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한 아부다비 생활
여전히 스케줄 변동이 많은 가운데, 다음 날 낮에 가기로 되어있었던 턴 비행이 전날 밤 비행으로 바뀌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카이로 턴 비행을 다녀왔다.
보통 브리핑 시간에 그 비행에 중요한 사람이 있거나 특이 사항이 있는 경우 사무장이나 부사무장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달받곤 한다. 이 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스페셜 게스트(?)가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바로 항공사 블랙리스트인 Mr. X(가명)
회사로부터 전달받은 종이에는 이 사람은 “도둑”으로 의심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바라고, 모든 비행을 모니터 해달라는 지침이 쓰여 있었다.
항공사는 바보가 아니다. 모든 사람에 대한 데이터는 아니지만 기내에서 담배를 피웠다거나 난동을 부렸다거나 혹은 심각한 응급상황이 일어났던 경우 그 사람에 대한 데이터는 당연히 다 저장이 되어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블랙리스트”도 당연히 있다.
이 날 Mr. X(가명)는 이집트 카이로 - 아부다비 노선에 유일무이한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승객들이 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승객 정보가 적혀있는 서류를 건네받고 승객 이름과 좌석을 확인한 후 승무원들끼리 한 번씩 캐빈을 돌아다니며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승객은 보딩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서 탄 여성 승객 주변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요새 코로나 기간이기도 하고 코로나 이전에도 대부분의 승객은 아무도 없는 자리로 옮기려고 하기 때문에 충분히 의심 갈만한 상황이었다.
이집트 카이로(알렉산드리아) 비행은 아이들이 많기로 악명이 높은 비행이다. 아직도 세네 명의 아이들을 낳는 게 기본인 나라이기 때문에 어느 날은 어린이 승객만 50명, 많을 땐 80명, 유아 승객까지 합치면 100명이 될 때도 있다. 부모랑 같이 타는 게 일반적이지만, 가끔 여성승객 혼자서 (엄마) 애들 아빠 없이 애들만 데리고 타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이런 경우를 공략한 것 같다.
밤 비행이다 보니 대부분의 승객들이 음식 서비스를 받지도 않고 잠들었다. 우리 비행엔 나를 제외한 두 명의 승무원이 Mr.X 와 같은 국가 출신이어서 영어를 하지 못하는 Mr.X 승객에게 아무렇지 않게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었다. 회사 절차상 서비스를 끝내면 조명을 끄는 게 원칙이었지만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우린 조명을 끄지 않았고, 아무 일 없이 착륙할 수 있었다.
Mr. X 씨는 제일 먼저 하기를 했다. 대부분의 승객이 하기 했을 때 자다가 방금 일어난 듯 한 어느 아라빅 남자 승객 하나가 뒷 갤리에 있는 우리한테 오더니 이렇게 말한다.
“I think I lost my jacket.”
우리는 너무 황당해서 마지막으로 본 게 어디냐, 어디다 놨냐, 좌석이 어디냐 확실히 확인했냐 물어봤는데 자기는 잠들었다가 지금 깼다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할 뿐이었다. 승객 자리로 가서 같이 찾아봤지만 우리도 찾지 못했고,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 우린 모른다...
승객이 항공사를 평가하는 것처럼 항공사 역시 드라마를 만드는 승객들은 평가를 한다는 사실. 항공사별로 블랙리스트는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