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 ‘아직’ 없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애초부터 딩크였냐고? 아니. 나는 오랫동안 비혼을 꿈꾸긴 했지만, 아이 없는 결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좋은 엄마와 좋은 부모 되는 방법’을 자주 고민하곤 했다. (떡 줄 놈 생각도 않는데 일찌감치 딸 이름 후보를 정해두고, 심지어 숲 유치원에 보내야지, 공동 육아를 해야지, 이런 말도 안 되는 구상을 한 적도 있다)
결혼한 지 3년쯤 됐을 때,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을까 한동안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아무리 천둥벌거숭이처럼 산다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세상의 입방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니. ‘여자가 다 늙어 결혼해 아이를 못 낳는 거 아닌가?’ 하는 수군거림 같은 거 말이다.
입방아보다 더 큰 이유는 당연히 양가 부모님이었다. 남편에게 무한 신뢰를 보여주시는 시부모님께, 그리고 딸에게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내 엄마에게 손자 손녀를 맞는 기쁨을 드리고도 싶었다.
그러나 내 고민은 번번이 남편이라는 철옹성에 부딪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낳을까 말까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나와 달리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결심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처음 만난 스물셋의 남편도, 결혼을 결심한 스물아홉의 남편도, 삼십대가 된 지금도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남편의 결심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참으로 늘 푸른 소나무요, 기후변화 전의 만년설이요, 녹 안 스는 스테인리스와도 같은 일관됨이지 뭔가.
남편이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이유도 하나하나 어찌나 논리적인지. 첫째, 남편에게는 유전될지 모르는 지병이 있고 둘째, (아버지가 자신에게 해준 것처럼) 사랑과 정성을 쏟아 아이를 잘 길러낼 자신이 없고 셋째, 우리 두 사람 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는 너무 게으르다는 것이었다. (아, 음, 저기요. 이렇게 뼈를 때리시면 아픕니다만?)
하나같이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지만, 하나하나 슬그머니 딴지를 걸어보자면… 아이에게 병을 물려줄까 두려운 마음은 이해하나 어차피 반반의 확률이고, 약 잘 먹고 관리만 잘해주면 촌각을 다투는 위험한 병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렇기에 더더욱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로 들렸다. 아들이 아버지를 무서워하긴 쉬워도 사랑하고 존경하기는 무척 어려운 우리 문화에서, 남편과 시아버지는 보기 드문 부자지간이다. 보고 있으면 애정과 살가움이 뚝뚝 흐른달까.
겉으론 아닌 척 속으로 다정하고, 무심한 듯 섬세하게 챙기고, 다그치거나 강요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남편 또한 시아버지처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했다. 자신 없다지만, 막상 아빠가 되면 물고 빨고 담뿍 사랑해줄 것이 눈에 선했다.
첫 번째 두 번째 허들은 어찌어찌 뛰어넘었으나, 결정적으로 나를 쓰러뜨린 것은 세 번째 이유였다. 게으름. 그렇다. 우리 부부는 게으르다. 아니, 우리 직업과 삶 자체가 ‘게을러도 괜찮은’ 분야라는 게 맞겠다.
공부하는 남편과 글 쓰는 아내. 어쩌다 보니 둘 다 프리랜서 자유업인데, 아침 출근-저녁 퇴근이라는 보편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바쁠 땐 미친 듯 바쁘기에 한가할 땐 최대한 기를 쓰고 게으름을 피운다.
남편은 강의와 논문 준비에 따라, 마누라는 원고 마감 일정에 따라 자고 깨는 시간부터가 들쑥날쑥인데, 몰아쳐 일을 끝내고 나면 둘 다 쓰러지기 바쁘다. 그렇게 충전을 해줘야 다음 마감과 강의를 준비할 기력이 회복된다고 변명하고 싶다.
남들 눈엔 불규칙하고 정돈되지 않아 보이겠지만,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하고 편한 삶이다. 그 무질서 안에 나름의 질서와 규칙이 존재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지만… 그건 그냥 우리 둘이 살 때 얘기고, 갓 태어난 아이에게 ‘엄마 아빠 바이오 리듬에 맞춰야 하니 아무 때나 울지 말고 아무 때나 보채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은가.
아이 낳으면 달라진다고들 한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올빼미 뺨치는 야행성 인간도 아이 때문에 새벽에 절로 눈이 번쩍 뜨이고, 내 새끼 굶길 수는 없으니 기신기신 일어나 젖 물리고 잠결에라도 쌀 씻어 안치게 되고, 내 새끼 먼지 구덩이에서 굴릴 순 없으니 머리 어깨 허리 무릎이 아작나도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하게 되더라… 는 간증(!)들이 오히려 나를 주춤 물러서게 했다.
육아로 인한 육체의 고단함이 정신을 구석으로 내몰고, 구석에 몰린 정신이 결국 날카로운 갈퀴가 되어 자신을 할퀴고 상대방도 할퀴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 왔기에, 무서웠다. 우리 부부도 그렇게 될까 봐.
안 그래도 예민하고 불안 많은 남편에게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지우는 것도, 남편보다야 무던하고 긍정적이지만 감정 기복 심한 내가 혼자 감당하겠다고 나설 자신도 없었다. 비겁하고 나약하고 이기적이라고 욕먹어도 어쩌겠는가.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아이다. 나이만 먹었지 아직 덜 자란 서로를 보듬으며 서로의 부모 노릇과 서로의 아이 노릇을 번갈아 한다.
나는 어리면서 어른스러운 남편을 귀여워하고, 남편은 늙었는데 애 같은 나를 귀여워하면서 누가 이기나 내기하듯 열렬히 서로를 귀여워한다.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앞에서 마음 놓고 애처럼 굴고, 자신의 가장 약한 모습을 거리낌 없이 내보인다. 방귀 트듯, 가리고 감출 것 없이 자신의 약점과 결함을 까놓고 보일 수 있으니,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편안한 집이다.
이렇게 사는 부부 한 쌍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결혼하면 어른 된다’는 말에 철저히 역행하는, 애 같은 부부. 서로를 애 취급하면서 예뻐하고 안쓰러워하고 귀여워하다가도, 갑자기 너무 웬수 같고 한심스러워서 으르렁대며 싸우고, 그러다가도 결국 내 새끼 내가 거두지 누가 거두냐, 하는 심정으로 다시 물고 빠는 부부.
우리는 오늘도 서로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언제까지 귀여울지 두고 보자, 벼르는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