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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현 Jan 29. 2024

새것으로 갈고 싶은 욕구

새것 같은 새것 아닌 폰.

조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돌아섰는데, 바지 주머니가 가벼워져 있었다. 아뿔싸, 핸드폰… 왼쪽 주머니에 놓어 둔 핸드폰이 어딘가 사라지고 없었다. ‘차에 가면 있겠지.’ 마음 구석에 불안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핸드폰이 나를 두고 어디 갈 리 없다며, 분명 차에 있을 거라 믿고 꿋꿋이 발길을 재촉했다. 괜찮다 하면서도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분주해지고 있었다.

차 문을 열고 차 앞자리, 차 문, 가방, 시트 밑까지 뒤졌는 데도 없었다. 등에서 한 줄기 쎄한 기운이 지나갔다. 꼬맹이와 물웅덩이를 함께 뛰어 건너다 떨어진 것인지, 타고 온 차에 떨어뜨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왔던 길을 돌아갔다. 내가 좀 전에 지나간 필로티에서는 초등학교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었고, 그곳을 통과하기 뭣해 눈으로 내가 지나간 것을 훑었다. 보이지 않았다. 유치원 건물까지 가는 백 미터 동안 핸드폰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치원 선생님께 조카 가방에 혹시 폰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 달라고 했지만, 혹시는 역시였디. 없었다. 아직 일년도 안 된 내 아이폰!!!! 느긋한 나라지만 그 비싼 핸드폰 앞에서는 초조해졌다. 어떻하지, 어떻하지 하며 두리번 거리며 다시 차로 걸어갔다. 멀리서 함께 온 동생이 손에 검은 것을 들고 흔들고 있었다. 저것은 내 폰?

다리에 힘이 솟아나 순식간에 그곳까지 달려갔다. 내 폰, 내 폰이 맞았다! 너무 기뻤다. 하지만 슬펐다. 핸드폰은 앞뒤로 표면이 산산조각나 있었다. 유리는 바스러져 건드리기만 해도 유리 가루가 내 손가락에 묻어났고, 검은 빛을 반사하던 매끈한 유리면은 하얀 빛을 띠며 능선을 이루고 있었다. ‘차가 밟고 지나갈 때 밑에 돌이 있었나봐.’ 동생의 진단은 그러했다. 데이터는 살아있기는 한 건지, 살릴 수는 있는 건지… 슬프다. 십년은 쓰려고 했는데…


이 폰을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며 보험사에 전화했더니, 수리 불가 판정이 나면 새 폰으로 바꿔준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속에서 뭔가 눈을 반짝 떴다. ‘새폰이라고?’ 안 그래도 미숙한 손 탓에 자주 떨어뜨려 금도 살짝 가 있었는데, 새 폰을 준댄다!! 자부담금이 있었지만, 그건 이미 안중에 없었다. 괜히 신났다. ‘새 거라니! 좋다!’ 좋았다.

수리점에서 손상 복구 불가 판정만 받으면 난 새 폰을 기지게 된다!


새 폰 받을 생각에 신나는 마음으로 수리점에 갔다. 내 촌을 보더니 판정을 해 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내 폰을 손상 복구로 진단내릴 수 있도록, 차가 밟고 지나간 거 같다며 친절히 설명도 더해줬다. 십 분 뒤면 내 폰은 사망 선고를 받을 것이고, 나는 새 폰과 새로운 십 년을 시작할 것이다!! 정말 두근거리는 십 분이었다. 문이 열리고 담당자가 내 폰을 손에 달고 나타났다. 자리에 앉아 이제 너에게 새 폰을 주겠다고 말할 차례다.


"수리 가능하고, 전체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복구가 된다고요?"

"네, 이 정도는 수리 가능합니다."


아... 나도 모르게 실망감이 들었다. 이성은 고쳐서 오래 쓰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나의 오래된 습관은 새것이 무조건 좋다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물론 거기에는 새것이 되면 새로 세팅하는 즐거움, 뭔가 힘들이지 않고 쓸모없는 것들을 다 정리할 수 있다는 느낌, 일단 새거라 깨끗하고 반짝일 것이라는 등등의 생각도 인정하기 싫지만 있었다. 폰에 난 눈에 띄지도 않던 기스가 새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몹시 거슬리기 시작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아야 했는데, 그래야 새것을 가질 수 있는데.. 동시에 이렇게 극심하게 파손된 것도 고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핸드폰 사가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제품을 오래 쓸 수 있도록 하겠다더니 진짜였다.


수리 담당자가 십오분 정도 기다려 달라고 했다. 또 놀랐다. 저렇게 망가졌는데, 저걸 15분 만에 고친다고? 방법이 있으니 그랬겠지. 나는 오랜 만에 손이 텅빈 채로 수리가 끝나길 기다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있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끝나기를 기다리며 이 층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들 손에 폰을 들고 화면에 눈을 꽂은 채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다니겠지?' 행여 차라도 지나다니는 길이면 위험할 텐데 골목이라 다행이다. 부딪쳐 봐야 사람일 테니... 부딪치면 폰이 떨어지겠지? 깨져버리겠지? 여기 오겠지? 보험 들어두길 잘했다...


온갖 생각을 하며  앉아있는데, 담당자가 불렀다. 손에는 얇고 긴 골판지 상자가 들려 있었다. 시간이 아직 안 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담당자는 폰을 주겠다며 손에 들고 온 상자를 열었다. 새것으로 보이는 폰이었다.


  "벌써 수리가 끝난 거예요?"

  "메인 판을 복구할 수 없어서, 다른 폰으로 교체해 드립니다. 제품 중에 일부 재사용된 부품이 사용되었을 수 있습니다."


아하! 수리가 아니라 교체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리퍼폰인가 보다.


  "그럼 새로 세팅해서 쓰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우와! 리퍼폰... 부품 재사용이 대수냐? 진짜 새것인 것은 아니지만, 새것처럼 된 제공된 폰에 기뻤다. 내 망가진 폰의 부품 중 고장난 것을 새것으로 고쳐주는, 생각하는 수리는 아니었지만, 계속 쓸 수 있는 부품들을 조합해 만든 이 폰은 내 마음과 머리를 모두 충족해주는 선택이었다. 머리와 마음, 모두 행복해졌다.


  "수리비는 110만원입니다."


수리 담당자가 이제 내게 요금을 던진다. 보험 들어두길 진짜 잘했다. 어떻게든 고이 아껴써야겠다 생각했다. 나의 덜렁거림에 대한 경각심을 위해 할부로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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