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다시, 길 위에서_면접위원, 강사로 다시 서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레임으로

by 목화





배움의 시간을 가지며 생각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새로운 기회가 다가왔다.
어찌 보면 마음가짐이 기회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급하고 경직되어 있던 나에게 기회는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인생의 챕터 2가 열렸다.


전업주부로 지낸 지 꼬박 5년.

나는 이전의 경력과 성과를 기반으로, 전문면접위원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인사 출신도 아니고, 설계 엔지니어와는 전혀 다른 일이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연결된 일이었다.


일련의 교육과 자격을 갖춘 뒤 처음 면접위원으로 참여하던 날,

아마 지원자들보다 내가 더 많이 떨었을 것이다.


티 내지 않으려 부던히 노력했던 기억.

오랜만에 입은 정장은 또 어찌나 어색하던지.

긴장으로 손끝이 저릿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어쩐지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날의 설렘과 흥분은 가족들에게도 전염되었다.

남편은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아이들은 엄마의 기분이 좋아 보인다며 덩달아 신이 났다.


남편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산업에서 일했기에 서로의 일에 이해도가 깊었다.


그런 남편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며 포기해야 했던 것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나 역시 고맙고 미안했다.

맞벌이 시절, 그는 집안일과 육아에 최선을 다했고,

회사에서는 싫은 소리를 들어도 가정을 우선으로 지켜냈다.


우리는 힘든 시절을 함께 건너온 전우 같았다.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나서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면접위원 일을 시작하면서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그때 문득, 예전 프리젠테이션 때 “발표를 잘한다”던 말이 떠올랐다.

무리수일지도 모르지만, 강사를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한두 시간 동안 강의를 진행하는 일은

회의 시간에 의견을 내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특히, 나 같은 설계 엔지니어 출신에게는 더욱.


하지만, 뭐 어때. “까짓 것 도전해보자!”


그렇게 취업 포털을 검색했고, 이공계 강사 모집 공고를 발견하자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세상과의 단절이 두려웠던 만큼,

새로운 연결점에서 나는 예전에 없던 용기마저 생겼다.

그게 강사 생활의 시작이었다.

코로나 시기라 온라인 강의로 첫 발을 내디뎠지만,

화면 너머의 수강생들을 보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초반엔 강의 자료를 준비하는 데 며칠이 걸렸고,
강의 전날이면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설픈 초보 강사 시절을 지나
이제는 수백회가 넘는 대학 특강과 성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인생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백세 시대라는 긴 여정 속에서,
누굴 만나고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예전의 나는 면접위원과 강사로 다시 일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으니까.

어느 순간, 내가 모르는 길로 들어서기도 하는 것 —

그래서 인생은, 결국 예측할 수 없는 선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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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로 흐르다

<Flying Cotton> 에세이의 마지막 장

토요일 09시

8회. 걷고, 그리고 날다.


#브런치에세이 #재취업 #강사 #면접위원 #성장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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