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으는돌고래 Dec 01. 2015

공공서재가 없는 도시

교보문고 독서테이블을 보고 공공도서관의 부재를 느끼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아온 도시에 대한 변명이다. 우리가 당연시 해왔던 일상이 얼마나 도시적이지 못한지에 대한 도발인 동시에 우리가 누릴 도시생활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열쇠다. 뉴요커들이 부러운 이유는 그들의 도시가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뉴욕, 그들의 도시에서 살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는 '우리의 서울'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中


서울시에서 야심차게 공개한 'I.SEOUL.U'가 뭇매를 맞을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나의 서울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자꾸 '서울한다'고 하니 어리둥절해 지는 게 당연하다.


5만년 된 카우리소나무로 만든 독서테이블을 구경하러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대형서점과 독서테이블의 조화가 궁금했다. 거대한 독서테이블이 듣던 대로 교보문고 한 가운데 놓여있었다.


테이블은 멋졌다. 하지만 자리를 잘 못 잡았다. 
대형서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부자연스러웠다.


100여명이 동시에 독서 가능한 테이블이라고 했지만 이용자가 많아 자리 찾기가 힘들었다.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하거나 엎드려 자는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통은 여러 권을 쌓아두고 읽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독서를 즐길 수 있다니. 놀라웠다. 정말이다.


그러나 이내 씁쓸해졌다. 어딘지 어색한 테이블을 보며 공공도서관의 부재를 느꼈기 때문이다. 5만년 된 카우리소나무 테이블은 대형서점이 아니라 공공도서관에 있어야 했다. '책 읽기 좋은 공간'은 서점이 아니라 공공도서관이어야 한다.


도서관은 있지만, 가고 싶은 공공도서관은 없다.


우리는 책을 보러 서점에 간다.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 도서관이 있지만, 가고 싶은 도서관이 없기 때문이다. 공공도서관 하면 오래된 책들과 쾌적하지 않은 환경이 먼저 떠오른다. 왠지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없을 것만 같다. 서울에는 평소에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그냥 발을 들이고 싶을 만한 공공도서관이 없다. 멋들어진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사람들을 보며 슬펐다. '책 읽고 싶은 공간'을 도서관이 아닌 서점이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 공공도서관을 찾았다. 밖에서 보고 도서관인지 몰랐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서관이 있을 수 없는 자리에 도서관이 있었다. 물가에 위치한 6층 높이 건물에 들어섰다. 책을 읽지 않아도 그냥 앉아있고 싶은 공간이었다. 꼭대기 층에 올라가면 시내가 다 내려다보였다. 책의 상태도 좋았다. 조명도 창백하지 않았다. 독서할 때 눈에 부담이 많이 가지 않도록 신경 쓴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공공도서관


공공도서관 입구


개방형 도서관



공공도서관 창가


민간에서 운영하는 게 아니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이었다. 일시적으로 좋은 책들을 우겨넣는 건 한 번 쓸 돈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부러웠던 것은 '공공서재'를 유지해 가기 위한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사회적 합의였다.


현대카드에서 도서관 사업을 한다. 여행, 음악 등 테마별로 양질의 책들을 모아 도서관을 운영하는데 주말에 가면 대기를 해야 할 정도다. 좋은 책들을 모아놓고, 책 읽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면 사람들이 모이는구나. 성인 연평균 독서량이 10권도 안 된다고는 하지만 독서에 대한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 제대로 된 공공도서관이 하나만 있었어도 광화문에 5만년 된 나무가 들어설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북적이는 서점 한복판에서 내가 느낀 우리의 서울은 '늘어지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공서재가 없는 도시'이다. 


알려는 노력이 귀찮아 모르기를 택하는 세대고, 맞춤법 틀리는 것도 다들 틀리니 괜찮은 시대다. 누구나 무료로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공공도서관은 사회의 단단한 기둥이 될 수도 있다. 먹고 살기 바빠죽겠는데 도서관이 무슨 말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지가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책을 펼쳐들 수 있는 곳이라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무지를 덜고 공론의 장이 만들어질 수만 있다면, 공공도서관이 존재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종종 반포지구를 지난다. 새빛둥둥섬이 정말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그렇게 애물단지라던데 차라리 멋스러운 도서관이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정직하게 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