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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현 May 04. 2023

세상의 맛을 지키고 싶어!

맛에 숨어든 지구와의 연결고리

세상은 맛으로 가득 차 있다. 생물 교과서에서 본 혓바닥 맛 지도에 있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이 네 가지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맛이 매일 매일 나를 자극한다.



Source : Shutterstock


   예를 들자면 귤도 달다, 시다, 뭐 이런 시시한 표현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손에 귤을 들고 향기를 맡는 순간부터 나는 맛의 향연에 빠져든다. 매끈한 껍질에서 나는 귤 향이 껍질을 까는 순간에는 팡 터져 나온다. 진한 귤 향이 내 코안을 가득 메우고 귤이 뱉어내는 상큼한  향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그 향을 듬뿍 즐긴 후에야 한 알을 떼어내 입 안에 넣는다. 어금니가 귤의 얇포리한 껍질을 찢고 그 안의 알알이 과육이 즙을 내며 흘러나오면 귤은 다시 한번 더 내게 감동을 준다. 풍부한 과즙의 달콤하고 새콤한 데다 꽃 같기도 하고. 땅의 냄새가 묻어나는 듯 침샘을 자극하는 향을 느끼는 사이 내 입은 나도 모르게 ‘맛있다’고 내뱉고 있다. 목구멍으로 귤을 넘기는 순간 나의 내장들은 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입 안에 남은 잔향은 여전히 나를 즐겁게 해 준다. 여기에 나는 이 귤이 땅, 태양, 비와 온갖 생물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즐거움을 넘어 감동이 되었다. 지금 귤을 말했지만 내가 먹는 모든 것에 대해 나는 경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쌀 한 톨조차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연이 일 년 동안 길러낸 것이 아닌가? 농부의 노력은 좀 더 잘 키우고자 하는 노력이지 사실은 자연이 일한 것이라 믿는다.  


   어찌 되었거나 나는 모든 음식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고유의 맛을 담고 있다 보니 나는 가능한 다양한 음식들을 먹어보고 싶다. 한때는 맥주에 꽂혀 세상의 모든 맥주를 다 먹어보고자 결심한 적도 있었다. 커피의 다양한 맛에 반해 온갖 맛의 커피를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세상의 맛들이 궁금했다. 그래서 정말 많이,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은데, 세상이 기후변화로 미쳐 돌아가고 있어 내 소원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빵을 굽는 지인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재작년 한 해 동안만 밀가루 값이 40%나 올랐다고 했다. 원재룟값이 너무 올라서 빵값을 올려야 하는데, 가격이 오르면 비싸다며 빵 사 먹는 사람이 줄어드니 갈등이라고 했다. 지인의 사정을 들을 때만 해도 빵을 그렇게 많이 사 먹지 않던 떼라 감이 오지 않았는데, 올해 편의점에서 그 말을 확 체감했다. 월급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돈도 절약할 겸 편의점에 빵을 사러 갔었다. 내가 아는 마지막 빵 가격은 비싸 봐야 1,200원일 거로 생각했는데, 잡는 것마다 1,800원은 넘어가 깜짝 놀랐다. 제과점도 그렇게는 이 정도는 아니겠다고 생각했는데, 제과점도 가격이 오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너무 빵을 오래 안 먹었던 탓일까? 50% 넘게 오른 빵 가격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래서는 빵 하나도 편히 못 먹겠구나… 기후변화의 가장 두려운 이유가 식량이 될 것이라는 한 학자의 말이 머릿속을 확 치고 갔다.

    지금 우리는 ‘빵값이 올랐어!’라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지만 사 먹을 수는 있다. 식량난에 관한 뉴스가 종종 나오지만, 대개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못 사는 나라의 일이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바로 내 옆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기후위기로 빵값이 이렇게나 많이 올랐다고 생각하니, 만약 다른 나라의 현실이 우리의 미래가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되었다. 국사 시간에 배웠던 보릿고개, 먼 옛날의 일이라 생각했던 굶주림이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등이 쭈뼛해졌다.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싶은 내 로망은 물 건너가는 건가? 아니, 이건 배부른 고민이지. 맛의 다채로움은 사라지고 황량해질 땅에 자랄 수 있는 음식들만을 먹고 살 게 되는 상황. 이조차도 쉽지 않아지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지 않은 현실이고, 나는 이 다채로운 맛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채식을 늘리든, 쓰레기를 줍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내가 배운 것들을 되도록 많이 실천해야겠다. 뭐라고 해야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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