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리는 엄마

그냥저냥 세상 사는 이야기③

by 태포

"어머, 안돼, 아아, 어떡해."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우리 집 거실에서는 월드컵이 열린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반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데도 열기는 여전히 치열하다.


엄마는 SBS 예능프로그램 '골때녀'의 찐 애청자다. 그녀들의 패스, 슈팅, 목소리 하나하나에 완전히 몰입하신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참가하고 있는 실제 선수 같다. 장기 부상으로 경기는 뛰지 못하지만, 대신 벤치에서 큰 목소리로 팀원들을 독려하고 있는 고참급 선수다.


골을 넣었거나 한 끗 차이로 들어가지 않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엄마의 환호, 탄식, 안타까움이 내 방까지 생생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아마 위아래층 이웃주민들도 다 같이 듣고 있으리라.


극도의 흥분상태(?)가 조금은 걱정돼 거실을 나가보면 해맑게 웃으시며 지금 잘 보고 있다, 한 골 먹혔으니 방해하지 말라며 빨리 들어가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참고로 내가 어렸을 때 박지성이 골을 넣어 소리를 지를 때면, 이게 이렇게 시끄러울 일이냐며 등짝을 때리셨던 사람이다.


때문에 수요일 거실 TV는 오롯이 엄마의 차지다. 이날 밤 주전부리를 찾아볼까 주방을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강력한 눈빛을 쏴대신다. 이러니 방을 나올 수 있나. 방에 감금(?)되는 건 동생과 아빠도 마찬가지다. 간혹 아빠도 같이 보곤 하시는데, 이 정도는 아니다.


본방 사수에 목을 매시는 것도 당연하다. "드라마 한 주 안 본다고 달라지 거 있겠니. 재방송 많이 하고, 설령 한 회 안 본다 해도 흐름 아는 데 전혀 지장 없어." 엄마가 줄곧 해왔던 말인데 요즘 행동은 이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오죽했으면 자가격리하는 동안에도 '골때녀'만은 나와 보시라고 가족끼리 합의했을까.


엄마가 그중 제일 좋아하는 팀은 한혜진, 이현이 등으로 구성된 모델 팀 '구척장신'이다. 이 악물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마음에 드셨나 보다. 한 번은 나에게 축구하면서 발톱 빠져 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한혜진이 연습하다 발톱 빠진 것을 보고 하신 말씀 같은데, 물론 나는 없다.


이 조여사 덕분에 요즘 나도 '골때녀'를 간접 시청하고 있다. 어느 팀이 이겼고, 누가 넣었으며, 누가 잘했는지를 소식통이 고스란히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 모두 지금처럼 뜨겁고, 치열하게 뛰어 줬으면 한다. 대신 부상도, 편집 논란도 더 이상은 없었으면. 이슈가 생길때 마다 크게 걱정하는 사람이 우리 집에 살고 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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