽐내고, 누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화를 낸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현명하면 어리석어 보이고, 큰 기교는 유치해 보이며, 말을 잘하면 어눌한 듯하다."


264. 아는 체하는 것보다는 모르는 체하기가 더 힘들고, 싸우는 것보다는 싸우지 않는 게 더 어려우며, 행하는 것보다는 행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든 법이다. (중략) 세상이 자기를 알아보면 오히려 자신이 덜 된 인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현명한 군주는 자신을 감춘다. (중략) 그대는 몸이 수고롭고 근심이 많은가. 그렇다면 비워야 할 것을 아직 비우지 못했다는 뜻으로 알라.


266. 현명한 왕은 지혜가 있더라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여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를 알게 하고, 현명함이 있다 해도 과시하지 않고 신하들이 행동하는 것을 살펴본다. (중략) 그러므로 왕은 지혜를 버려 신하를 살피는 총명을 얻고, 현명함을 버려 신하들이 공을 세우게 하며, 용맹을 버려 나라를 강하게 한다. <한비자 주도편에서>


277. 사치는 자랑이 아니라 수치인데, 정작 본인들은 잘 깨닫지를 못한다. 부끄러움을 아름다움인 줄로 알고 뻐기는 것은 자신의 모자람을 사방에 광고하는 일이다.


278. 지갑이 텅 빈 사람이 라면을 먹으면 처량한 생각이 든다고 한다. 반면에 10만 원짜리 수표라도 갖고 있으면 같은 라면을 먹어도 맛이 있다고 말한다. 돈 많은 사람은 싸구려 옷을 걸치고 있어도 웃지만, 돈 없는 사람은 명품을 걸치고서야 웃는다는 말도 있다.


288. 마지막 날이 되기까지는 누구도 자신의 행복을 장담할 수 없다.


298. 길이 많으면 길을 잃는다. 보고 들은 게 많아도 마찬가지다. 길을 찾으려면 때로 단순해져야 한다. 다시 눈을 감고, 복잡한 생각들을 지워야 한다. 이런 때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의 지식과 기교를 내려놓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301. 한비자 대체편에 이런 글이 나온다.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은 애써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단순한 것이 이로움임을 알기 때문이다. (중략) 시력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눈이 침침해지고, 청력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귀가 어두워지며,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 지혜가 혼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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