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현 Jul 14. 2022

잊고 또 사느라 쌓인 것들

오늘 아침 샤워를 하는데 어깨에 매끈한 것이 손에 닿았다.

'뭐지?'하고 문질 문질 떼어냈더니 반창고다. 코로나3차 접종 후 간호사가 '오늘 밤에 떼세요'라며 붙여준 반창고였다. 그러니까 주사 맞은 날은 22일이었으니 접종 후 꼬박 만 3일을 이 사실을 잊고 있었다. 쓰고 검토해야 할 글들에 치여 그렇게 날이 지나간 지도 몰랐다. 아침에 샤워를 한 것도 머리밑이 아프고 뭔가 오래 씻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였으니까...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니...

   머리카락이 뽑힐 듯한 두피의 아픔도 지나갔고 때도 벗겨내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책상에 다시 글을 보기 위해 앉았다. 글쓰기란 자고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 단계가 있어서 무언가 딴짓을 기어코 하나라도 한 뒤에야, 그러고도 마감이 다가와 나를 점점 히스테릭하게 만든 후에야 ‘그래, 주인은 살리고 보자’라는 듯 뇌가 툭 문장의 물꼬를 터 준다.


그랬다. 나는 그런 나를 위해 글쓰기 버닝 포인트로 접어들기 위해 이번에는 조카들 사진을 열렬히 감상했디. 그러다 세상에서 가장 심심하다는 표정으로 분홍색 치마를 입고 심드렁하게 읹아 있는 조카의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두뇌활동을 도와줄 씹을 거리, 콘프로스트!! 조카의 분홍색 옷은 내 뇌의 저 깊숙한 곳을 뒤져 사놓고도 방치해 두었던 콘프로스트의 기억을 살려낸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득템이 아닌가!!! 청소하다 찾아낸 동전 같고, 책 사이에서 발견한 빳빳해진 만원짜리 지폐 같은 그런 행운!!


   그런데 말이다, 나에게는 이런 행운이 너어무 많다는 게 문제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잊지 않았을 때 발생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라면 모를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플러스적인 기회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사놓은 씨리얼을 오랫동안 잊어버려 먹지도 못해보고 돈을 날리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 산 옷을 한번 입지도 못하고 잊어버린 사이 살이 쪄 버려 옷이 들어가지 않아 버리는 일, 요리에 대한 열망으로 산 요리 기구가 요리 자체를 잊어버려 쓰이지 못하고 있다 어느 순간 짐이 되어 버려지는 일 등은 비일비재하다. 아까운 일이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풍요로울 예정이라면 ‘요 정신없는 놈!’하고 지나치겠지만, 지구의 자원이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사두고서는 존재를 잊어버려 발생하는 수많은 것은 지구에도 부담을 준다는 생각이 든다. 내 주머니도 쓸 데 없이 낭비된 것은 마찬가지다. 기후변화가 앞으로 더 심각해진 결과,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이 부족해 지금처럼 잊고 또 사고, 또 사는 일이 힘들어지는 시기가 오면 , 우리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상상해 본다.  그때는 이 일 자체가 자기 책망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그 느낌 싫다. 그렇게 되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내가 사놓은 게 뭔지 냉장고에 메모라도 해 붙여 둬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1/4의 목욕가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