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

그냥저냥 세상 사는 이야기⑧

by 태포

"젊은 양반, 이것도 찍을 수 있어요?"


어제 홍도 깃대봉 정상에서의 일이다. 가볍게 둘러보려 나섰다가 생각보다 높아서 꽤나 애를 먹었다. 1시간 가까이 올랐던 것 같다. 높이는 기억하기 딱 좋은 '365m'다.


본래 산타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귀찮음이 늘 앞선다. 하지만 정상에서는 단 한번도 올랐음을 후회한 적 없다. 아니, 후회할 수가 없다. 이날 하늘도 마찬가지로 더 높았고, 더 파랬고, 더 맑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데 옆에 어르신이 말을 건넸다. 오래된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꺼내시며 작동법을 아는지 물으셨다. 당신은 도저히 찍을 수 없다 했다. 디카는 동영상 모드로 설정돼 있었다.


의외로 이것저것을 부탁하셨다. 안내판이 보이게 찍어 달라, 저 멀리 흑산도가 걸리게 찍어 달라, 이번엔 하늘을 담아 달라. 아마 참다 참다 용기 내어 나에게 부탁한 것일 테지. 최선을 다해 찍어 드렸다.


인사를 드리고 내려 가려는데 뒤에서 혼잣말로 말씀하셨다. "내 생에 마지막 홍도가 될 것이야..." 언젠가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던 5분 전의 나와 크게 대비됐다. 도저히 혼자 내려갈 수 없어 천천히 발걸음을 맞췄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순천 분이고, 산악동호회에서 왔는데 걸음이 느려 일행은 이미 다 하산했다고 하셨다. 또다시 못 올 홍도인데 오늘 날씨가 참 좋아 다행이라며 웃으셨다.


어르신은 고맙다면서 핸드폰 번호를 불러주셨다. 순천 오면 꼭 연락하라고,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한다 말하셨다. 나는 '홍도서 만난 순천 어르신'이라고 저장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스쳐 본 말이다. '우리가 평생 간직하는 인생샷은 지나가는 누군가가 대충 찍어준 사진이다.' 그의 인생샷에 이날 내가 찍은 사진이 채택됐으면 좋겠다. 디카 앨범 보는 방법을 수차례 알려드렸는데 하실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fin.


<여행사진 없는 여행에세이. 정상 이미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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