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가 없었다

그냥저냥 세상 사는 이야기②

by 태포

올 3월 19일 토요일의 일이다. 밖을 서성이고 있는데 오랜 친구에게 카톡 하나가 왔다.


내용을 읽고 순간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집으로 돌아와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예전에 분명 검은색 넥타이를 사뒀는데 보이질 않아 남색으로 대신했다. 자가격리 중이셨던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했는데 갑작스러운 일에 적잖게 놀라신 듯했다.


엄마는 잠시 말씀이 없으시더니 부의금만 보내면 안 되겠냐며 조심스럽게 되물으셨다. 사람 많은 곳을 간다는 당신 아들이 무척이나 걱정되셨나 보다. 충분히 이해한다.


허나 의미 없는 물음이라는 걸 본인이 더 잘 알고 계셨을 터. 나는 인사만 하고 일찍 나오겠다고 안심시켰다. 엄마는 마스크 절대 벗지 말고, 접촉을 최대한 피하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어찌 된 일인지 장소가 집과 가까웠다. 걸어서 고작 10분 거리. 지하 1층이었는데 내려가는 계단은 꽤 으스스했다. 분명 봄인데.


옷차림을 확인하려 화장실을 들렸는데 그곳에서 친구와 마주쳤다. 친구는 내 얼굴을 잠시 보더니 오랜만인데,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런 일로 불러 미안하다고 했다. 뭐라 답변해야 할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안에는 친구 여동생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은 자세히 보지 않았다. 사진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워 눈을 계속 피했다. 공손히 절을 두 번 올렸다. 그리고 친구와 맞절을 했다.


친구가 어머니에게 나를 중학교 친구라 소개했다. 어머니는 와줘서 고맙다며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내가 손을 잡아 드려야 하는데 하는데 어머니가 양손으로 내 손을 어루만져 주셨다. 어머니 눈은 시뻘겋게 충혈돼 있었다. 나는 조용히 어머니를 안아 드렸다. 어렸을 때 친구 집을 자주 드나들었지만 단 한 번도 뵌 적은 없다.


몇 명의 친구들이 이미 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중 한 녀석은 자신이 친구의 베프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이미 몇 잔 한 듯 얼굴은 상기돼 있었고, 목소리도 꽤 컸다.


이 녀석은 와줘서 고맙다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이후 이 같은 얘기를 10번 가까이했고, 나는 10번 가까이 같은 말을 들었다. 그리곤 그때마다 내 손을 꽉 잡았다. 초면이었지만 이런 행동이 밉지 않았다. 내 친구를 대신해 고맙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얼큰하게 취한 이 녀석은 술자리 게임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호탕하게 웃어댔다. 정신 나간 술주정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되려 든든하고 또 고마웠다. 나중에 친구가 말해줬는데 이 녀석은 같이 밤을 새웠다고.


친구를 불러내 단둘이 담배를 피웠다. 끊었던 담배였는데 내가 먼저 나가자고 귀띔했다. 밖에서 친구는 갑자기 차 자랑을 해댔다. 이번에 좋은 차를 샀고, 또 무광 도색을 했고, 이제 더 큰 '배트맨' 차를 갖게 됐다며 웃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말을 이었다. 나는 친구를 조용히 안아줬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었는데 친구를 안은 건 처음이었다.


두어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고생했다고, 밥은 먹고 왔냐고 벽 넘어 말씀하셨다. 엄마의 자가격리는 아직 4일이나 남았다. 아직도 목이 조금 아프시단다.


엄마가 코로나로 이렇게 고생하고 계신데 이날 나는 밖에서 많은 사람들과 피부를 맞댔다. 엄마의 당부를 잊고, 어머니를 안아드렸다. 정말이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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