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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비 내리는 다이빙

문섬, 새끼섬

by jim

국내에서 두 번째로 다이빙을 경험했던 장소는 제주도였습니다. 강원도 봉포의 차갑고, 어지럽고, 어두웠던 바다를 경험하고 몇 달 뒤, 하루 이틀 시간을 내서 제주도를 며칠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한창 다이빙에 푹 빠져있던 저희 부부는 다른 일정은 과감히 생략하고 이틀간의 다이빙 위주로 일정을 짰습니다.


Moon island & Baby island, Jeju


마침 숙소가 남쪽이고 해서 근처에 있는 다이빙 샵을 알아보다가 오렌지 다이브라는 곳을 찾았었는데, 별다른 기억이 남아있지 않을 것을 보니 친절하게 잘 진행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보통 여행지에서 특정 업체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면 대부분 안 좋은 기억이니까요. 제주도에 얼마나 많은 다이빙 포인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날은 이틀에 걸쳐 문섬과 새끼섬이라는 곳을 갔습니다. 보트 다이빙은 아니었고, 배를 타고 작은 섬에 들어가서 진행하는 다이빙이었는데, 그 섬 이름이 문섬이었고, 새끼섬은 그 문섬에 딸려있는 작은 섬이었습니다. 따로 이름을 붙일만한 규모가 아니라 그냥 문섬의 새끼로 불린다고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Moon island & Baby island, Jeju


화산 지형이었던 문섬은 섬 위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재미있었습니다. 섬의 특이한 지형 자체 만으로도 어딘가 별도 관광을 온 것 같았고, 중간중간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는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모여있어 자연 어항이 생기기도 했죠. 무엇보다, 첫 번째 다이빙을 마치고 두 번째 다이빙을 준비하고 있는 중간에 점심식사로 '짜장면과 탕수육'이 배달되었습니다. 오토바이가 아닌 모터보트로 말이죠. 다이빙과 짜장면이라. 그 조합이 참 말도 안 되게 좋았습니다.


Moon island & Baby island, Jeju


사실 날씨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습니다. 늦여름, 초가을 날씨라 큰 비는 아니었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으나, 흐리고 축축한 날의 다이빙은 일단 '빛'이 부족하니까요. 물속에 들어가는 것 자체도 엄청나게 설레는 일이지만, 그 속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 결국은 무언가를 '보는' 행위니까 말이죠. 다이빙 샵 사장님, 강사님께 '궂은 날씨에 다이빙에는 문제가 없느냐'라고 여쭈어 보았을 때, '어차피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라 밖에 비가 내리든 안 내리든 상관없다'는 우문현답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Moon island & Baby island, Jeju


이틀에 걸친 다이빙 중에 비가 오기도 했습니다. 비가 오면 안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우중 다이빙은 또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물속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수면을 바라보고 있으니 밝은 회색으로 깔린 은쟁반에 구슬이 굴러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물 밖에서 보던 빗방물과 물속에서 보는 빗방울이 이렇게 달라 보일지는 몰랐습니다. 물론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바로바로 몸을 말릴 수 없는 것은 좀 불편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당시의 '물속의 비'는 꽤 낭만적인 경치였습니다.


Moon island & Baby island, Jeju


조금 축축하고, 조금 흐리고 어둡기는 했지만, 늦여름 초가을 제주의 바다는 따뜻했고, 볼거리도 많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에는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면 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깨를 누르고 있는 책임감 때문인지, 아니면 저도 모르게 게을러지고 순응적으로 변한 탓인지 도무지 시간을 내기가 어렵네요. 제주도의 다른 포인트들도 많겠지만 문섬과 새끼 섬도 한번 더 가보고 싶습니다.


Moon island & Baby island, Jeju


아내는 이때의 다이빙에서 또 다른 기억을 하나 가지고 있더군요. 보통 저때만 해도 제가 먼저 물 위에 올라가서 장비를 받아주고는 했는데, 저때 제가 먼저 올라가다가 저도 모르게 핀으로 뒤에 따라오던 아내의 마스크를 쳤다고 합니다. 뭍에 거의 다 올라오기는 했지만 갑자기 눈을 뜰 수 없게 되어 순간 패닉이 올 뻔했다더군요. 저는 전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본인이 기본기가 잘 되어 있어서'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고 너스레를 떨던 기억이 납니다. 이다음부터는 출수할 때마다 가급적 제가 아내의 뒤를 따라다니곤 합니다.


Moon island & Baby island, Jeju


여러분들의 제주도 바닷속은 어떤 기억이신가요? 어디 추천해주실 만한 포인트도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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