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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Jul 31. 2021

사랑한다면 스페인

Romantic Journey in Spain

 글을 업으로 하는 아내와, 사진작가 남편이 엮은 스페인 여행 책입니다. '사랑한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도시를 각 한 권씩 담아내고 있는데, 첫 작품으로 '스페인'을 꺼내 들었습니다. 지난주에 포르투갈 여행책을 읽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순례자의 길로 유명 해져서였을까요. 스페인에 대한 추억은 근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학생 시절 교환학생 행사로 스페인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스페인 여행하면 떠올리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가 아닌 지중해 연안의 산 하비에르라는 작은 마을이었죠. 물론 인근의 무르시아, 카르타헤나 등의 다른 도시들도 견학을 했었지만, 아직도 그들이 동양에서 온 저를 신기해했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이 책은 스페인의 유명 도시에 대해서 담고 있습니다. 유명 도시의 '여행'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도시' 자체를 담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프로의 글쓰기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곳에서 겪은 개인적인 감정, 경험 등은 철저히 최소화하고, 그 도시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콘텐츠' 위주로 엮여있습니다. 전자가 여행 유튜버 느낌이라면, 후자에 해당하는 이 책은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느낌일까요. 전자가 아마추어의 사적인 글 같다면, 이 책은 프로의 공적인 글 같습니다. 부부가 같이 떠난 여행이었을 텐데, 글이 전개되는 내내 '나(작가)'도 보이지 않고 '남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없어서 글이 좀 딱딱해 보일 수는 있으나, 그만큼 내용이 알차서 더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 관련 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책들보다 '소비적' 독서가 아니어서 좋았습니다. 보고 배울 것이 많았거든요. 서양의 역사와 문화와 관련된 책들은 시대에 따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쪽을 상대적으로 많이 다루고 있는데, 이렇게 스페인 도시들을 따라가면서 짚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비단 왕가와 지도자만 따라다니면서 보는 역사, 정치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연고를 두었던 예술가들도 같이 볼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여행지에 들고 가서 보아도 참 좋을 것 같은 책입니다. 


  아무래도 문화를 많이 다루고 있다 보니 미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미술작품은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였을까요. 사진작가인 남편의 사진을 최대한 많이 싣고자 했던 것이었을까요. 유명화가의 작품을 책에 쓰려면 저작권이나 비용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었을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각 도시별로 소개되고 있는 화가들의 작품은 책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따로 계속 검색을 해가면서 봐야 하는 것이 꽤 불편하더군요. 그 작품을 보지 않고 글로만 보는 것도 사실 책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이었고요. 나중에 이런 글을 쓰게 된다면 꼭 이야기하고 싶은 대상을 좀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갔었던 스페인은 엄청나게 뜨거운 햇살, 지중해, 와이너리, 이슬람, 가톨릭, 로마 등의 키워드로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한 스페인은 순례자의 길, 축구, 가우디 등으로 연상됩니다. 세계여행을 다룬 책들이 수박의 겉을 핥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한 나라, 한 도시에 대한 책들은 좀 더 그곳을 '열어서' 살펴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떠올리게 된 스페인, 잊지 말고 한번 꼭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17. 한 지붕 아래 이성애와 동성애가 뒤섞이는 기묘한 동거... 현실이 아니라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이야기다. 국내에선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제목으로 상영됐지만 원제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다. 뭔가 야릇한 '제목 장사'로 한몫 보려 했겠지만 내숭쟁이 비키와 천방지축 크리스티나가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겪는 이야기는 그리 야한 영화가 아니다.


22.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공식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없지만, 어찌 됐건 바르셀로나 아이들은 스페인 국적을 가졌음에도 스페인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이상한 상황이다. 그러니 여행자 입장에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여행은 두 나라를 방문하는 셈이다.


34. 그런 카사 밀라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옥상이다. (중략) 영화 <스타워즈>의 악역 '다스 베이더'는 이 굴뚝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된 캐릭터다.


41. 기부금이 모자라면 공사도 종종 중단됐지만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라고 말하던 가우디는 그 시간에 설계도를 검토하고 또 검토하며 느리지만 정성스럽게 건물을 쌓아 올렸다.


45. 람블라스 거리 초입, 묵직한 우승컵 모양의 청동 수도에선 내막을 아는 여행자들이 누구나 목을 축이고 간다. 이 물을 받아 마시면 바르셀로나에 다시 온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거리 한복판엔 가우디 버금가는 색채 마술의 화가 호안 미로의 작품도 누워 있다. (중략) 그런가 하면 거리의 절반은 노천 꽃시장으로 향기가 폴폴 나는 길이다.


