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 어느 모임, 어느 조직이든, 남들은 가만있는데 꼭 나서서 뭔가를 도모하는 인간이 있게 마련이다. 인간의 역사를 봐도, 되나 케나 일부터 저지르고 보는 대책 없는 인간 때문에 모든 사달은 시작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역사의 진보란 결국 대책 없는 저지레와 부랴부랴 뒷수습의 반복으로 조금씩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저지레들이 일을 저지르면, 가만있던 대다수의 차분이들이 그 저지레를 겨우겨우 수습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형국.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집에도 역시, 있다. 저지레 하나와 수습자 하나.
“남푠! 남푠!”
하루에 한두 번은 반드시 마누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고요한 집안을 흔들어댄다. 숨넘어갈 것 같거나 살짝 여유 있거나, 다급함의 정도만 다를 뿐 남편을 애타게 부르는 것은 똑같다.
“남푠, 남푠! 큰일 났어!”
“뭔데, 또? 왜 그러는데요?”
옆방에서 들리는 남편의 목소리는 90%의 무심함과 9%의 귀찮음, 1%의 걱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개는 별 쓰잘데 없는 마누라의 호들갑일 게 뻔하지만, 혹시나 하는 1%의 걱정이 포함된 목소리. 나는 영악하게도, 남편의 그 1%의 걱정에 기대 마음껏 저지레를 벌이곤 한다.
“얼른 와 봐! 이거 어떡해? 컴퓨터가 갑자기 안 돼!”
“뭘 했는데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하…….”
남편의 한숨이 땅을 뚫는다.
“세상 모든 일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일어나지 않아요. 누군가, 반드시, 무슨 짓을, 해야만 일어나는 거라고요!”
그때야 나는 슬금슬금 털어놓는다. 하기는 했다. 내가 한 짓이 뭔지 몰라 그렇지. 뭔가 설치하라고 뜬 것 같은데 뭔 말인지 읽지도 않고 무턱대고 엔터키를 누르거나, 반대로 절대 지워서는 안 되는 파일을 단지 바탕화면에서 보기 싫다는 이유로 지워 버리거나.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는 불호령은 사또님 위신 세워주려는 극적 대사인 줄 알았는데, 죄를 짓고도 제가 뭔 죄를 지었는지 모르는, 모지리+저지레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 아닐까? 나 같은.)
가장 흔하고 쉬운 예로 컴퓨터를 들었을 뿐, 일단 나는 뭐든 누르고 보고, 시작하고 보고, 작동해 보고, 벌이고 보고, 저지르고 본다. 반면 남편은 심사숙고가 끝나기 전에는 절대,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가속페달이라면 남편은 브레이크다.
몇 달 전 나는 생애 최대의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는데, 그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과거부터의 내 행적을 더듬어 올라가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가장 즐긴 취미 중 하나는 이사였다. 상무 전무 이사 할 때 그 이사 말고, 집 옮기는 이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집은 ‘처음 보는 집’이고, 오래 머물고 싶은 집은 ‘남의 집’이다. 호텔, 모텔, 민박, 게스트하우스, 캠핑장, 친구 집 가릴 것 없이 남의 집에서 자는 잠을 정말 좋아한다. (심지어 시부모님댁도 좋…….)
이사 온 지 일주일 만에 새집이 재미없고, 몇 달쯤 되면 너무 질려서 슬슬 ‘다음엔 어느 동네로 가볼까?’ 지도와 부동산 어플을 들여다보는 게 일이고, 심심하면 직거래 부동산 카페에서 연고도 없고 뜬금도 없는 남의 집을 훔쳐보기도 한다.
이렇게 생겨 먹은지라, 전세제도야말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자 신이 내린 선물이라 생각해왔다. 2년마다 합법적으로 이사 다닐 수 있다니, 이렇게 즐거울 수가!
안다. 최소 미친 짓이라는 거. 이사 한 번 할 때마다 깨지는 돈이며, 집 구하러 다닐 때 써야 할 시간과 마음이며, 혹시라도 못된 주인 만날까 전전긍긍하는 스트레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사가 좋다. 왜냐! 그 모든 스트레스를 다 합쳐도 ‘새로운 동네,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간다’는 설렘과 즐거움이 압도적으로 크니까.
그렇다면 남편은 어떨까? 초내향형 집돌이에게 이사란 천재지변과도 같은 것. 하필 역마살 드글드글한 마누라를 만나 2년마다 이사 다니는 신세라니. (새삼 알겠다. 남편이 나를 참 많이 사랑하는구나!)
6년 전 서울을 떠나 조용하고 풍경 좋은 경기도로 거처를 옮긴 뒤, 이 동네 저 동네 왔다리갔다리 살던 중 일이 터졌다. 막힘 없이 펼쳐진 논밭 풍경에 반해 새로 이사를 했는데, 덜컥 3기 신도시로 지정돼버리고 말았다. 하필 내가 반해버린 바로 그 시원한 논밭에.
하필 이번에는 2년 정도 더 살 생각이었다. 평수가 커지면서 짐이 늘고, 짐이 늘면서 이사비용도 쑥쑥 커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없던 알뜰함이 새삼 샘솟지 뭔가. 어라? 그런데 전셋값이 심상찮다. 공사가 시작되려면 어느 세월이랴 싶은데, 이미 도시 전체가 신도시라는 광풍에 휩쓸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도 그 전화를 받았다. 뉴스에서나 보던, ‘하루아침에 전세금 몇 천 올려달라’더라는 청천벽력같은 전화. 1, 2천도 아니고 5천만 원(뉘 집 개 이름!) 올려달라는 전화에 밤새 고민하다, 떠내려가는 돈 아니니 올려주고 2년 더 살자 결심한 그때, 집주인이 다시 전화를 걸어 왔다.
어제 말한 5천은 아무래도 시세에 안 맞아서 7, 8천은 올려야겠다고, 자신은 욕심 없는 사람이라 그저 시세대로만 받겠다며 인심 쓰는 집주인에게 나는 그만 ‘빡’ 돌아버렸고, ‘요즘 젊은 사람들 돈 많잖아요?’ 한 마디에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더없이 차분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나는 그 자리에서 재계약 해지 통보를 했다. 오히려 당황한 집주인이 몇 달 남았으니 더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사흘 뒤 나는 혼자 터덜터덜 집을 나섰고, 강의 준비하느라 집에 남아있던 남편의 몸이 갑자기 부르르 떨리더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빡쳐서 나간 마누라가 ‘오늘 뭔가 크게 저지르겠구나!’ 하는 직감에.
남편 직감이 맞았다. 그날 나는 집을 사버렸다. 김칫독에 묻어둔 금송아지랑 장판 아래 깔아둔 남편 세뱃돈 탈탈 털어서.
신분증 들고 오라는 전화를 받고 달려온 남편의 얼굴은, 얼떨떨 덤덤했다. 이미 마누라의 수많은 저지레에 단련돼 덤덤하면서도, 하다 하다 집까지 저지를 줄은 몰라 얼떨떨한 표정.
저지른 건 마누란데, 정작 행복한 건 남편이다. 집돌이에게 ‘찐’ 집이 생겼고, 당분간 이사 걱정도 없으니 얼마나 안심되는 삶이겠는가. 그러나 과연 그 행복이 얼마나 갈지는…….
(요즘 나는 귀농 다큐에 푹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