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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선임 Jul 06. 2022

거절하는 연습을 하세요.

내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행복하게 회사생활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여러가지 방법을 떠올렸겠지만, 내가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는 것이 바로 '거절할 줄 아는 것'이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회사에 있는 시간동안 우리는 다양한 제안을 받는다. 옆자리 직원의 '같이 커피 한 잔 하러 가자'는 비업무적인 제안부터 팀장님의 '이 업무 좀 맡아 볼래요?'와 같은 업무적인 제안 등등.


 내가 첫 직장에 입사했던 2013년도만 해도, 직장에서 '아니오'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MZ세대의 특징이니 반론군자가 있어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신입사원이니까 회식가자는 말에 선약이 있다는 말로 불참 의사를 밝히는 것은 이팀저팀 소문이 날만한 일이었고, 부당한 지시를 내렸을 때도 상사에게 밉보여서 회사생활을 망칠까봐 싫지만 묵묵히 할 뿐이었다. 그렇게 3년을 지내고 첫 직장의 마침표를 찍고나니, 내가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지 반추해보게 되었었다.


 연 과장은 첫 직장에 발령받은 팀의 고참 여자 과장이었다. 가진 업무 능력은 없으나 탁월한 정치능력과 화려한 언변술, 그리고 가스라이팅에 능했다. 그 능력으로 후배직원들을 괴롭히기 일쑤였고, 주변에서는 '나도 쟤처럼 피해자가 될까'봐 맞는 소리를 못하고 그녀가 후배들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체 했었다. 


"나 다음주에 출장 가잖아, 혹시 너 손목시계 잘 아니? 보니까 손목시계 자주 차던데"

"네.. 왜요 과장님?"

"응, 안 바쁘면 면세점 홈페이지에서 남동생 선물 사주려는데 손목시계 좀 서너개 골라봐줄래? 예산은 3~40 정도로. 내가 요즘 트렌드를 잘 몰라서~"

"?"


 이게 무슨 말도안되는 지시인건지 내 귀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니 남동생 손목시계를 왜 내가 골라줘야하는거지? 그것도 남들은 열심히 일하는 근무시간에? 최초 당황하였지만, 내 몸이 방어적으로 거절의 의사를 나타내려고 한 순간, 나는 그녀의 논리에 휘말리게 되었다. 


"아, 제가 지금 해야할게 있어서요..."

"아.. 그래? 니가 신입인데 무슨 일이 그렇게 많다고?"

"하다보니 적지않더라고요..."

"뭐래. 우리팀 일은 니가 다 하나보다? 그거 몇 개 찾는게 뭐 시간 오래걸린다고 그렇게 비싼척이야?"


 나는 그 순간 그녀의 쏘아붙임을 듣기가 싫어서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아주 넓은 아량으로 정말 몇 개정도만 내 남동생한테 사준다고 생각하고 골라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 결심(?)은 결국 일주일이라는 소중한 내 시간을 앗아갔다. 즉, 일주일동안 그녀의 추가 지시가 계속 있었다. 


"너가 골라준거 봤는데, 체인 말고 가죽스트랩으로 된거는 좀 구식인가?"

"아뇨, 그렇다기보다 면세점 판매순위가 그런것들이 좋았었어요. "

"제대로 좀 찾으라고 했더니 그냥 순위대로 골라줬다 이거야?"

"아, 한번 다시 보고 말씀드릴게요..."


 그녀의 가스라이팅에 결국 나는 일하는 시간 내내 시계를 찾느라 애를 먹었고, 말미에는 면세점에 재고가 많은지까지 조사해서 알려다주기도 했다. 하지만 일은 일대로 해야했기에 근무시간에는 손목시계를 스터디하고, 근무시간 외에 꾸역꾸역 일까지 마무리 짓곤 했다. 주변에서 광경을 목격하고 있던 직속 선배 대리님이 과장님이 없을 자리로 오더니 말을 걸었다. 


"하나야, 나도 그 손목시계 찾는 거... 얘기듣고 보기도 봤는데... 참 진짜 할 말이 없다."

"선배님, 저 언제까지 시계나 찾고 있어야 할까요? 일하는 시간이라 너무 눈치보여요."

