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차 큰 연상연하 결혼의 필수 조건 3가지는 뭘까? 첫째 ‘철없는 연상녀’, 둘째 ‘우직한 연하남’, 그리고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관대한 시부모’ 되시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전생에 나라를 세 번은 구했을 것 같다. 전생에 이순신 장군 내지는 유관순 열사, 아니 그분들 아니라 누가 됐든 왜구 토벌 내지 독립운동 한번 기똥차게 했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시부모님을 만날 수는 없을 테니.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부모의 ‘허락’이 필요한 영역이다. 자식이 아무리 성인이라도 마찬가지. 그러니 허구한 날 일일 드라마 속 어머니들이 뒷목 잡으며 쓰러지고, 나이 서른 훌쩍 넘긴 아들을 붙들고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오열하고, 여자 얼굴에 찬물을 끼얹으며 ‘네까짓 게 감히 우리 아들을 넘봐?’ 같은 절절한 사자후를 토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꽤 오래 연애를 하는 동안, 남편은 단 한 번도 ‘부모님이 우리 연애를 반대한다, 또는 못마땅해 하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내 존재가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였냐 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연애 시작하자마자 내 프로필을 다 깠다는데도.
(두어 번 지나는 말로 ‘여자 나이가 있는데 괜히 네가 붙잡고 있다가 결혼 적령기를 더 넘기면 어떡하냐, 더 깊어지기 전에 놔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두어 번 하셨다는 것을, 결혼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아아, 이 어리고 속 깊은 남자 같으니!)
일탈 한번 해본 적 없고, 당신들을 꼭 닮아 소처럼 우직하고 돌덩이처럼 단단한 아들이 몇 년을 장승처럼 꼼짝 않고 한 여자만 보고 있으니, 보다 못해 ‘그럴 거면 차라리 결혼을 해라!’ 하고 먼저 나선 것도 시부모님이셨으니, 아무 생각 없던 나로선 그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세상에 그런 시부모가 실재한다고? 나 또한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못했다. 인터넷 카페에, 웬만한 도시 괴담 후려치는 현대판 고부갈등은 얼마나 많은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합리적이고 공평무사하고 도덕적인 남편은 시부모님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거슬러 올라가니 시할머니도 딱 그런 분이셨다.
그 시대에 드문 ‘여선생’으로 일하며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신여성이었던 시할머니는 ‘세상에 이런 시부모가 다 계시나?’ 싶을 정도로 시집살이는커녕, 아들 며느리에게 철저한 불간섭정책을 쓰셨단다.
한 도시에 살면서 웬만해선 아들 집에 오시지도 않고 전화도 잘 안 하시고 ‘너희는 너희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각자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사는 게 최고, 콜?’이라는 태도로 평생을 일관하셨다고.
시할머니와 시부모님이 그나마 겹치는 부분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는 점이다. 심지어 시아버지는 봉사의 끝판왕이라는 ‘염습 봉사’를 위해 자격증까지 따실 정도였으나, 할머니도 부모님도 며느리에게 종교를 한 번도 강요하지 않으셨다. (종교가 고부갈등과 장서갈등에서 만만치 않은 지분을 차지하는 걸 생각하면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놀랍게도 나 또한 나름의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여름성경학교에서 신나게 노는 초등부 시절을 거쳐 성탄전야 올나이트를 빼먹지 않는 중고등부를 지나 스무 살쯤 됐을 때, 이만하면 됐다 싶어 교회에서 나왔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잘생긴 교회 오빠가 없…….)
‘안티보다 무서운 탈덕 팬’은 참으로 진리더라. 단지 교회를 안 나가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나는 아예 무신론자가 돼버렸다. 무신론자라는 며느리에게 성당 나가란 말을 어찌 하시겠는가.
그러던 중 작년에 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요양원에 오래 계시다 가신 길이라 가족들 모두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해왔고, 솔직히 말해 나는 할아버지를 1년에 두어 번 뵀을 뿐이라 슬프다는 감정이 여물 겨를이 없었다.
맏 손자며느리로서 장례 3일 자리를 지킨 것이 그마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였는데, 발인 전 성당에서 치러진 장례 미사를 지켜보다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신부님의 강론 때문이었다.
“누구든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 중, 살아생전 고인의 잘못으로 인해 혹시 상처 입은 분들이 계시다면…….”
왕년에 교회 물 좀 먹어본 사람으로서, 나는 다음에 이어질 강론을 빤히 예상했다. 이제 그만 용서하라고 하시겠지. 고인의 명복과 남은 자들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도 부디 용서하라고. 용서야말로 신을 믿는 이들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귀한 행위라고. 그러나 나의 빤한 예상을 깨고 신부님에게서는 전혀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고인을 대신해, 마음 깊이 사죄하겠습니다.”
떨림과 진심이 담긴 신부님의 사죄에 나도 모르게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대속(代贖 :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그 피로 만인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한 일. 남의 죄를 대신하여 당하거나 속죄하는 것.)
나는 비로소 그토록 오래 교회를 다니면서도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던 그 대속의 뜻을 알 것 같았다. (대신 사죄하겠다는 목사를 본 적이 없었으니.)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허망하게 세상을 떠버린 후배 녀석도 떠올라 내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장례 마치고 얼마 뒤 시어머니와 통화하다가 나는 깜짝 놀랄 소리를 들었다.
“신부님 강론에 그렇게 감동을 받았다면서? 할머니께 전했더니 우리 큰 손주며느리 드디어 성당 다니는 거냐며 좋아하시더라. 세례 받을 때 꼭 올라오신단다.”
아이고 맙소사. 나는 그저, 신부님 말씀이 좋았을 뿐인데, 그래서 그 감동을 남편과 나눴을 뿐인데, 남편이 시어머니께 그 말을 했고 시어머니는 시할머니께…….
할머니도 부모님도, 성당 나가란 말은 차마 못하시고, 내가 자발적으로 움직여주길 고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고민이 시작됐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미사도 참관하고, 마음이 1cm라도 움직일까 싶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책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까지 읽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교회를 뛰쳐나오던 그 상태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신을 믿지 않고도 교인이 될 수 있을까? 그게 과연 진짜 종교일까? 신부님은 왜 그렇게 감동적인 말씀을 하셔설랑은…….
시할머니와 시부모님을 좋아하지 않고, 그분들의 삶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이니 차라리 행복하겠다고? 아마도 이 문제는 내 결혼생활에 두고두고 풀리지 않는 난제로 남을 듯하다. 정성을 다해 풀어보는 수밖에.
(천주교인들의 현명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무신론자가 성당에 나가도 될까요? 믿음 없는 종교 생활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답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