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엑스포, 신해철, 라떼는 말이야

by 전여래

풍경 하나

<No Japan> 훨씬 이전 남편과 함께 간 일본 여행. 도쿄 근교에서 온천을 즐기고, 시부야 거리에서 범상치 않은 화가에게서 초상화도 받고, 미술관이랑 박물관도 다니다가 아사쿠사 놀이공원을 하릴없이 어슬렁거렸다.

겨울이라 황량할 줄 알았는데, 동물원 온실 앞에 길게 줄 선 아이들을 만났다. 올망졸망 모인 어린이들은 몹시 귀여웠다.

“아이쿠, 애기들 줄 선 거 봐. 짜식들, 재밌는 거 보겠다고.”

남편이 보조개가 패도록 싱긋 웃었다.

“나도 저렇게 줄 서고 그랬는데. 대전엑스포 개장했을 때 부모님이랑 같이 가서 나랑 동생이 구경하는 동안 아버지 어머니가 다른 곳 줄 서주시고 그랬어요.”

“풋, 애냐? 엑스포 보겠다고 줄 서게.”

웃고 있던 남편의 표정이 싸해진 순간, 아차 싶었다. 대전엑스포가 열렸을 때 남편은 진짜 ‘애’였던 것이다. ‘남자는 늙어도 애’라는 비유 속 애가 아니라 실제로 애! 생물학적 어린이!

초등학생 꼬꼬마였을 남편을 생각하니, 그동안 까먹고 있었던 열한 살이라는 나이 차가 새삼 어마어마하게 다가왔다. 세상에…….

그때의 입방정을 교훈 삼아, 내 나이를 기준 삼아 세상을 보는 일방적인 시선을 고치려 애썼다. 그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겐 지나온 11년이지만, 남편에게 11년 뒤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니까.


풍경 둘

마누라가 맥주를 마시며 운다. 신해철이 죽은 날, 특집 방송을 보며 거실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은 마누라가 연거푸 캔맥주를 까마시더니 급기야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고,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남편은 우는 마누라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 이미 터진 울음, 그치라고 뚝 그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같이 앉아 술을 마셔줄 수도 없다. (남편은 술을 못 마신다)

무엇보다 남편은, 신해철을 잘 모른다. 아, 물론 알기야 안다. 이름이랑 얼굴, 노래 몇 곡 정도 안다. 딱 그 정도다. 신해철은 남편 세대의 가수가 아니었으므로 마누라가 느끼는 깊은 슬픔과 상실감의 정도를 짐작할 수가 없다.

(헐리기 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신해철 콘서트에서 마누라가 정신없이 헤드뱅잉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은 학습지를 풀던 꼬꼬마였다. 남편이 조숙한 아이였다면 신해철의 노래를 좋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시간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한 일.

같은 세대가 같은 시기에 같은 노래를 들으며 정서를 나눈다는 건, 바꿔 말해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은 그만큼 드물고 어렵다는 거겠지.

방송에서 흐르는 신해철의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아내가 운다. 남편은 자신이 어찌해줄 수 없는 마누라의 슬픔이 더 슬프다.


풍경 셋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마누라는 책을 펼치고 남편은 거치대에 끼운 태블릿PC를 튼다. (침대 옆에 길게 세워 쓸 수 있는 스탠드형 거치대라는 것을, 남편 덕에 알았다. 이 놀라운 신문물의 세계여!)

마누라에게 매체의 기본은 여전히 책이고, 전자책의 편리함도 좋긴 하지만 여전히 종이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그 감촉이 좋다. 마누라는 거의 마지막 활자 세대고, 남편은 활자보다 영상이 더 익숙한 세대다. 공부하는 사람임에도, 아니 공부하는 사람이라 더더욱 책을 멀리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여가 시간에 마누라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남편은 게임을 하고 스트리머들의 영상을 본다.

“이거 봐요. 공간 구성 끝내주지 않아요?”

남편이 감탄하는 끝내주는 공간 구성이 뭘 말하는지 몰라 마누라는 실눈을 뜨고 게임 화면을 뚫어지게 본다. 놀랍게도 마누라는 2D와 3D의 차이를 잘 모르고, 마누라가 그 차이를 모른다는 사실에 남편은 더 놀란다.

남편은 웬만한 컴퓨터 부품들은 스스로 조립할 수 있지만 마누라는 컴맹이다. 마누라가 유독 기계치인 탓도 있겠지만, 자라온 환경과 기술 발달의 격차 탓이라고 우겨본다. 키오스크 메뉴판 앞에서 끝내 햄버거 주문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노인들의 심정을 마누라는 알 것 같다.


풍경 넷

결혼 전 남편의 친구들을 만났다. 1초 동안 인사한 뒤 순식간에 제각각 흩어져 논다. 누구는 휴대폰을 보고, 누구는 전화 통화를 하고, 누구는 태블릿으로 영상을 보고, 누구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끼리끼리 속삭이고……. 분명 같은 공간에 있는데 놀랍게도 모르는 사람들 같다. 남편 말고는 아무도 챙겨주지 않자 소외감을 느낀 마누라의 머릿속에 ‘요즘 것들은 싸가지가 없…’ 이런 꼰대스런 생각이 뱅뱅 맴을 돈다.

마누라에게 모임이란, 누구 하나 빠지지 않도록 최대한 공통의 화제를 끄집어내고, 술잔이 비었나 확인하고, 서로 챙기고 서로 싸우며 화기애애하게 노는 것인데, 11살 어린 것들은 놀랍게도 제각각 논다.

결혼 후 마누라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자 번개같이 인사하고 남편은 방으로 숨었다. 마누라 친구들 사이에서 남편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라는 설이 있다. 꼬리 끝을 살짝 본 것 같긴 한데 숨어 있어서 제대로 볼 수 없는 존재.

마누라 친구들이 자꾸만 나와서 같이 놀자고, 남편 혼자 소외시키면 안 된다고 성화다. 남편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혼자 방에서 노는 게 제일 좋은데, 왜 자꾸 귀찮게 하지?


나이 차 많은 커플에게 어김없이 던져지는 질문. 세대 차이 안 나요? 그럴 리가요.

다만 이런 장점은 있다. 나이 차가 크다 보니 웬만해서 나는 남편을 우쭈쭈 해주고, 남편은 마누라 말에 거의 따라주다 보니 크게 싸울 일이 없다는 것.

남편은 나이보다 성숙하고 마누라는 나이보다 철이 없어서 실제보다는 서로가 느끼는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 아무리 그래도 남편과 내가 살아낸 시간 속에 11년이라는 간극이 있음을 어쩔 수 없이 실감할 때가 있다.

올림픽, 엑스포, 월드컵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도, 신해철의 죽음 같은 문화적인 경험도 각자 경험의 폭과 깊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 그걸 두고 답답해 하며 ‘너는 왜 그 가치를 모르냐, 라떼는 말이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세대 차이란 결국 ‘나는’ 게 아니라 ‘내는’ 것 아닐까? 나이 차가 많다고 저절로 차이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억지로 그 차이를 만들려 기를 쓰는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 부르지 않던가. 타고난 기질로 보나 나이로 보나 우리 집에서 꼰대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은 나니까, 나만 노력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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