"그러게, 진짜 연 과장 저 사람 언제까지 저렇게 탱자탱자 회사에서 놀멍쉬멍 하려나 몰라... 거기다가 여자 후배들 갈굼이나 하고 진짜 답답하다. 내가 못 도와줘서 미안해..."

"아니에요... 이것도 끝은 있겠죠. 휴. 얼른 출장이나 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연 과장의 출장이 시작되었고, 그녀의 빈자리에 행복을 느끼며 지냈다. 손목시계를 잘 샀는지 못 샀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었는데 괜히 신경쓰이기는 했다. 역시나 안좋은 예감은 틀린 법이 없었다. 연 과장님이 해외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 복귀한 날, 그렇게 서칭을 시켜놓고 손목시계를 잘 샀니 어쨌니 이야기가 먼저 없길래, 궁금하기도 하고 눈치도 보여서 먼저 말을 걸었다. 


"과장님, 잘 다녀오셨어요? 고생많으셨어요. 면세점에서 동생분 선물은 잘 사셨고요?"

"어어, 잘 다녀왔지. 시계는 직접 보니까 맘에 안들어서 그냥 환불했어."

"아... 그래요...?"

"어어, 동생이 데일리 벨트도 없다길래 아무 벨트나 골라사가지고 와서 줬어."

"?"


 이 황당한 결과에 나는 말을 잃었다. 잘못 들었는지 내 귀를 의심했었다. 그렇게 당황하는 내 모습을 뻔히 알지만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일부러 꺼내지 않는 눈치였다. 그 순간이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나는 스마트폰으로 GIF를 남겨놓은 것 마냥 그 순간의 비디오가 여전히 기억이 남는다. 비디오 속의 그 때의 나를 보면,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바보 같기도 하다. 그 여자가 뭐라고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했는지 지금의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내가 만약 처음 연 과장이 회사 근무시간에 부당한 지시를 하였을 때 바로 거절했었더라면, 나의 5일 근무시간을 날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싸가지없는 신입사원이라는 욕과 뒷 이야기를 막을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고? 그렇게 욕해서 다른 사람들을 제 편으로 만들어서 나를 따돌림 시켜도 사실 참 부질없는 행동인 것이다. 그런 직원을 두고보는 조직이라면 오래 다닐 필요도 없고 관두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인 것이다(결국 3년 다니고 퇴사한 것이 이것을 반증함).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절을 하지 못하는 것도 습관이라는 것이다. 연 과장과 같은 사람들은 누울 자리를 보고 행동한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성향이기 때문이다. '아, 얘는 내 말을 거역하진 않더라. 고분고분한 애더라.'라는 생각으로 밀어부치기 때문에, 첫 단추가 중요하다. 만약 연 과장이 '아, 쟤는 내가 말한다고 다 해주진않던데, 괜히 신경쓰이니까 내 말 잘 듣는 하나한테 시켜야지'라는 심산으로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욕하더라도 거절받아 본 사람에게는 조심한다. 참 야비하다. 어쨌든 그러니 부당하거나 합리적이지 않거나 상황이 여의치않을 때에는 반드시 거절하자.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업무를 온전히 해내는 것'이고, 그것이 1순위이다. 


 착한사람이 되지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욕먹기 싫고 많은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보통 이런 거절을 못 하는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거절하지않고 어중이 떠중이 하겠다고 했다가 제대로 못하면 그게 더 욕먹을 행동이다. 자, 관리자의 입장에서 A와 B중 어떤 사람을 더 선호할까?  

상황 : 이번주 행사준비로 상당히 바쁜 A와 B. 옆 팀에서 예전에 A와 B가 담당하던 사업과 유사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자리로와서 도와달라고 한다. 

A는 망설이다가 옆 팀원 자리로가서 봐주기로 한다. 

B는 나지막히 도와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봐주겠다고 한다.


 내가 거절한다고 그 사람이 나를 나쁘게 볼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말자. 회사에서 협조요청을 거절받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상대방이 정말로 바빠보이고 본인의 업무로 여유가 없어보인다면 거절하는 것 자체는 금방 잊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습관적으로 벽을 치면서 내 업무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않는 조직에 융화되지 않는 경우는 나쁜 케이스이다. 하지만 내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내 의견을 스스로 묵살시키고, 내적으로 괴로워하면서 억지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느라 내 성과까지 놓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말자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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