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필수 준비물 : 보행기
보행기 없는 아침 출근 준비시간은 상상이 안 간다.
아기가 6개월 정도 되었을까? 튼튼이가 앉는 것보다는 서서 방방이 태워주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보행기를 들여야겠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우리 집에 항상 있는 튼튼이의 보행기. 이 보행기는 이제 (아기가 아니라)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아기를 보면서 출근 준비를 하는 2시간은 나 혼자만의 전쟁이다.
7시가 되면 알람 시계를 듣고 일어나는 것 마냥 '엥' 울면서 일어나는 튼튼이. 일어나서 쭉쭉 마사지를 해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배고파서 더 크게 울기 전에 분유를 타서 아침 첫 수유를 해준다. 그렇게 먹이고 나서 거실에 나와 십여분 놀아주고 나면 이제 나도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머리 감기'부터 시작.
화장실에서 시간을 꽤 쓰는 과정이기 때문에 틈이 나면 바로 머리부터 감는다. (샤워는 밤에 아기 자고 나서 함) 머리를 감는 동안 아기를 붙들고 있을 수 없으니, 튼튼이를 보행기에 태워서 화장실 앞에서 돌아다니는 걸 보면서 머리를 감는다.
엄마가 눈앞에서 머리를 거꾸로 하고 머리카락을 바닥에 닿을락 말락 치렁치렁 거리면서 뽁삭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두 눈이 동그래진다. 머리 감는 중간중간에 튼튼이랑 아이컨택도 하면서 오르르까꿍도 해준다.
헤어드라이기로 머리 말리기.
다행히도 튼튼이가 드라이기 소리를 싫어하지 않고 드라이기 바람을 한 번씩 쐬어주면 활짝 웃고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머리를 말리고 화장실 바닥을 샤워기로 쑤욱 쓸어준 다음에 얼굴에 치덕치덕 크림을 바르면 끝이다.
이 때도 튼튼이는 화장실 앞에서 나를 구경하며 드라이기 소리도 신기해하고, 거실 쪽에 혼자 돌아다니다가 내가 부르면 다시 화장실 문으로 오기도 한다. 보행기 폭이 화장실 문보다 같거나 커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려고 해도 못 들어와서 편하다.
그날 입고 나갈 옷 스타일러에 넣어 급속 모드로 돌리거나 스팀다리미 켜 두기.
나는 그날 아침 날씨를 보고 입을 옷을 정한다. 회사에 사 비즈니스 캐주얼로 복장이 바뀌었고, 청바지까지 허락한 게 얼마나 감사한지. 두세 개 청바지를 돌아가며 입는다. 그날 입을 옷이 구겨져 있으면 외투는 스타일러에 돌리고 셔트나 니트는 스팀다리미로 다린다. 이 과정이 약 5분 정도 소요.
튼튼이는 스타일러를 너~무 좋아한다. 드레스룸에서 옷을 고르고 갈아입고 할 때 스타일러 앞에 보행기를 끌어다 주면 스타일러 문을 툭툭 치면서 어찌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서랍장 문을 여는 건 이제 예삿일이라 서랍 근처로 가지 못하게 발로 보행기를 막으면서 탈의를 해야 한다.
시터 선생님 밥을 밥솥에 예약하고, 반찬 챙겨놓고, 마지막으로 튼튼이 간식/이유식 재료 챙기기.
이때 즈음되면 튼튼이는 보행기에서 나가고 싶어서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터 선생님 드실 밥도 챙겨놔야 하기 때문에 쌀을 씻고 반찬을 따로 챙기는 건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줘~'하며 최대한 빨리 하는 수밖에 없다. 가끔 너무 울면 떡 뻥 과자를 하나 쥐어주면 좀 진정한다.
이 과정에서 식은 밥 조금 떠서 김치랑 멸치반찬 한 줌씩 대충 꺼내어 입에 넣으면 내 아침도 끝. 처음엔 아침을 안 먹으려고 했는데, 아침을 거르니 퇴근 후에도 아기를 봐야 하는데 힘이 안 나고 온 몸이 지쳐서 꾸역꾸역 한 숟갈이라도 먹으려고 한다.
그리곤 이유식 재료 떨어진 게 있는지 냉장고 및 냉동실 확인을 하고, 시터 선생님과 엄마에게 남길 말이 있으면 포스트잇에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두면 보행기 타임은 끝이다.
보행기에 갇혀서(?) 출근 준비를 기다려준 아기에게 고마워서, 집을 나서는 직전까지 열렬히 놀아준다.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장난감을 같이 가지고 놀기도 하고, 안아달라고 칭얼거렸다면 아기띠에 안아서 안정시켜주기도 한다. 그래 봤자 이 시간은 거의 30분도 되지 않고, 이 시간마저도 모닝 응아를 하고 나서 씻기고 다시 옷 입히고 하다 보면 10여분 정도뿐이다.
보행기가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보행기에서 안아달라고 하는 아기를 보면 내 마음도 마냥 편치만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출근 준비하면서 보행기에 계속 태우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꺼내서 안아서 베란다에서 밖을 같이 보기도 한다. 아니면 놀이매트에 내려놓고 혼자 바스락 거리면서 집중하며 놀 때, 후다닥 옷을 갈아입는 등 해야 할 일을 조각조각 나누어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2시간이 매일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아주 그냥 정신이 쏙 달아난다. 그래도 이 보행기 아니었으면 1시간은 더 추가되었을 나의 출근 준비 시간. 항상 보행기에게 감사한다.
코로나 시국이라 가끔 재택을 하는 날이면 이 출근 준비 없이 내추럴한 상태로 일을 해도 되기 때문에 편하게 보내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보행기를 안 태우고 안아주거나 붙어서 놀아주거나 한다.
사무실 출근하는 날, 나 편하자고 아침에 보행기를 태웠던 것 같아 미안해서. (말은 이렇게 했지만 튼튼이는 보행기 타는 걸 싫어하진 않는다. 다만, 오래 타고 있는 걸 싫어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