47.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을 이어 저녁이면 더더욱 생동감 넘치는 람블라스에서 내게 옥에 티였던 건 가격표가 없던 생맥주였다. (중략) 여행하다 보면 바가지를 쓸 수도 있고, 개중에는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바가지도 있지만 이렇게 기분 나쁜 바가지는 난생처음이다.


60. 그러나 때론 부지런함이 민폐가 되는 경우가 있다. 펠리페 2세가 그랬다. (중략) 굵직굵직한 국정 현안이야 왕이 처리하는 게 당연하지만 자질구레한 민원까지 날밤 세워가며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통에 눈이 벌겋게 충혈되기 일쑤였다. 


66.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가 쓴 희곡 <스페인 왕자, 돈 카를로스>를 풀어낸 것이 바로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다.


83. 뼈아픈 과거를 묻어둔 마요르 광장 뒤편은 먹자골목으로 유명하다. 싱싱한 과일과 해산물, 스페인의 국민반찬인 하몽, 타파스 등 가벼운 안줏거리가 가득한 산 미구엘 시장은 마드리드 시민들이 퇴근 후 가볍게 한잔하는 곳으로 인기 만점인 곳이다.


89.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이 흡족했던 펠리페 4세는 그를 궁정화가로 임명한 후 평생 벨라스케스 외에는 자신의 얼굴을 그리지 못하게 했다.


93. "나는 높은 수준에서 2등이 되기보다는 평범한 수준에서 1등 화가가 되겠다." 평소 벨라스케스가 한 말로, 용의 꼬리가 아니라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뜻이다.


98. 고야는 평생 2,000점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행여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면 고야는 아마도 귀족에게 아첨하며 살던 화가로만 남았을 터다. 청력을 잃은 고야는 보는 눈이 달라진다. 달콤한 소리가 사라진 그의 세상은 온통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화사하고 말랑말랑했던 화풍을 거두고, 우리의 고야는 부조리한 세태를 고발하는 풍자화가로 돌아선다.


112. 스페인에는 '명령에는 복종하되, 실행하진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고집도 세거니와 출신지에 대한 자부심과 집착이 강한 스페인 사람들의 성향에서 생겨난 말이다.


114. 맥주를 마시며 마드리드를 둘러보는 자전거였다.


122. 1975년 프랑코 사망 후 왕위에 오른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며 입헌군주제로 헌법을 개정해 스페인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인물이다.


149. 반면 시간이 허락된다면 '리틀 베르사유'가 오히려 맛볼 만하다. (중략) 하지만 이곳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정원이다.


157. 앞서 언급했듯 톨레도는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스페인의 중심지였다.


182. '파라도르'는 고성이나 수도원을 개조한 스페인 국영 호텔이다.


186. 그런 <돈키호테>는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196. 세르반테스는 수많은 명언을 남긴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도 그가 남긴 말이다. 사는 내내 가난에 허덕였던 그는 '빵만 있다면 대개의 슬픔은 견딜 수 있다' '내 주머니의 푼돈이 남의 주머니에 있는 거금보다 낫다'면서도 '재산보다는 희망을 욕심내자'라고 했다.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는 사랑의 힘은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은 이상한 안경을 쓰고 있다. 구리를 황금으로, 가난함을 풍족함으로 보이게 하는 안경을 끼고 있다. 그 안경은 눈에 난 다래끼도 진주알처럼 보이게 한다.'


198.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인간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했다. '햄릿형'과 '돈키호테형'. (중략) "햄릿형은 뛰어난 지각력과 깊은 통찰력을 지녔으나 실천력 결여로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하나도 없다. 반면 이상을 향해 용감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형이야 말로 세상을 변화시킨 원동력이었다."


277. 그 때문인지 알람브라는 출입이 좀 까다롭다. 하루 입장객이 제한된 데다 30분에 한 번씩 일정 인원만 입장시킨다.


280. 한때 피로 물든 궁전이었지만 멕시코 시인 프란시스코 데 이카사는  "그라나다에서 장님이 되는 것만큼 더 큰 형벌은 없다"며 알람브라의 아름다움을 치켜세웠다.


286. 사랑이란 게 혼자면 고통이고 둘이면 행복이지만 셋이면 싸움이 된다.


300. 대성당 건너편 누에바 광장이 구시가의 중심이다. 레스토랑과 카페가 몰려 있는 이곳에선 맥주 한 잔만 시켜도 스페인의 '국민 안주'인 타파스를 공짜로 맛볼 수 있다.


322. 그렇게 따지자면 스페인 여행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를 따라야 한다. 하나는 씨에스타요, 다른 하나는 식사 시간이다.


324. 아무리 바빠도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를 하지 않는 게 철칙인 스페인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20~30분 만에 후다닥 점심을 먹고 황급히 커피 한 잔 마시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직장인들, 제때 밥도 못 챙겨 먹는 우리의 상인들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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