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단편은 IT인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폭풍을 일으킨 소설이었다. 배경이 판교였고, IT회사였는데, 개발자가 아닌 사람이 보는 IT인이란 테크 회사란 이런거구나 하는게 재밌기도 하고, 판교 생활에 대한 묘사를 너무 좋아서이기도 하다. 몇년 전 이 단편을 봤을 때 가장 크게 웃었던 구절이 있다. 한 개발자가 면접을 보면서 자신이 레고 동아리의 총무를 맡을 정도로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대목이었다.
카이스트, 레고, 총무. 그 어느 하나도 사교적으로 들리지 않는데. 내성적인 개발자는 대화할 때 자기 신발을 보고 외향적인 개발자는 상대방의 신발을 본다더니. 이 세계에서 레고 동호회란 대체 뭐란 말인가. 크레이지 파티광쯤 되는 건가.
이 대목을 읽을때는 정말 푸하하하 이렇게 웃었던 것 같다. 개발자를 바라보는 소설가의 시선은 이런거구나 했다. 하하. 과장되긴 했지만 어느정도 맞는 말이기 때문에 더 웃겼다. 원래 농담이란 진실이 섞여 있어야 더 웃긴 법이다.
제주도의 한 카페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어쩐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은 일의 기쁨과 슬픔을 포함해 여러 단편이 포함되어 있는 단편집이다. 술술 읽히는 내용이기도 하고, 엄청 현실적이라 재밌게 읽었다. 약간 냉소적인 주인공의 기질이 어딘지 나와 비슷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던 주인공이 어떤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기뻤다. 방송국이고 피디고 뭐고 지긋지긋했다. 대신 4대 보험이 어쩌고 하는 말들과 상여금, 특근수당, 연차와 실비보험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나 따뜻하고 푹신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꿈을 포기하고, 얼렁뚱땅 취업한 회사지만 회사에서 나오는 돈은 너무나 따뜻했다. 주인공이 느끼는 따뜻함이 너무나 잘 전해졌다. 돈에서 따뜻함을 느낀다는 건 그 전의 수많은 고생과 스트레스를 뜻한다는 걸 이젠 너무 잘 알고 있다.
여러 단편중에 나는 악몽이 제일 기억난다.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를 고용하게 된 신혼 부부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괜찮은 줄 알았던 아주머니가 점점 선을 넘더니, 결국은 도를 넘게 되고 주인공이 그 아주머니를 해고하려는 순간, 먼저 그만두고 나가며 주인공의 뒷통수를 치는 장면은 너무나 고구마였다. 꼭 누군가를 고용했을 때가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에서 괜찮은 줄 알았다가 내가 뒤통수를 맞을 때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했는지를 떠올리게 했다.
어떤진 장류진 작가의 주인공들은 예민하고 냉소적인 구석이 있지만 따뜻하다. 온정이 있어서 더 정이 간다. 더 공감이 간다. 내 얘기 같기도 하다. 이런게 바로 contemporary, 동시대성인거겠지. 동시대의 작가들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