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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Jul 24. 2021

한 번쯤 포르투갈

언젠가 들려봐야겠다고 생각만 했던 그 곳

 요 몇 주간 '세계여행'이라는 키워드의 단행본을 제법 찾아보았습니다. 각기 다른 수많은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참 신기한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열명이면 열명, 백 명이면 백 명 참 여행이 다 다를 줄 알았는데, '세계여행'이라는 타이틀을 달면, 은근하게 참 가는 곳이 똑같고, 거기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의 폭이 그리 큰 차이가 있지 않다는 것이었죠. 아마 한 군데를 진득하게 공부하면서 알아가는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곳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 공부하기보다는,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검색이나 다른 여행객들이 경험에 의존하고, 금방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고, 그랬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여러 권의 세계여행 책들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결혼식장 뷔페'였습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다 거기서 거기고, 딱히 기억나는 것은 없는 음식' 같달까요.



 그래서 요 몇 주 동안은 여행 관련 독서 리스트에 '일품요리' 같은 책들을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여기저기 짧은 시간 동안 분주하게 다니는 여행 말고, 좀 진득한 여행 말이죠. 한 때 유행했던 '한 달 살기' 이런 모순적인 단어는 피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한 달'을 '살기'랑 엮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삶이 얼마나 급박하고 초조하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마음으로 처음에 집어 든 책은 '포르투갈'이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이 책이었습니다. 따로 이 책에 대한 정보가 있어서 집어 든 책은 아니었습니다. 학생 시절, 국제 교류 프로그램 목적으로 스페인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세계 십여 개국이 학생들이 모인 행사에서 저만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태평양 연안 국가에서 왔었죠. 모두 지중해, 대서양 연안의 유럽 및 북아프리카 국가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온, 영어도 잘 되지 않는 저를 무척이나 잘 챙겨주었던 학생들이 세명의 포르투갈 학생들이었습니다. 뭔가 다른 유럽인들과 다르게 우리나라 정서와 비슷한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잘 어울려 다녔습니다. 유럽의 언어가 다 같은 뿌리에서 출발해서 그랬을까요. 저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 스페인어로 앞에서 누군가가 설명을 하면, 포르투갈, 이태리, 프랑스 등등 다들 알아듣고 있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때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 포르투갈 친구들이 다시 영어로 설명을 해줬었죠.


 그 기억 때문에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어릴 적 했던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에 주요 항구도시로 나온 '리스본' 말고는 아는 게 없는 나라. 막연하게 친근한 기억만 가지고 있는 나라. 그리고 무책임하게 나중에 내가 포르투갈에 꼭 가겠다고 약속했던 나라. 정작 그 이후 일로, 여행으로 유럽을 몇 번이나 다녀왔음에도 결국 가지 않았던 나라. 제게 포르투갈은 그런 나라였습니다.


 이 책은 도서/출판계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여성분이 혼자 다녀오신 포르투갈 여러 도시에 대한 여행을 담고 있습니다. 혼자 다녀온 여행기가 많이 그렇듯 여행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내면과의 대화, 본인의 감정과 관련된 에세이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책과 관련된 경험이 있으셔서 그런지 텍스트의 정렬, 사진의 선택과 배치 등이 조화로워서 잘 읽혔습니다. 내용도 여행 에세이 서적 치고는 적당한 정보와, 문화적 상식이 곁들여져 있어서 적당하게 지적 호기심도 건드릴 수 있었습니다. 글을 잘 쓰신다는 느낌과 적당히 잘 계산된 책이라는 기분이 동시에 드네요.


 너무 예쁘게, 요즘 말로 갬성(?)적으로 잘 정돈된 책을 보면 가끔 책을 보는 것인지, 인스타그램을 보는 것인지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은 다행히도 후자가 아닌 전자에 가까운 책이었습니다.


 책도 얇아서 들도 다니기에 좋습니다. 다만, 사진이 제법 많다 보니 그만큼 텍스트가 별로 없어서, 정작 너무 빨리 읽게 된다는 단점도 있죠. 사진 때문이었을까요. 올 컬러의 얄팍한 두께의 책이 만 오천 원이라니, 요즘 모든 게 다 오르는 인플레이션의 시대라는 것을 몸소 체감합니다.


 오랜만에 한 나라만 진득이 다닌 여행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주말 아침부터 차분하니 좋은 기분이 듭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드네요. 진짜 포르투갈 어느 작은 소도시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려면, 거기에 잠시 다녀온 이방인(한국인)의 글을 읽는 것보다, 그곳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적은 그곳의 글을 찾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책이라는 것이 참 신기한 게, 안 볼 때는 참 볼 게 없다가, 보기 시작하면 보고 싶은 책들이 끝이 없습니다.




