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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인경 Aug 18. 2016

아버지들을 위한 변명

여자가 읽는 남자 마음

                                                  

남자들이 나이 들면 흔히들 쩨쩨하고 소심해진다 말하지

물론 나도 어느 정도는 인정해

나라고 남들 앞에서 폼 잡고 통 크게 쓰고 싶지 않겠어

나도 멋지게 품위 유지하고 싶다고


하지만 결혼하고 가장이 되어보니

내 어깨에 짊어진 내가 거둬야 할 나의 식솔들

한 가정의 경제와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에 나를 위해 쓰는 돈조차 아까울 때가 많아


식탁 앞에 둘러앉은 사랑하는 가족들

또 늦은 퇴근 후 잠들어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는 나의 두 손엔 여러 생각과 감정이 담겨있지

잘 키워야겠다는 각오와 다짐 같은 거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 나 없는 가족들을 생각할 때면 정말이지 정신이 아찔해

그래서 가끔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게 돼

돈 좀 아껴 쓰라고

학원비가 왜 그렇게 많이 드냐고

물론 나도 이러는 내가 싫어  좀스러워 보여서

그럼 아내는 내 속도 모르고 잘난 친구남편과 비교하겠지


아 ᆢ물론 나의 아내도 비정규적으로 일을 할 때가 있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우리 아내는 힘들면 그만두고 직장동료와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그만두고ᆢ 한 직장에서 6개월을 못 넘겨

가끔 그럴 땐 쉽게 직장을 그만수 있는 아내가 부럽기도 해


어쩌다 낮 시간에 소문난 맛집에 가면 온통 여자들 천

음ᆢ가만히 혼자 생각해봐

저들이 친구들과 몇 시간씩 수다 떨고 인심 쓰듯 계산하는 저 비싼 밥값과 커피값에 우리 남편들의 땀과 눈물과 아부와 눈치가 녹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울 아내만 해도 모임은 왜 그렇게 많은지ᆢ


내가 겁나는 게 뭔 줄 알아

나이 들어 돈 없고 일 없어 집에 있을 때

힘없는 뒷방 노인 될까 봐


아마 그때쯤이면 난 하기 싫은 등산을 매일 가겠지

운동한답시고 등을 퉁퉁 부딪히며 나무에 영역표시하면서ᆢ

그러고 보니 이 나무 저 나무마다 온통 은퇴하고 갈 곳 없는 집 나온 남자들만 가득하네

아ᆢ그런 상상을 할 때면 내 가슴에 서리가 내려


그래서 난 밤낮없이 돈 벌고 아껴 쓰는 거라고

마누라 옆에 딱 달라붙은 젖은 낙엽 안되려면 나도 용돈 모아 취미 하나쯤 만들어야겠는데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어


벌써 가을인가

쓸쓸한 바람이 파고드는 걸 보니


                                                                by  한 인 경

                                             Photographer 양 대 호


- 오랜 기간 교육 관련 일을 하면서 느껴진 아버지들

  그들을 화자로 나의 생각을 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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