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엄마로서, 사랑을 배우는 시간

사랑은 지금도 나를 가르친다.

by 목화


그때 나는 모든 면에서 어설픈 엄마였다.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는 일조차 약간은 떨렸다.


회사를 다닐 때는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며
잠깐 인사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게 되면서,
유치원 하원이 끝난 오후마다 놀이터에서 줄곧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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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사람들의 다양함을 다시 느꼈다.
어떤 엄마는 매사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항상 배려하고, 예쁜 말을 쓰고, 먼저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도 양보와 배려를 자연스럽게 가르쳤다.


반면, 어떤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우리 아이 그네를 빼앗으려 하면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는 새로운 나를 보게 되었다.


자식과 관련된 일이면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매번 울고 오는 아이를 보며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속은 늘 요동쳤던 날들도 있다.


나 혼자만의 일이었다면 쿨하게 넘겼을 일도,
내 아이의 일이 되면 도무지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엄마라는 건,
부모라는 건 —

어쩌면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디까지 옹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어디까지 히스테릭해질 수 있는지를
매일 시험받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괜찮은 나’가 아니었다.
나의 색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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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깨달았다.
집 안 어딘가, 아주 작은 한 구석이라도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 나만의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하지만 오랫동안 회사에서만 살아온 나는
다른 루트의 삶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막연히 시작한 게
온라인 학사 과정이었다.


새 학위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그 공부가 나를 다시 숨 쉬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공부를 시작하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비교와 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나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흔히, 부모의 사랑이 위대하다고들 말하지만

그 순간들을 거치며, 나는 분명히 배웠다.
자식을 향한 사랑만이 아니라 —
부모를 향한 아이의 사랑의 위대함을.


아이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누가 나를 이토록 사랑해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나는 전부였고, 우주였다.
그들은 매일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다가와
아낌없이 사랑을 건넸다.


땀이 뻘뻘 흐르던 여름날,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와서 안아달라던 아이를 꼭 안아주자,
옆에 있던 엄마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안 힘드세요? 그렇게 치대는데 싫지 않으신가 봐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언제 이런 사랑을 받아보겠어요.”


나는 착각에서 깨어났다.

나는 혼자 희생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이미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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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내 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그 시절은 잃은 것 보다 얻은 것이 많은 시간이었다.

사랑을 배우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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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0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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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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