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지금도 나를 가르친다.
그때 나는 모든 면에서 어설픈 엄마였다.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는 일조차 약간은 떨렸다.
회사를 다닐 때는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며
잠깐 인사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게 되면서,
유치원 하원이 끝난 오후마다 놀이터에서 줄곧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의 다양함을 다시 느꼈다.
어떤 엄마는 매사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항상 배려하고, 예쁜 말을 쓰고, 먼저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도 양보와 배려를 자연스럽게 가르쳤다.
반면, 어떤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우리 아이 그네를 빼앗으려 하면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는 새로운 나를 보게 되었다.
자식과 관련된 일이면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매번 울고 오는 아이를 보며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속은 늘 요동쳤던 날들도 있다.
나 혼자만의 일이었다면 쿨하게 넘겼을 일도,
내 아이의 일이 되면 도무지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엄마라는 건,
부모라는 건 —
어쩌면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디까지 옹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어디까지 히스테릭해질 수 있는지를
매일 시험받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괜찮은 나’가 아니었다.
나의 색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집 안 어딘가, 아주 작은 한 구석이라도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 나만의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하지만 오랫동안 회사에서만 살아온 나는
다른 루트의 삶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막연히 시작한 게
온라인 학사 과정이었다.
새 학위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그 공부가 나를 다시 숨 쉬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공부를 시작하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비교와 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나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흔히, 부모의 사랑이 위대하다고들 말하지만
그 순간들을 거치며, 나는 분명히 배웠다.
자식을 향한 사랑만이 아니라 —
부모를 향한 아이의 사랑의 위대함을.
아이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누가 나를 이토록 사랑해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나는 전부였고, 우주였다.
그들은 매일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다가와
아낌없이 사랑을 건넸다.
땀이 뻘뻘 흐르던 여름날,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와서 안아달라던 아이를 꼭 안아주자,
옆에 있던 엄마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안 힘드세요? 그렇게 치대는데 싫지 않으신가 봐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언제 이런 사랑을 받아보겠어요.”
나는 착각에서 깨어났다.
나는 혼자 희생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이미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였다.
그 사랑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내 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그 시절은 잃은 것 보다 얻은 것이 많은 시간이었다.
사랑을 배우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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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09시
7회. 다시, 길 위에서_면접위원, 강사로 다시 서다
by Mok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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