5. 그러다 끝내 떠나지 못했던 걸 후회하느니 일단 떠나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17. 아마도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수월했을 텐데, 혼자 하는 여행은 이럴 때 좀 아쉽다. 사색하는 시간과 마냥 넋 놓고 기다리는 건 마음의 자세부터가 다르니 말이다.


31. 리스본의 뒷골목에서 불리던 포르투갈의 노래 파두를 전 세계에 알린 건 '파두의 여왕' 아말리에 호드리게스다. 사람들은 그녀가 파두고, 파두가 그녀라고 말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1999년 그녀의 죽음을 국장으로 사흘간이나 애도할 만큼 국민 가수 이상의 문화적 자존심을 표상하지 않았나 싶다. 아말리에의 <검은 돛배>, <어두운 숙명>을 듣고 있노라면 '아~ 이것이 진정한 파두구나!' 느껴진다.


33. 언제부터였을까? 어지간한 일에는 그렇게 감동하거나 놀라움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매사에 시큰둥해지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서는 나도 모르게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처음 보는 풍경이나 조형물에 놀라움을 표현하고, 감탄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다. 리스본에서의 첫날, 나도 어린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사를 연발했던 때가 있었는데, 바로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전망대에 올랐을 때이다.


50.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지루한 삶을 살던 중 우연히 자살 시도를 하던 여인을 구한다. 그리고 홀연히 사라진 여자의 옷 속에서 발견된 한 권의 책과 리스본행 기차표. (중략) 자신의 삶에 꼭 필요한 조언을 가득 담은 책을 발견하자 그는 이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를 만나기 위해 리스본의 곳곳을 찾아 나선다.


56. 급할 것 없이 편하게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 불현듯 그들이 마시는 건 맥주가 아니라 여유가 아닐까 싶었다. 나 혼자만 마음속 시계가 부지런히 뛰어가고 있었나 보다.


94. 신트라에 왔다면 꼭 먹어 봐야 할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체리주를 초콜릿 잔에 넣어 마시는 포르투갈 전통주 진자 Ginja이다. 투어에 나섰던 우리 모두는 직접 체리주를 담가 파는 곳으로 가이드가 소개를 해 주어서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낮술을 즐겼다. 생각보다 꽤 독한 듯했지만, 초콜릿과 함께 즐기는 술이라니 어디서도 해보지 못한 즐거운 경험이었다.


99. 그분은 창업하기 전 자신을 이끌어 준 인생의 스승으로 전에 다니던 회사 사장님들을 꼽았다. 그 글을 읽고, 나는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 멘토가 되어줄 만한 사람이 머물렀던 곳에는 마땅히 없었다고 여긴 탓이다. 그러나 어쩌면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가의 조언을 조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어린 내가 지금은 어른이 되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148. 살다 보면 비 내리는 날 우산이, 바람이 불면 바람막이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거세게 내리는 비도 맞고, 세찬 바람에도 우뚝 버틸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 필요한 것 같다.


151. 타일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12년이나 걸렸다고 하니 그 완성도를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상 벤투 역은 기차를 타려는 사람보다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만큼 멋진 곳이었다. 기차역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필요가 있나 싶을 만큼.


156.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고 말한 생텍쥐페리처럼 가벼운 짐 싸기는 내 여행 철칙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한 달을 가든, 일주일을 가든 모든 여행은 21인치 캐리어로 움직인다.


161. 영국의 <가디언>지가 세계 10대 서점으로 선정할 만큼 찬사가 끊이지 않는 렐루 서점 앞에 섰다. (중략) 작가 조앤 롤랭이 <해리포터> 속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계단을 이곳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더니 과연 서점 내부는 상상 이상의 모습이었다.


165. 렐루 서점은 <해리포터>로 인한 유명세로 인해 2015년 7월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책을 사면 책 가격에서 입장료를 빼준다고 하니 필요한 책을 골라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172. <레 미제라블>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말해 와인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단적으로 표현하였다.


184.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여러 형태의 많은 여행객들을 만나게 된다. 친구와 싸워서 원수가 되는 일도 많고, 여행지에서 만난 동행과 평생 친구로 남는 경우도 많다. 좋은 동행이 복불복일 수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면 나도 상대에게 좋은 동행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싫은 건 상대방도 싫어한다.


191. 예전의 회사 동료가 친구와 여행을 갈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했던 적이 있다. 저도 처음, 나도 처음인데 길을 잃고 찾지 못하면 자신이 가이드도 아닌데 짜증을 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번번이 여행을 함께 가자고 해서 거절하기 힘들다고. 그때 나는 별 사람이 다 있구나 했었다. (중략) 그러나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 작가 앤드류 매튜스처럼 이 과정 자체를 즐기는 연습이 내게도 필요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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