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으는돌고래 Feb 09. 2016

Behind. 국가대표 DJ 페스티벌

춘천발 서울행 기차에서 엉엉 울었다.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나라 선수들 목에 메달을 걸어주는 걸 봤다. 그후로 한동안 내 꿈은 IOC 위원이었다. 개막식만 세 번을 챙겨볼 만큼 좋아했다. 시드니 올림픽 때는 기록하고 정리하는 데만 두꺼운 공책을 세 권이나 썼다.


12월이었나. 평창 G-2 행사에 회사가 참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올림픽에서 선보일 강원도 문화예술콘텐츠를 시연하는 자리인데, 우리는 월드디제이페스티벌 기획팀으로서 EDM 파티를 열게 됐다고 했다. 'IOC에서 일하진 못해도 올림픽과 닿는 뭐라도 하는구나' 싶어 마냥 들떴다.



올림픽대표 No, 국가대표 Yes

초기 컨셉은 '올림픽대표 DJ'였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아티스트 추천이벤트를 시작했는데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연락이 왔다. 올림픽이라는 명칭 자체를 사용할 수 없다며 게시물을 내려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리둥절하다. 행사명이 '올림픽 Festival'인데.


'국가대표 DJ  페스티벌'로 명칭을 변경하고 아티스트 추천이벤트를 이어갔다. 최종 6인의 DJ (Juncoco, R.Tee, Baryonyx, Vandal Rock, DJ Koo, Bagagee=Viphex13), 그리고 150여명의 EDM 평창원정대를 선발했다. 평창원정대는 모집이 안될까봐 전전긍긍했는데 모집공고를 내자마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끼많은 지원자들이 많아 괜히 든든했다.



첫 번째 Unhappy Moment, 정선 답사

원정대 일정 끝에 알파인스키월드컵 단체관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응원단 사전미팅 공문을 받아 정선을 찾았다. 스키장이라는 곳에 내렸는데 눈앞이 아득했다. 포크레인으로 파놓은 듯한 공사장길을 15분 정도 저벅저벅 걸어 올라갔다. 미끄럽고 울퉁불퉁한 길에 난간도 없었다. 게다가 관중석에 앉을 수 없고 피니시라인 옆에 바글바글 서서 관전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안전사고라도 날까봐 걱정이 앞섰다. 가긴 가야겠는데 원정대의 반응이 무섭기도 했다. 미리 설명해야겠다 싶어 두 번째 사전미팅에서 원정대 앞에 섰다.

여러분, 가파른 길을 15분간 걸어가야하고 눈밭에 오래 서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편한 신발 신고 오시고 따뜻한 옷 꼭 챙겨오세요. 그래도 평소에 볼 수 없는거니까요. 첫 올림픽테스트경기니까 재밌게 잘 보고 오면 좋겠습니다.


별다른 불만사항 없이 잘 넘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더한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두 번째 Unhappy Moment, 예산이 없어요

계약이 지연돼 예산지급이 늦어졌다. 행사가 내일모레인데 강원도청에서는 절차상의 이유로 한푼도 지급해줄 수 없다고 했다. 사무실이 이사를 하던 날, 이 사실을 공유했다.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면 우리 그냥 못한다고 해.


열심히 준비 중인 원정대와 그 원정대를 이끄는 동료들이 떠올랐다. 회계과 담당자와 언성만 높이지 않았을 뿐 박터지게 다퉜다. 하지만 해결될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강원도청을 찾았다. 계약서를 쓰기 위함이었지만 예산해결에 대해 해당부서에 직접 들러 확답을 받아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속도 복잡한데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현수막 디자인 컨펌해달라, 참가동의서 봐달라, 보도자료 보내달라. 아,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도청에 가자마자 담당 주무관님을 만났다. 오전에 대표님과도 논의가 있었다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셨다. 여차저차 해결이 됐고 계약도 정상적으로 체결됐다. 입사 이래 가장 비현실적인 날이었다.


춘천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혼자 엉엉 울었다. 모두를 멈추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결국 강릉에 갔다

나름의 속앓이를 하고 결국 강릉에 갔다. 국가대표 DJ들도 평창원정대도 열정적이었다. 팀별로 준비한 퍼포먼스들도 일사분란하게 펼쳐졌다. 메인공연은 2월 4일과 5일 양일간 진행됐다. 첫째날은 한복이 드레스코드였는데, 150여명이 한복 입고 춤추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둘째날, 원정대가 사복을 입자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늘었다. 넋 빠지게 몸을 흔들던 강릉의 고등학생 무리가 인상적이었다. 몇 년 후 Sounce Parade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 아침, 알파인스키월드컵을 보러 정선으로 향했다. 답사 때보다 많이 정돈되어 있었다. 소수의 원정대원들은 불평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오르막길을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었다. 티비에서나 보던 장면 속에 내가 있다니. 허공을 날아 결승점에 들어오는 선수들을 보며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은 어때요?




숙소웰컴사인부터 아티스트 사인엽서를 담은 패키지까지. 작은 것부터 배려한다고 했는데 후기를 보니 원정대의 반응이 좋아 다행이다.

패키지; 엽서 2종, 사운스퍼레이드 클리어파일, 스티커 2종, 행사안내문 (출처. EDM 원정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여 대형버스 네 대로 이동했다. 일정에 맞게 모두를 움직이게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체크아웃 시간에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 원정대 담당자는 객실을 돌아다녀야 했다. 여행사 가이드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DJ 토크쇼는 재밌었고 류감독님 간담회는 유익했고 알파인스키월드컵은 신선했다. 토크쇼 경매에 선뜻 애장품을 챙겨온 DJ 분들께 감사하고, 바쁜 일정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류감독님께 감사하고, 끝까지 지치지 않고 함께해 준 원정대에게 감사하다.


업무를 다 나누고 나는 이리저리 체크만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보다 배로 뛰어준 동료들에게 말로 다 표현 못 할 만큼 감사하다.


지난 며칠간 '내가 배운 가장 큰 건 뭘까' 고민했다. 서울행 기차에서 '아무도 멈출 필요가 없다'며 엉엉 울던 내가 눈에 선하다. 그 순간이 내게는 이번 프로젝트의 대스승이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을 준비하실 때, 한강 벤치에 누워 하늘을 봤다고 하셨다. 그때 감독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 정말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한 뼘 또 자란다.



* '국가대표 DJ 페스티벌'과 'EDM 평창원정대'에 대한 공식 Review는 애프터무비와 사진 수급 후 RYUS의 매거진'R'에 포스팅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공공서재가 없는 도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