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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초이 Nov 18. 2020

이도 저도 아닌 스터딩맘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무한히 선택을 해야만 하는 배에 탑승한다. 모유 vs 분유, 시판이유식 vs 엄마표이유식, 일반유치원 vs 영어유치원 등등. 이 중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외친 햄릿만큼 고뇌하게 하는 선택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전업맘 vs 워킹맘이다. 이 두 단어만 검색해봐도 어마어마한 양의 고민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 하는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 하나 있으니 바로 스터딩맘.


스터딩맘(studying mom)의 뜻은 심플하다.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엄마를 뜻한다. 엄마학생,부모학생, 맘-스튜턴트 등으로도 불리지만 어떤 단어든 익숙지 않다. 스터딩맘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크지 않다. 애 키우면서 공부한다고 하면, "어머 멋지다" 딱 거기까지다. 돈 벌기 위해 생고생하는 워킹맘처럼 힘들진 않을 것 같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하니까 재밌을 것 같고. 제도적인 관심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재학증명서를 내면 법적으로 맞벌이 인정이 돼서 종일반으로 아이를 맡길 수가 있는데, 문제는 수료한 뒤다. 연구생 증명서는 법적으로 맞벌이 인정이 안 돼서 구청마다 받아주는 곳이 달라 불편을 겪곤 한다.


스터딩맘은 보통 어떠한 일상을 보낼까? 일반적으로 엄마가 되는 나이를 고려해보면, 학부생이 아닌 대학원생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렇다면 대학원생이 누군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은 대학원생을 시키는 거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우스개 소리지만 우습지만은 않다. 나도 교수님이 시키시면 왠지 머리 싸매고 고민할 것 같기에. 죽은 코끼리의 뼈만 모아서 냉장고에 넣는다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준비해 가겠지.  


일단 풀타임 대학원생만 해도 수많은 역할 갈등에 시달린다.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학생, 특정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는 연구자,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보조 연구원, 기타 학과 잡일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 이들의 삶은 마치 하루살이 같다. 그날 닥친 거 처리하면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또 닥친 순으로 일을 하면 하루가 지난다. 정신없이 몇 달이 지나 잠시 뒤돌아 보니 어찌어찌 얼개는 맞게 굴러와 있는듯 하다. 


수업만 듣는 파트타임 대학원생의 인생은 쉬우랴. 나는 석사과정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적잖이 놀랬다. '아니, 교수님들이 왜 수업을 안 하시고 날로 드시지?' 대학원 수업은 학생들이 발표를 준비하고 토의를 하고 매주 과제를 제출하고 평가를 받는다. 교수님의 역할이 학부과정보다 훠얼씬 적다. 즉, 학생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 수업 하나하나에 몸을 던져 채우는 것만으로 벅차다.  


그런데 여기에 엄마역할까지 한다면? 육아와 공부는 질이 다른 노동이다. 육아는 육체노동, 공부는 정신노동으로 이 중 하나가 우월하게 힘들다 볼 순 없다(아이가 자랄 수록 정신노동의 비중이 높아진다). 그렇지만 이 둘을 같이 하는데엔 곱절의 에너지가 소요된다. 스위치 on/off를 딸깍 딸깍하며 노동의 양극끼리 순간 이동해야 한다. 다행인건 나는 그나마 공간적인 제약이 덜 한 분야에 있다는 점이다. 실험실에 몸이 붙어있어야 하거나 지방으로 현장답사가 잦은 엄마들은 자신의 부재로 인한 안타까움이 훨씬 짙다.  

 

너의 덕분에 



좁은 의미에서 스터딩맘은 학생인 신분인 엄마가 되겠지만, 넓은 의미에서 스터딩맘은 아이를 키우며 공부를 하는 모든 엄마를 칭한다.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공부하는 엄마들을 떠올려본다. 진학을 위해,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따기 위해 아이를 보육기관이나 학교에 맡기고 짬을 내어 책을 펼친다. 이들에겐 시간이 아주 제한적이다. 집과 도서관 혹은 학원간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활자를 머릿 속에 집어 넣어햐 한다. 밤 11시가 되도 자지 않으려는 아이와 씨름하다 겨우 재운 뒤,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또 다시 책상 앞에 앉아야만 한다. 이 정도가 내 삶을 쥐어짜서 만든 최선인데도,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미혼의 공부량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 앞엔 허탈감도 든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을 담보로 전문 분야를 키우고자 악착같이 노력한다.  


스터딩맘은 전업맘이라 하기엔 바깥일에 얽매여있고, 워킹맘이라 하기엔 덜 얽매여 있다. 바빠서 아이도 잘 못 챙겨주는데, 돈도 시답잖게 번다는 사실에 초라해지는 순간도 (생각보다 자주) 있다. 하지만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기분뽕에 취할 때가 더 많다. 


학생이기만 할 때보다 엄마이기도 한 지금의 학교생활이 더 재밌다. 모두 아이 덕이다. 어린이집 하원시간에 맞춰 당당히 칼퇴할 수있는 기회를 얻었다(가장 감사한 부분이다). 대신 학교에서 밍기적 거리는 시간을 줄이고, 집중해서 할 일을 끝낸다. 몰입하다보면 어느새 오후 3시, 어린이집 알림장이 온다. 호기심 많은 눈으로 방정대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 논문과 보고서로 뇌가 드라이해져있을 때면, 온기있는 육아에세이로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대학원에서의 인간관계에서도 여유가 생긴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집착하지 않는덴, 엄마로서의 나의 정체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실로 모든게 아이 덕이다. 이도 저도 아님 어떠랴. 이도 저도 끌고 있단게 중요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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